예물을 가져오라
출25:1-7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후 제 삼월에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고 그 계명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1. 복을 내려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주인이십니다.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을지라도 그것은 소유권이 아니라 관리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겸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사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할 때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또 애굽에서 떠날 때에 보물을 가지고 나오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출12:36).
그때 애굽에는 내린 열 재앙으로 다 죽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것을 보고 어떻게 보였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사람 앞에서도 존귀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시34:5).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악한 청지기는 수확기가 되어 주인이 하인들을 보냈을 때 매질하여 되돌려 보냈고, 결국은 아들을 보냈더니 아들까지 상속자라 하여 죽이고 소유권을 빼앗으려 하였고, 게으르고 악한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것을 땅에 묻어두었지만 선한 청지기는 갑절로 남겨 주인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격합니다. 충성된 청지기는 영광에 이르지만 무익하고 게으른 청지기는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영원한 흑암에 떨어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분은 청지기입니다. 모든 소유권은 주님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전도단 김미진 간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물질이 가난한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임을 알고 자기가 사는 집에서 5km 내에 있는 모든 노숙자들을 위해 매일 음식을 제공하여 섬기고 또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기아에 처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앞장을 섰다고 합니다. 그분의 믿음은 우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항상 먼저 쓰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부자 곧 선한 일에 부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일로서 영원한 상급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신기한 일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지라도 선한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복된 일에 우리는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충성하는 자를 하나님이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8-29).
3. 순종할 때 받는 복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실 어떤 큰일일지라도 하나님께는 기적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을 위해서는 헌신하고 순종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고 도리어 감동을 받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께서 백부장의 어떠한 믿음에 감동을 받았습니까? 물론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어준 일도 되지만 더 귀중한 것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이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눅7:5-9).
‘명령만 내리소서 나도 당신의 종이니이다’ 이것이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시의 일화입니다. 북쪽의 스톤월 잭슨 장군이 무모한 공격을 시작하여 전세가 불리하게 되니까 수하에 있는 장군이 겁에 질려 “저는 패전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때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장군이여 당신의 공포와 상의해서는 안 됩니다.”하고 사기를 살려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성령과 타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또 언제든지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중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출36:3-5).
이렇게 많은 예물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애굽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우리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면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은혜를 얻었사오면
삿6:11-17
여선지자 드보라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사십 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붙였습니다. 이로 인해 다시 원수의 손에 학대를 받게 되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자를 기드온에게 보내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느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구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가 아닌 원수의 손에 학대를 받을 때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사사기에서 반복되고 있는데, 과연 진실한 복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 아니냐 하시니라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6:14-15).
1. 사유의 은혜
범죄한 인생은 죽습니다. 물론 죄인은 하나님을 뵈올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어떻게 시내산에 올라가서 죽지 않았으며 이사야가 하늘의 영광을 접하고도 죽지 않았고 기드온도 죽지 않았을까요?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삿6:22-23).
이것이 사유의 은혜입니다. 죄는 심판을 받지만 사유의 은혜는 구원을 받게 합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9:1-2).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0-11).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 사유의 은혜를 입으면 구원받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응답의 은혜
하만이 자기에게 무릎 꿇지 않는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유대인들을 죽이고자 하였을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4:13-14).
그때 에스더는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에게 자기를 위해 3일을 금식하고 기도하게 하였고, 자기도 시녀와 함께 금식하고 기도한 후 왕명을 어기고 궁중에 들어가서 왕에게 얼굴을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유다인을 멸절시키려 했던 하만과 대적들이 죽고, 모르드개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삿6:17-18).
3. 큰 용사
어찌 보면 기드온은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
어떤 사람이 큰 용사일까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들어쓰시는 사람입니다. 골리앗이 용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한 다윗이 용사입니다. 기드온은 몇 가지를 시험하여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이제 기드온은 미디안을 두려워하여 숨어서 타작하는 약졸이 아닌 나라를 살려내는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기드온 같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큰 용사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4. 여호와의 승리
여호와 닛시, 여호와의 승리는 이제 기드온에게 돌아왔습니다. 길르앗 산에 올라가 나팔을 불자 모여 온 삼만 이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 허락지 아니하시고 두렵고 떠는 자 이만 이천 명을 돌려보냈습니다. 남은 자 만 명도 기드론 시내로 가서 물 먹는 자세를 보고 뽑은 삼백 명으로 미디안 적군을 물리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전쟁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7:2).
출전하는 삼백 명의 무기가 무엇이었습니까? 항아리와 횃불, 나팔이 전부였습니다. 기드온 삼백 명은 항아리를 깨고 나팔을 불고 횃불을 들면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하고 소리 쳤는데 적군들은 자다가 어둠 속에서 자기들끼리 찌르고 죽여 이스라엘은 대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닛시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되고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생수의 은혜
요4:1-14
우리나라는 예부터 산 좋고 물 맑기로 이름난 금수강산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습니까? 자연을 훼손하여 전국적으로 오염이 안 된 강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약수라 이름 붙인 곳마저 대부분이 오염되어 식수로 쓸 수 없다는 조사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오염된 물을 정화 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사전 방지에 드는 비용의 수십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심각하게 된 후에야 알게 되니 큰 문제입니다.
1. 물이 주는 의미
지구는 3/2가 바다입니다. 이렇게 물이 있는 지구는 생명세포를 형성하는 DNA가 있지만 다른 천체에서 채집한 흙에는 아직 발견했다는 보고가 없습니다. 이렇게 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최초의 인간을 살게 하신 에덴동산은 네 강의 근원지로 물이 넉넉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뱀의 유혹에 빠져 범죄하므로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는 저주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에덴동산을 잃고 쫓겨난 불행을 일깨워주기 위해 사막을 학습 교장으로 삼아 모세를 미디안 광야에서 연단을 시키시고 또 이스라엘 민족을 시내 광야로 통과하게 했던 것입니다. 또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떠난 죄를 지적했는데 역시 물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3).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로 통과하게 하셨는데, 우물곁에서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4:9).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물을 요구하신 이유가 있었으므로 주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4:10).
이 말씀이 그 여인을 끌어들이는 힘이었습니다. 전도자는 이런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생수는 갈급한 영혼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입니다. 전도자가 사람을 찾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님들 같이 시주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물을 선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대상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든지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선물할 것이 있어야 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4:11-15).
사마리아 여인은 여전히 생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마음 밭을 개간하기 시작합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요4:15-17).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밭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렘4:3).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4:18-19).
이제 사마리아 여인의 눈은 변하고 있었습니다. 영의 눈이 밝아져야 주님을 보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의 물감 장사 루디아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을 통해 은혜를 받았고 백부장 고넬료는 베드로를 통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문호 톨스토이의 일화입니다. 그는 귀족의 자녀로서 돈과 명예를 지니고 태어났으나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시골에서 거름통을 운반하는 농부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함을 보고 “여보시오, 당신은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소?” 하였더니 “다 주님의 은혜지요.”라는 말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2. 물의 특성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한 시내 광야는 산과 들에서 푸른빛을 발견할 수 없으나 비만 오면 새싹이 돋아난다고 합니다. 사막은 물이 없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 벵그리온은 “우리가 사는 길은 사막을 개발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이스라엘은 갈릴리의 물을 끌어 올려 사막에 꽃을 피우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황폐한 좁은 땅에서 6.5%의 농업 인구가 매년 수십억$의 농산물을 세계 시장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물이 주는 교훈은 성령의 생수가 임하면 사막과 같은 심령이 소생하여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할 일은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생수를 주신 주님께서 오늫도 이 생수를 주시기 위해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흐려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생수를 맛보고 변화된 여인을 보십시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4:28-30).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장부의 신앙
왕상2:1-3
‘장부’라는 말은 장성한 남자 곧 남자를 남자답게 일컫는 말입니다. 물론 ‘여장부’도 동일합니다.
1.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다윗이 자신의 임종이 임박함을 알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부왕 다윗을 이어 제 3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샬롬에서 유래한 것으로 평화, 평화스러운 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다윗의 열 번째 아들로서 밧세바의 몸에서는 두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다윗의 왕궁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궁중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일도 많이 목도했습니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고(삼하13:14)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또 압살롬이 부왕 다윗을 반역하여 죽이려고 전쟁을 했는가 하면, 또 아도니아가 왕권을 획책하려고 모의하기도 했습니다(왕상1:9).
그때 나단 선지자가 밧세바에게 기별하여 다윗에게 알려 다윗은 즉시 제사장 사독을 시켜 기혼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양각나팔 소리에 맞추어 “솔로몬 왕 만세”라 외치며 반란자의 모의를 잠재우게 하였습니다. 모두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지도자는 하나님의 손길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2. 여디디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삼하12:24-25)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의 관계로 얻은 아들이 난지 칠 일 만에 죽고 솔로몬은 두 번째 아들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때에는 마귀에게 틈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또 영감을 받아 많은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한가할 때는 마귀가 틈을 타서 죄의 올무에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입니다.
“역경은 인간이 견뎌내기 힘든 상대입니다. 그러나 역경을 극복하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성공을 지탱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 없다.”
성공했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 역경과 환난은 결코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목사의 가정에서 머리와 몸통만 가지고 태어난 브이 치치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넘어져도 좋습니다. 실수했다고 해서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자기 자신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입니다. 삼진 한 번 당했다고 영원히 타석에서 물러나는 건 아닙니다. 경기에 참여해서 계속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한 여전히 타자입니다. 나는 강연하는 도중에 일부러 바닥에 철퍼덕 엎어져서 얼마간 그 자세로 이야기를 계속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나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퍼포먼스입니다. 팔다리가 없으니까 제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하는 청중들도 적지 않습니다. 나는 바닥에서 일어서는 법을 스스로 익혔습니다. 부모님은 팔다리가 없는 내가 기대어 일어서도록 베개를 내주었지만 난 독자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쿠션에 기대는 대신 벽이나 의자, 또는 소파로 기어가서 거기에 이마를 기대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조금씩 몸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한, 넘어짐은 실패가 아닙니다. 절대로 꿈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3. 일천 번제와 지혜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왕상3:3).
성전을 건축하기 전이었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 심을 보십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3:5).
꿈을 통해 받은 계시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7-9).
기억하십시오. 복을 받을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바로 다스려야 할 임무가 중요한 줄 알고, 선악을 바로 분별할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을 덤으로 주셨습니다. 더 귀한 것을 구하면 덜 귀한 것은 이렇게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장부다운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생명수 강
계22:1-2
구약은 비와 이슬에 관한 말씀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비해 신약은 생수에 대한 말씀으로 특히 생수에 관해서는 요한이 기록한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겔47:9).
실로 꿈같은 일들입니다. 샬롬의 회복, 즉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한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넘치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1. 가나안 땅과 물
이스라엘은 대부분 산 위에 동네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데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하고 물이 없는 곳에는 수도를 연결해야 합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2).
이는 주님의 이름으로 시행한 기본적인 봉사로 생각할 수 있으나 물이 귀한 나라(1리터에 10$)에서 대상이 ‘소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봉사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은 은밀하게 행하고 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였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다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2. 물의 구분
1) 빗물
이스라엘은 겨울(11-3월)에 비가 옵니다. 11-12월에 오는 비를 이른 비라 하여 파종에 필요하고 2-3월에 오는 비를 늦은 비라하여 추수에 필요한 비가 됩니다. 또 위치에 따라 강수량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남쪽으로는 연중 강수량이 30mm 정도인데 비해 북쪽 헬몬 산 주변에는 1,000mm 정도의 비가 옵니다. 이로 인해 남쪽에는 목축문화가 발달했고 북쪽에는 농경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욜2:23).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시84:5-6).
2) 이슬
이슬은 년 중 계속 내리는데 이스라엘 북쪽 지역에는 1년에 80-120mm의 이슬이 내려 농작물에 필요한 수분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포도재배를 많이 하는데 넝쿨이 땅으로 퍼져 포도송이가 밤이슬로 인해 익어간다고 합니다. 이삭이 야곱의 별미를 받고 축복한 기도입니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창27:27-28).
이렇게 신령한 이슬과 기름진 땅의 복이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바랍니다.
3) 지하수
지하수는 물 근원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항상 있는 물입니다. 이 물은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가리킵니다. 진리는 우물과 같아서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것입니다. 신앙이 어릴 때에는 깊이가 없습니다. 어릴 때에는 감각적이지만 성장하면서 의지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같이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열조들이 약속의 땅으로 이주하여 처음에 정착할 때에는 생존을 위해 먼저 우물을 팠고 그 우물을 중심으로 생활환경이 발전되었던 것같이 오늘에는 생수의 우물 되는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살아갈 때 우리의 영혼이 성장함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3).
또 샘물이 있습니다. 이는 우물처럼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으로 흘러 넘치는 물입니다. 사막에서도 샘물이 있는 곳은 오아시스입니다. 특히 목축을 하는 사람에게는 샘물은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우물의 은혜로 족하지 말고 흘러넘치는 샘물이 되어 광야 같은 세상을 오아시스로 변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이 물은 사람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짐승도 마실 수 있고 식물에게도 공급되므로 푸른 숲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복을 받으면 자연 만물도 함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불같은 박해가 있었으나 신앙이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박해가 심할수록 신앙은 용수철처럼 폭발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강물 같은 은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강이 있고 또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강이 있습니다. 광야에는 비가 내리면 80%가 그대로 흘러가 버리므로 비가 그치면 즉시 마르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 흐르는 강은 반드시 샘의 근원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샘의 원천이 있어서 흐르는 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에는 헬몬 산에서 눈 녹은 물이 사철 솟아 넘치고 있으므로 갈릴리 바다와 요단강이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은혜의 강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내 영혼을 소성케 하는 진리의 샘은 지금 어떻습니까? 만일 말랐다면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홍포 입은 부자는 만족이 없어도 나사로는 지족과 감사가 있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의 강수가 흘러넘치는 그날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35:5-6).
“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겔47:12).
아직도 마르다와 같이 마지막 날 부활 때에만(요11:24) 그 영광이 있을 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20:22). 아 멘
벧엘의 하나님
창28:10-22
벧엘(Bethel)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9.2km쯤 떨어진 곳으로서, 야곱이 형의 칼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가는 중 벧엘에 이르러 잠들었는데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3-15).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창28:17-19).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난 일로 그곳 지명이 루스에서 벧엘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평범한 지명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나님의 집으로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1. 벧엘에서 받은 하나님의 복
야곱이 어디서 복을 받았습니까? 벧엘 곧 하나님의 집에서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집에서 받은 은총으로 말미암아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의 집을 사모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84:1-4).
하나님의 집에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우리에게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감사를 잊지 마십시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다.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독일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성도가 혀 암이 걸려 혀를 절단해야 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담당 의사가 “이제 수술 후에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을 하라”고 하였더니 “주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도 은혜를 받으면, 병을 고치면, 생활이 나아지면 감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은혜 베푸시는 조건으로 어떠한 공적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허물과 죄도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임하시는 은혜를 감사로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2. 오늘의 벧엘
매년 성탄절과 그리스도 고난 받으신 날, 또 부활절 때가 되면 그 날을 기념하여 세계 각국에서 예루살렘을 찾는 순례 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예배를 어디서 드려야 옳을까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일로 그곳 이름은 ‘벧아웬’ 곧 허무의 집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벧엘이 무엇이며 또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3. 야곱의 다짐
야곱이 꿈에서 깨어나 지명을 루스에서 벧엘로 바꾸고 하나님께서 복 주신 그 곳에 십일조를 구별시켜 제사드릴 것을 서원했습니다. 사실 십일조와 제사는 서원의 성격이 아닌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사람이 본분과 의무를 저버리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날 이 후 야곱이 가는 곳, 하는 일마다 함께 하셨으므로 야곱을 통해 외삼촌 라반도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라반이 어떻게 했습니까? 두 딸을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또 품삯을 정했는데 그것을 열 번이나 변경했습니다. 이유는 품삯을 정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시는 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에게 정한 품삯은 아롱진 것과 점 있는 양떼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을 통해 버드나무 단풍나무 신풍나무 껍질을 벗겨 튼튼한 양들이 교미할 때 옆에 두게 하였는데 그날 이후 튼튼한 양이 새끼를 낳는 것마다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라반이 또 다른 마음을 품는 것을 아시고 야곱을 떠나게 하였고 야곱은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형 에서가 사백 명을 데리고 온다는 말을 듣고,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십 년 만에 만난 형제는 죽이려는 악감정이 사라지고 눈물의 포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곱이 벧엘의 서원을 이행하지 아니하고 세겜에서 십여 년이 넘도록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외동 딸 디나는 강간을 당하고 또 시므온과 레위가 살인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그 때 받은 상처와 충격이 얼마나 심했던지 죽을 때에도 다른 자식들 같이 복을 빌지 못하고 저주를 하였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두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49:5-7).
엎드러진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35:1).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우선으로 이행하십시오. 야곱이 서원을 이행하므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보십시오. 비로소 하나님께서 야곱의 길에 대적이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그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욕심부렸던 보물과 드라빔을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배설물같이 땅에 묻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35:4-5). 아 멘
내가 거룩하니
레11:44-47
거룩 곧 성결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심으로 택함을 받은 백성들도 마땅히 거룩해야 합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
1. 선택을 받은 백성
“차라리 꺾일지언정 굽히지는 말라.”는 말을 가훈으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 이차 대전 때 일본군이 남지나 말레이 반도를 점령하자 영국군 십오만 명이 항복하고 나왔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일본군은 전선에서 항복이 없다.”고 하였으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원자탄으로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 그 누구도 유대인의 자존심을 좌절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유다의 멸망으로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갔으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믿음 앞에 느부갓네살 왕이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좌절을 모르는 그 힘의 원천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믿음 곧 자긍심에 있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14:2).
2. 성별의 방법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의 속성이 달라서가 아닙니다. 타락한 아담의 혈통으로 동일하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불신자들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때문에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43:1-3).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신분 때문에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릴 때에 고센 땅이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상황윤리론 자로 유명한 신학자 프레취와 트리니티 신학자 몽고메리 박사가 공개토론을 했습니다.
프레취: 몽고메리 박사 당신은 이런 극한 상황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몽고메리: 나도 당신하고 꼭 같이 범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하고 다른 것은 나는 불가피한 상황이라 하여 죄를 죄 아니라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죄를 주님께 고백함으로 사유함을 받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예로는 행위 완전하여 의에 이를 자가 없다(롬3:10)고 하였으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의 은혜를 입으면 죄 없다 인정함을 받을 줄 믿습니다.
레위기서는 범죄한 인생이 하나님께 올리는 속죄 제물로 사유함을 받게 되는 제사의 법령입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속죄의 제물이 어린 양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몸으로 제물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3. 성별의 생활
성별 받은 사람은 모든 일에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 안에서 자유 함을 얻었을지라도,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기 위해 자신을 엄하게 다스리고,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 절제하였습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 의학지에 나온 통계입니다. 미국에서 술이 1년에 5백만 명을 정신분열증 환자로 만들고 2만 명을 교통사고로 죽게 하고, 담배는 20년간 폐암을 5백% 증가시켰다고 합니다. 또 암환자 절반이 술과 담배가 그 원인이고 전체 사망 율 오십사%는 비만증과 관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오히려 민주화 때문에 향락업소만 늘어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부패와 타락이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따라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4. 교회의 사명
소요리 문답에 나오는 교회의 3대 권세입니다.
1) 교훈권: 진리를 보수하고 계승하는 권세(딤후1:13)
2) 치리권: 교회의 모든 일을 질서 있고 단정하게 하는 권세(고전14:33)
3) 봉사권: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돌아보는 권세(행6:1-6)
이것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여받은 권세입니다. 초대교회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안일과 방심, 세속화 현상을 주의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기도의 사람 엘리사가 도단 성에 있을 때에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넘볼 수 없었듯이 하나님의 교회가 깨어 기도할 때 마귀의 아성은 무너질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암울하다 할지라도 교회가 깨어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와 같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어 있으면 어둠에 삼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같이 흉내만 내다가 마귀에게 봉변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행19:14-16).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광장 종교개혁의 선구자 요한 훗스의 동상에 있는 글입니다.
“진실을 배우라 진실을 사랑하라 그리고 진실을 말하라 진실을 양보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진실을 지키라.”
진리는 영원히 살아서 역사합니다. 우리가 진리에 속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 빠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대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게 하지 마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아 멘
은혜를 입은 여자
눅1:26-30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여도 존중을 받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사람은 더욱 존귀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은혜는 변화를 가져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같이 은혜가 아니고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보십시오. 마리아가 은혜를 힘입기 전에는 평범한 여자 중 하나였으나 주님의 은혜로 존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나 일곱 귀신이 들린 막달라 마리아도 극히 불행한 여인들이었으나 주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은혜는 귀중합니다.
이백만 원을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하여 큰 재산을 만들었다가 오억을 날리고 교도소에 들어가서 회개한 홍완선씨의 말입니다.
“거리를 걸어도, 밥을 먹어도 내 머리 속에는 주식 시세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결과는 안개와 구름을 잡으려는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가 잘못 빠지면 결과는 후회요 탄식일 것입니다.
“미치자. 크게 미치자. 예수를 위해 미치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이다.”(이 용도 목사)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3-14).
바울이 베스도 총독의 법정에 섰을 때 아그립바 왕과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 복음입니다.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이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행26:22-27).
우리도 주님을 위해 미쳐야 하겠습니다.
A. W. 토져의 말입니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mediocre는 두 개의 라틴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문자적 의미는 ‘산봉우리와 산 밑의 중간’입니다.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상태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이유는 그들의 영적 상태는 산을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멈춰버렸다고 비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렇게 어중간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매우 큰 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작은 것에 안주하십니까? 그 분의 사랑과 희생 곧 십자가의 보혈과 승천, 또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것, 그 분이 보낸 성령을 염두에 두고 그 분이 우리에게 주려고 하시는 모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5-16).
“2천 년 전에 죽은 로마의 사형수여, 그대는 내 품에서 심장을 오려가듯 내 외동딸을 빼앗아 가는구나. 그대는 죽은 사람인가 산 사람인가.
생명의 약탈자여, 사랑의 약탈자여.” 아무리 붙잡아도 아프리카 선교사로 기어이 떠나가는 외동딸을 보내면서 절규하는 프랑스 한 시인의 외침입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영원히 존귀하게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2. 지각이 열리게 됩니다.
미국 어느 병원에 붙어 있는 글입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함
나는 목적을 이루려고 하나님께 힘을 구했는데
대신 약해져서 겸손과 순종을 배웠습니다.
나는 더 큰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는데 대신 병을 얻어 더 좋은 일을 했습니다.
나는 행복하려고 부를 구했는데 대신 가난해져 지혜를 얻었습니다.
나는 인간을 찬양하려고 권력을 구했는데 대신 낮아져 필요를 느꼈습니다.
나는 인생을 즐기려고 모든 것을 구했는데 인생을 얻어 모든 것을 즐겼습니다.
내가 구한 것은 얻지 못했지만 바라던 것은 모두 얻었으며
말하지 않은 기도도 모두 응답 받았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귀중합니까? 이것이 바로 지각이 열려져서 깨달은 은혜입니다. 천사의 계시를 받은 마리아는 즉각적으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3.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 헌신하십시오. 헌신은 모든 권한을 주님께 일임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남녀는 나의 모든 것을 주는 대신 또 모든 것을 요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7-38).
신앙에는 미성숙자가 되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일에도 앞장을 서시고 봉사하는 일에도 앞장을 서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에 즐겨 순종할 때 성령의 열매는 풍성해질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1:46-48).
마리아의 헌신이 우리의 헌신이 되고 마리아의 오늘 노래가 우리의 노래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온전한 순종
민32:6-13
온전이라는 말은 흠이나 결함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대상28:9) 하였습니다.
모압 평지에 이스라엘 백성이 시혼과 옥을 정복했을 때 르우벤과 갓 지파가 모세에게 청원한 말입니다.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민32:3-5).
그 때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보냈던 열 정탐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보고로 백성을 낙심하게 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하고는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온전한 믿음
믿음이 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에 따라 행위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믿음은 성숙한 믿음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식물도 자라야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신앙도 성장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와 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1-12).
또 온전한 믿음은 큰 믿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홍안 소년 다윗이 무엇으로 골리앗을 꺼꾸러뜨렸습니까? 믿음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도성을 무너뜨리고, 모세가 홍해를 육지같이 갈라지게 한 것도 모두 믿음의 역사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큰 믿음은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실 때 풍랑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는 지금도 기압골의 변화로 한밤중에서 새벽 4시까지 큰 바람이 자주 일어난다고 합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6:31-32). 주님께서 제자들을 이렇게 배려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타신 배가 성난 파도로 침몰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제자들이 주님을 깨웠습니다.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마8:25-27).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들은 물에 빠져 죽게 된 상항에서 깨웠는데 주님은 제자들의 작은 믿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무시는 주님을 깨운 일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일까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믿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보십시오.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습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 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 병든 하인을 고치기 위해 주님을 찾았던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위대한 역사는 위대한 믿음으로 이룩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2. 온전한 순종
하루는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일을 시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예’라고 대답을 하고 아버지 앞을 떠나서는 거역하고, 작은 아들은 ‘아니요’ 하였지만 나중에 반성하고 순종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비유입니다. 결과적으로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 효도한 것입니다. 온전한 순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민32:12).
여호수아와 갈렙은 고라의 무리들같이 모세에게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똑 같은 광야를 통과하였으나 애굽을 되돌아보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충성된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보배입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
오스 힐먼의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훈련하고자 하실 때, 그 사람을 감동시키기 원하실 때,
세상이 놀랄 정도로 위대한 사람을 만드실 때, 그 분이 사용하신 방법과 방식들을 보십시오. 당신이 택하신 자를 얼마나 철저히 다듬으시는지,
그 사람을 내리치고, 상하게 하시며, 강력한 타격을 가하여,
그를 초라한 진흙덩이로 전락시키시니, 이를 이해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뿐이시니, 고통에 겨운 그의 심령은 부르짖을 뿐이며, 그는 탄원의 손을 치켜들 뿐입니다. 그 분이 그 사람의 유익을 도모할 때, 구부리되 결코 부러뜨리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택한 자를 사용하시되 온갖 의도로 그를 녹이시며 온갖 행동으로 그를 권유하심으로서 당신의 영예가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그 분만이 아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온전한 순종의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온전한 믿음으로 순종의 제물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
메로스를 저주하라
삿5:23-24
사사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붙였고 그들이 20년 동안 심히 확대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에 사사 드보라가 바락과 함께 일어나서 철병거로 무장한 시스라의 군대를 물리친 후 하나님께 영광 돌린 노래입니다. 이 날은 전승의 날로서 모두가 기뻐하고 있던 그 때 거기에 저주 받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1. 저주받은 메로스
메로스는 이스라엘 평원에 있는 마을로서 그들이 저주받은 원인은 여호와를 돕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삿5:23).
여기서 어떤 일이 하나님의 일이며 어떤 일이 마귀의 일인지 알아야 하며, 어떤 일이 복 받을 일이며 어떤 일이 저주받을 일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가 돕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차질이 생기거나 실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씀일까요? 하나님의 일에 무익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도, 그가 받을 영광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맡은 책임을 묻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
1)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6-29).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요6:30).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영적인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완성하시고 안식하셨는데 그 안식은 육체의 노동을 그치고 영적인 사역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바로 지켜야 하는 이유는 이 날에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복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2:3).
복을 받지 못하면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된 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시127:1-2).
2) 선한 일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총독 느헤미야의 이야기입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는데 내 한 형제들 중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느1:1-3).
그 소식을 접한 느헤미야는 즉시 금식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넉 달이 지난 후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벽을 건축하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느5:5-7).
그 때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자기와 그 형제들도 총독으로 있는 12년 동안 녹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 년부터 제삼 십이 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느5:14).
느헤미야의 기도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느5:19).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13:14).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들니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여 복을 주옵소서”(느13:31).
3. 복을 받은 야엘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 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밭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삿5:24-27).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이 복을 받은 이유는 도망온 가나안 왕 야빈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광의 날, 승리의 날에 거듭거듭 저주받은 메로스가 있는가 하면 복을 받은 야엘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 복 받을 일이요 어떤 일이 저주받을 일인가를 알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한가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헤비타트 운동을 이끌고 있는 지미 카터는 일주일에 오일만 일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일학교 교사입니다. 나는 돌아가서 하나님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사의 이러한 헌신이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사명자를 키울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킴볼은 글을 잘 읽지 못했으나 구두직공 DL 무디를 전도하였고, 무디는 일억 명이 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아 멘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마8:24-34
본문 말씀은 공간복음에 공통으로(막5:1-20, 눅8:26-39) 기록되어 있으나 다만 그 장소와 인원수의 차이로 인해 조화에 난점이 있습니다. 영역에는 게르게센(Gergesenes)으로 되어있고 막5:1과 눅8:26에는 가다라 지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은 같은 지역을 다르게 부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지방은 게네사렛 호수로부터 멀지 않은 도시로 데가볼리라 불리는 열개 성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 숫자에 있어서 어거스틴과 칼빈은 이때 두 사람 중에서 유독 하나가 더 사나웠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와 누가는 더 난폭하고 다루기 어려운 한 사람 외에는 언급을 않고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1. 무덤 사이에서 사는 인생
우리나라는 매년 여의도보다 더 많은 땅이 무덤으로 잠식되어 가므로 뒤늦게나마 이에 심각성을 느끼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공원묘지 땅값이 중소도시 택지 값을 앞지르고 있으니 보통문제가 아니지요. 본문에서 귀신들린 자들은 귀신이 충동하여 무덤 사이에 있었으나 주님께서 귀신을 축출하므로 제정신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이 귀신에 사로잡히면 본의 아닌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을 때 유다는 자기의 소행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마26:20-25).
인간이라면 기본적인 양심이 있는데 어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은 들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유다는 이미 마귀의 화인을 맞았기 때문에 감각기능이 마비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기억합니다. 그가 충신 다윗을 죽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였으나 죽이지 못하고, 다윗의 음성을 들었을 때는 깊이 반성을 하면서도 고치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마귀의 화인을 주의하십시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1-2).
2. 인간성을 상실하게 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면 마음이 변하고 표정도 변하고 행동이 변합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사로잡히면 마귀의 변하는 것입니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위 자살 특공대를 보십시오. 모두가 알라신을 섬기는 마호멧 교도들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순교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용납 못할 살인죄라고 말씀합니다. 모두가 잘 살아가기 위한 인간애는 어디에 던져버리고 증오와 살인, 파괴행위를 일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귀의 올무를 주의하십시오.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마귀를 축출해야 합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마8:28).
3. 귀신들린 자의 부르짖음
사실 이 부르짖음은 귀신들린 자의 입을 빌린 귀신의 부르짖음입니다. 점쟁이 무당들이 하는 소리도 마찬가지로 귀신의 말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유의하십시오. 귀신은 저주받은 영이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알았으나 자기의 구원을 호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판이 이르기 전에 그 사람에게서 축출하지 말아달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에 그들이 소리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8:29).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막5:6-7).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마귀를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1서3:8).
4. 돼지의 자살 소동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주소서 하니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마8:30-32).
그 때 귀신이 돼지 떼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기를 원했다면 주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허락하자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갑자기 호수로 들어가 몰사하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짐승이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일까요? 사실 자살은 인간에게만 있고 짐승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짐승의 죽음은 수명이 다하였거나 다른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것이지요. 그런데 2천 년 전 거라사 지방에서는 이렇게 수많은 돼지 떼가 자살하였습니다. 군대 귀신이 돼지에게 들어가므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거라사 거인이 이 군대귀신에게 얼마나 시달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막5:5)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마귀를 멸하기 전에는 가정이나 사회, 어디에서도 번민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UN기구가 창설이 되었어도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면 기도하고 마귀를 축출해야 합니다.
5. 배척받은 주님
“귀신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거라사 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눅8:36-37).
군대 귀신 들렸던 사람이 정신이 온전해짐을 보고 백성들은 크게 두려워하면서 떠나기를 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재산상의 피해로 인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한 일로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었고 불의로 취득한 것은 네 배나 갚겠나이다’ 하였습니다. 우리도 어둠의 사슬에서 벗어나 삭개오와 같은 결단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심령이 가난한 자
마5:1-3
산상 8복은 ‘산상 보훈’ 또는 ‘산상 수훈’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씀은 마음 판에 새기고, 묵상하며 살아갈 때 은혜와 진리의 샘이 우리 속에서 솟아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1. 시기와 장소
이때는 12 제자를 세우신 후 복음사역의 초창기로 보고 있습니다. 가버나움 뒤편의 나지막한 산 정상에는 팔복교회가 있는데 8각형으로 짓고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어 검푸른 갈릴리 호수를 비롯하여 주변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 팔복교회 주변은 가파르지 않은 능선으로 수만 명을 대상으로 설교할 수 있는 분지인데, 이천 년 전에 주님께서 전한 복음이 그리워졌습니다. 흙 한줌, 돌 하나 또 자연 속에서 피었다가 시들어지는 꽃 한 송이, 풀 한포기, 어느 것 하나 평범하게 넘길 수 없는 곳이 이스라엘 땅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깨닫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2. 대상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1) 12 제자에게 하신 말씀
2) 대중을 상대로 하신 말씀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5:1).
기억할 것은 진리의 말씀은 시기와 장소, 대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 누구를 상대하여 하신 말씀이라 할지라도 대상과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3.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한 곧 마음이 빈 상태는 원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페네스: 일반적으로 가난 혹은 궁핍한 상태
프토코이: 무일푼의 가난을 뜻하는데 본문은 프토코이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10:17) 물어온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10:19-21).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켜온 이 청년은 영생 얻기에 합당하다는 칭찬이 있을 줄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 때 그 청년은 영생의 보화를 알지 못하고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음부에 떨어진 부자라면 재물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땀 흘린 사람이 물맛을 알고, 주린 사람이 음식 맛을 아는 것같이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부른 사람인지 보십시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고전4:7-8).
이미 배부른 자들은 사도들을 통해서도 은혜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교만한 자들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이며, 진실로 복 있는 사람인지 보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고전4:10-13).
생각해 보면 가난은 불행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은혜가 아니고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다른 공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복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107:9).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2-3).
이는 팔복 중에서도 첫 번째가 되는 복으로서 천국의 소유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땅 위에서 하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이보다 귀한 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육체파 마릴린 몬로의 말입니다.
“나는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나폴레옹의 고백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세계를 정복했지만 나의 왕국은 아무 데도 없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예수, 그의 사랑의 왕국은 날로 더해만 가지 않는가. 그와 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이상한 일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마음을 비우십시오. 은혜로 채워지는 거기에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시민권으로도 상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것은 사라져간 로마의 시민권이 아니라 하늘나라 시민권입니다. 너무도 감격하고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열두 보석으로 꾸민 집이 나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비우고 영원한 천국의 주인 됨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아 멘
세 가지 죄
잠21:3-4
잠언서는 지혜의 왕 솔로몬의 교훈집으로 지혜와 지식의 보고요 생의 철학입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잠1:1-5).
사람이 지혜의 가치를 안다면 잠언서를 평범하게 넘길 수 없을 줄 압니다. 본문에서는 세 가지의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눈이 높은 것
눈이 높다는 것과 높은 이상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젊은이가 품는 이상은 커야 합니다. 이유는 큰 꿈을 가져야 큰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설계도에 따라서 건물이 달리 지어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품은 이상과 꿈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이상과 꿈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꿈이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 없는 집념과 노력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공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난 해 미국에 갔을 때 달라스에서 박희삼 집사의 딸들을 만났는데 제가 목회할 때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이 지금은 둘 다 국제명문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받으면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꿈은 선교사역을 지원하는 것이라 하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상은 크게 가져야 하지만 눈이 높은 것은 죄가 됩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탐내다가 분쟁하는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5-28)하시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섬김의 도를 보여 주셨습니다.
높은 자리를 탐내어 눈을 높이는 자는 죄에 빠지게 되지만 낮은 자리에서 섬기기를 기뻐하는 사람은 의에 이르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마음이 교만한 것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무엇이 교만입니까?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마귀의 교만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다 타락한 영물입니다. 마귀가 얼마나 교만한지 보십시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4:5-7).
이처럼 교만한 마귀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들어갔고 또 장로들에게 들어가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멸시하였고 또 희롱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요8:49).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27:41-42).
마귀의 교만을 주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은 마귀의 시험을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경제적인 여유가 있습니까? 섬기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높은 학벌이 있습니까? 낮은 자리에서 덕을 쌓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신앙 연조와 직분이 높습니까? 세리와 창기에게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흑인 대륙을 찾아간 슈바이처 박사를 존중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높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섬기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높은 것은 죄가 됩니다.
3. 악인의 형통함
악인이 아니라면 형통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길을 잘못 가는데도 그 길이 순탄하다면 결과는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후회해 본 일은 없습니까? 어떤 사람은 “목사님, 예수 믿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목사님이 전도할 때 그 말을 듣고 믿지를 않았을 텐데...” 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 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121:5-6).
어떠한 고난이든지 고난의 의미를 알면 그것이 불행이 될 수 없는 것은 하늘나라 더 큰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2-36).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은 너무도 화려합니다. 1643년 루이 14세가 건축한 것으로 그는 오세에 즉위하여 칠십이 년 동안 권좌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궁전의 둘레는 43km2(4천만 평)으로 파리시(36km2)보다 넓었고, 궁전 안에는 이천 개의 방이 있고, 주방장이 칠백 명이나 있었으며 운하를 만들어 강물을 끌어들이고 천이백개의 분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이 건물은 박물관이 되고 루이 십육세는 콩코드 광장에서 “짐은 죄 없이 죽어 간다. 내 조국 프랑스를 위하여”라는 말을 남기고 처형되었습니다. 프레베르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멋진 가문
루이 1세, 2세, 3세... 16세, 17세 그리고 모든 것이 끝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들이 셈을 세어 가는데
스물까지도 셀 줄 모르게 생겨 먹었나.”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4-6). 아 멘
지체의 임무
고전12:12-13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다양한 은사가 같은 성령으로 말미암아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12절).
이와 같이 교회 안에도 여러 조직과 많은 직분이 있으나 모두가 한 주님으로 말미암았으므로 하나님의 분부와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새로운 멍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공부만 하라고 들볶는 부모 앞에서 견디다 못해 자살하면서 남긴 어느 여학생의 유서입니다. 사실 학교 성적이 좋다할지라도 잘못 풀리는 경우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학생 때 성적이 덜 좋은 친구는 사장이 되고 자기는 대리점 지점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럴지라도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고, 이제는 죄의 멍에 아래서 의의 멍에로 진리의 역군이 되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2. 열매 맺는 지체
포도나무는 관상목도 아니요 재목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을 재배하는 농부는 오직 포도 수확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15:1-2).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열매 없는 가지는 제거해 버리고,
2) 열매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도록 이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나무에 붙은 가지는 열매를 맺든 안 맺든 진액은 공급이 됩니다. 도리어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더 무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기대하는 것은 무성한 가지가 아니라 열매이기 때문에 열매 없는 그 가지는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면 욕심 부리지 마십시오.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는 앞장서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실 성령의 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손길에 붙잡히면 성령의 사역을 하게 되고 마귀의 노예로 전락하면 마귀가 기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체의 신비를 다 알지 못하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심장이 일을 하는데 혈액을 전신에 공급하는 일을 합니다. 혈액에는 백혈구와 적혈구가 있어, 어느 지체이든지 병마가 들어오면 백혈구가 싸우고 영양이 필요하면 적혈구가 공급합니다. 또 인체의 화학공장인 간장에서는 해독작용과 아울러 모든 영양소를 저장하고 있다가 머리에서 명령이 떨어지는 대로 주문생산에 들어가 혈관을 통해 신속히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유의할 것은 아무리 요긴한 지체일지라도 제 임무를 저버리면 기능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거운 몸을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는 어느 지체보다 튼튼한 근육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지 쓸 수 없는 경우가 생기면 근육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기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맡겨진 본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그리스도의 제자’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과업을 우리 육체에 짊어지고 주님 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왕 중의 왕이십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복음을 주장하거나 혁명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가난한 자와 병든 자의 곁에 계셨고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시며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어느 성도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어떤 은혜인데요?” “저 혼자의 몸으로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기가 너무도 힘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착하게 길러 주시고, 좋은 직장도 주시고, 또 교회에서 장학금으로 공부하게 해 주셔서...” 그러다 보니 모두가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거친 세파 속에서도 이렇게 밝고 힘 있게 살아가도록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3. 서로 존중함으로 연합하는 지체
개인이나 가정, 사회나 국가 모두가 시기나 분쟁이 없이 화합을 도모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끝을 모르는 정쟁이 어느 때에 그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민주주의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야는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라면 마땅히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무엘과 같이 나라를 위해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릭 워렌 목사의 섬김의 손길을 소개합니다.
“섬김의 손길,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원한다면 어떤 비천한 일도 마다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싫어하는 일들을 행동으로 옳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발을 씻으시고, 아이들을 돌보시고, 문둥병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하찮은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그의 사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 주는 것도 사랑의 행위라고 말씀하셨다(마10:42).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섬길 때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전4:9).”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3-15).
4.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지체
건강한 지체는 머리의 통제를 받습니다. 손과 발이 각각으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기형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지체입니다. 수십억이 넘는 세포가 한 생명을 이루듯 우리도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6-13). 아 멘
애통하는 자의 복
마5:4
세상을 ‘고해’ 또는 ‘눈물의 골짜기’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태어날 때 울고 눈물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 또 눈물을 남기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1. 조물주의 솜씨
눈물은 약간의 염분이 석인 물입니다. 눈물샘은 안구 세척과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만일 눈물샘이 없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수 없이 눈을 깜박이는데 눈동자가 열이 나서 오래지 않아 닳아서 없어질 것입니다. 또한 안구에 먼지나 티가 들어가 그때마다 병원을 찾아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척제를 준비해서 눈을 씻어 주시고, 세척된 그 물은 코로나와 공기를 정화시키는 자동필터가 되니 조물주의 솜씨가 너무도 기묘하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8:3-4).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주나이다”(시84:5-6).
2. 어린 아이와 노약자의 눈물
눈물이 없는 사람을 목석이라 하지요. 사실 눈물같이 호소력이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눈물은 탕자를 돌아오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고춧가루 애국자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해야겠는데 눈물이 나지 않아 손수건에 고춧가루를 묻혀서 눈물이 나오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와 노약자들의 눈물은 자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노인들은 보호의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3. 슬플 때의 눈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탄식하며 울다보니 눈물샘이 말라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렘9:1).
제가 아는 어느 가정에 갑자기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가정환경은 남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대학 다니는 큰 아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여행 잘 다녀오겠어요.” 전화로 남긴 목소리가 마지막이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You may be the Next”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죤 F 케네디가 달라스에서 오스왈드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 후 다음 날 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3. 회개의 눈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4:8-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겔9:4).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통회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통회하지 않고는 은혜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 될 것입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가룟 유다는 뉘우침은 있었으나 회개가 없었으나 베드로는 회개가 있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26:75).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7-39).
4. 중보의 눈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23:37).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21:41-42).
주님의 탄식입니다.
성령도 탄식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스펄젼은 “마른 눈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임박한 심판을 내다보고 탄식하던 선지자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 감사와 헌신의 눈물
이러한 눈물은 옥구슬 같은 보물입니다. 향유를 주께 부은 여인에게는 이러한 눈물이 있었으나 허비한다고 비난하는 가룟 유다에게는 없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러한 위로는 옅은 동정의 위로가 아닙니다. 나인 성 과부에게는 죽은 독자를 살려주시고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무덤에서 나사로를 살려 주신 위로요 기쁨입니다. 천국에서 누리는 성도들이 위로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7:16-17).
이 영원한 주님의 위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하나님의 언약
레26:3-13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의 율법을 따라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땅에서 복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로 인간을 유혹하여 죄와 사망에 이르게 하였으나 하나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심으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그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고 하였고 솔로몬은 믿고 순종하여 전무후무의 복을 받았습니다.
1. 물적인 복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택한 백성을 귀하게 하시고 또 머리가 되게 하시며 물질에 구애받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25-32).
여호와는 나의 목자요 나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모든 복은 위로부터 임한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순종하면 온갖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26:11-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14:23).
2. 평화의 복
지금 우리는 하루도 평안한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선군 정치를 내세운 이북은 핵무기만 늘려가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을 다시 무장시키는 이 마당에 우리의 안보를 지켜 줄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도 국회는 그칠 줄 모르는 정치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우리도 회개하고 기도하여 이스라엘이 잃어버린 복을 우리가 받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레26:6-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3. 번영과 창대의 복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다니엘은 칠십 년이 이르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했을 때 응답을 받았습니다. 약속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레26:9).
4. 영원한 자유
우리는 자유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이며 또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어떠한 이념도 참 자유를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총기사고의 원인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쌓여진 불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것을 법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요? 근본 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1-36).
“오 자유 오 자유 나는 자유하리라 비록 얽매였으나 나는 이제 자유하리 자유 주시는 내 주님께”
바울과 실라를 가두었던 빌립보의 감옥이 터진 것은 진리 안에서 사도들의 자유를 뺏을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레26:13). 아 멘
온유한 자
마5:5
온유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상태를 가리킵니다. 생존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해야 하지만 주님께서는 부드러운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잠22:24-25).
“목강측절”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나무가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입니다. 신록은 부드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온유가 주님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온유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과 사람에 대한 선이다.”(Vincent)
“온유는 부드러운 태도에서 살며 모해에 쉽사리 속하지 않으며 보복코자 하지 않으며 자기에 대한 악의에 길이 참는 것이다”(Calvin).
온유함은 복 받은 사람이 지닌 덕목입니다.
1. 모세의 온유
이스라엘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모세같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없습니다. 이는 모세가 남긴 기념비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모세는 바로의 영광을 외면하고 도리어 그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모세의 모습은 인자한 모습보다는 영웅적인 형태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바로의 궁전에서 성장한 사십 년 동안 출애굽의 야심을 품고 기다리다 벽돌을 굽는 작업장으로 나가서 자기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간수를 처단하여 모래 속에 묻어버린 사건을 비롯하여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백성을 요구한 일, 또 시내산에 올라가 사십일을 금식한 후 그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 만든 것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두 돌판을 던져서 깨뜨린 일들 모두가 부드러운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모세의 온유함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32:9-10) 하셨을 때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돌이키게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32:11-14).
2. 사도 요한의 온유
요한을 ‘보아너게’ 우레의 아들(막3:17)이라 하였습니다. 요한은 다른 제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주님을 위한 질투심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마리아 도성에 대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심판할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 내쫓는 것을 보고 함께 따르지 않는 일로 금하도록 권유하기도 하였습니다(눅9:49). 그렇게 성급한 인간성을 가진 요한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12제자 중에 가장 수를 누린 제자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했을 때 요한을 보고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19-22) 하시므로 그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는 죽지 않겠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요21:23).
사도 요한에 대한 일화입니다. 그의 말년에 설교할 때마다 사랑을 강조하므로 “선생님, 그 말씀은 전일에도 하셨는데요.” “그래도 사랑은 계속해야 하느니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3. 온유한 사람에게 임하는 복
1) 건강의 복을 주십니다.
건강을 해치는 질병들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순환기 장애, 신경성 질환,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질병은 마음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동일한 문제일지라도 어떻게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병이 될 수도 있고 분발하고 재기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
믿음과 소망은 역경과 고난을 치료하는 양약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지상의 복을 받게 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26:12-13).
이는 이삭에게만 국한된 복이 아닙니다. 경건한 부자들이 성경에는 얼마든지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부자들은 땅에서만 부자가 아니라 영원한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아 멘
불순종에 대한 화
레26:14-33
진리는 절대적이므로 진리에 순종하고 복종할 때 복이요 불순종하면 화가 미치는 것입니다.
1. 주의 명령에 청종하지 않는 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닌 다른 피조물에게 책임을 물어 심판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이유는 다른 피조물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고, 또 인간이 다스리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다른 사람을 닮지 않고 부모를 닮게 되어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리스에서 집시가 자기를 닮지 않은 아이를 자기 아이라 하여 키우는 것을 보고, 경찰이 DNA 검사를 했는데 하나도 맞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빼앗은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합법적으로 양아들, 딸들을 입양할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자식은 부모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 된 도리입니다. 탕자가 집을 나가 돼지의 지염을 먹었듯이, 인간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지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1-23).
이런 자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으므로 심판 때까지 포기해 버리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폐기처분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인생이 오물찌꺼기 인생으로 전락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새 삶을 주고 있는 브이 치치의 말을 소개합니다.
“삶의 목적을 찾는 것만큼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세상에 보탬이 될 만한 구석이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나를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도 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삶에 한계가 없다고 믿습니다. 나는 날마다 도전합니다. 팔다리가 없지만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2. 주의 규례를 멸시하는 죄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레26:14-15).
사울 왕이 버림받은 원인이 어디 있는지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삼상15:22-23, 26).
결과는 악신에 사로잡혀 번민에 쫓기다가 자살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싫어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십시오. 마귀의 말을 좋아하고 또 마귀가 기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아하여 거기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하지 못한 용어는 삼가하고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복을 받은 사람은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3-105).
3. 불순종으로 인한 형벌
1) 1단계 재앙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파종한 것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레26:16-17).
2) 2단계 재앙
“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레26:18).
“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12:15).
3) 3단계 재앙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배나 더 치리라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언약을 어긴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넘길 것이며 내가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히리라”(레26:24-26).
4) 마지막 재앙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배나 더 징벌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살을 먹을 것이요 딸의 살을 먹을 것이며 내가 너희의 산당들을 헐며 너희의 분향단들을 부수고 너희의 시체들을 부숴진 우상들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레26:27-30).
과연 이런 지경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 부릴 자 있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멸망 받을 자들은 끝까지 회개가 없습니다. 지은 죄가 커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가 없으므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7:12).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1-3).
지구 종말의 날에 멸망 받는 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끝까지 회개가 없었습니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계9:20-21).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계16:10-11).
우리 모두 회개하고 사유의 은총 입어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5:6
주님께서 의로운 자가 복이 있다 하지 않으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는 당연히 의로운 자 곧 생명록에 있는 자들이 들어갑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7).
우리가 믿는 복음은 구원이 완성된 천국에 있는 시민이 아니라 그 날을 기다리는 땅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름, 곧 갈급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하루는 한 젊은이가 소크라테스에게 와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제 선생님이 되어주십시오.”
하자 소크라테스는 “나를 따르라” 하고는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바닷물이 입술에 닿을 정도로 깊은 곳에 이르자 소크라테스는 젊은이의 머리를 잡고 바다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젊은이는 숨을 쉬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 때 소크라테스는 손을 놓아주었습니다. 물을 토해낸 젊은이는 극도로 흥분하여 물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자 “네가 숨 쉬고 싶어할 정도로 배우고 싶어할 때 내가 너의 선생이 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구상에는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어린이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비만증으로 어릴 때부터 성인병을 앓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나친 것도 문제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할 때에 균형이 유지될 줄 믿습니다.
2. 기회를 잃지 않는 자
흉악한 귀신들린 딸자식을 위해 주님 앞에 나타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에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막7:24-30).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8).
은혜 받을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소경 바디매오는 주님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았고 삭개오는 그 기회를 붙들어 복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장애가 있을지라도 극복해야 합니다.
‘저것은 벽’이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을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3. 영원한 축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굶주려 애태우는 자, 거룩한 삶이 그리워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목마르고 굶주린 자처럼 사모하는 영혼에게 허락됨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사십년 동안 매일 아침 내리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그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애굽을 그리워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지은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이 어떤 물인지 보십시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3-4).
무슨 의미일까요? 모두가 은혜의 양식이요 은혜의 음료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 먹고 마시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거울로 삼아 우리는 감사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은혜의 눈이 밝아지고 내게 있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는 지각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
무슨 말씀일까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왜 받지 아니한 것같이 너를 자랑하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롬8:32).
2) 영 죽을 나를 대신하여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
우리도 바울같이 나의 나 된 것이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
미리암의 문둥병
민12:1-16
비브롯 핫다아와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므로 백성 중에 다시 원망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민11:4-6).
입맛의 변덕은 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십년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보십시오. 불평을 할 수 없을 만큼 기본적인 것을 보장해주셨습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 하였느니라”(신8:4).
이렇게 기적 속에서 살면서도 왜 감사를 몰랐을까요?
1. 육신의 소욕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이스라엘 백성을 누가 애굽에서 해방을 시켰습니까? 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영의 생각을 따르지 아니하고 육신의 생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3;5-6).
2. 애굽을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
이스라엘이 들어갈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이지 애굽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굽에서는 노예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애굽을 그리워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불행이 있다면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삶이리라 생각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장애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길은 하나님께서 연단시키시는 영적인 훈련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방법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누군가를 훈련하고자 하실 때, 그 사람을 감동시키기 원하실 때,
세상이 놀랄 정도로 위대한 사람을 만드실 때, 그 분이 사용하신 방법과 방식들을 보십시오. 당신이 택하신 자를 얼마나 철저히 다듬으시는지,
그 사람을 내리치고, 상하게 하시며, 강력한 타격을 가하여, 그를 초라한 진흙덩이로 전락시키시니, 이를 이해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뿐이시니, 고통에 겨운 그의 심령은 부르짖을 뿐이며, 그는 탄원의 손을 치켜들 뿐입니다. 그 분이 그 사람의 유익을 도모할 때, 구부리되 결코 부러뜨리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택한 자를 사용하시되 온갖 의도로 그를 녹이시며 온갖 행동으로 그를 권유하심으로서 당신의 영예가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그 분만이 아십니다.” (오스 힐먼)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
3. 미리암의 문둥병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1절).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다는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로는, 그 여자가 십보라라는 설과 십보라가 죽고 나서 얻은 다른 여자라는 설입니다. 역사가 요세퍼스에 의하면 에디오피아 공주가 모세와 결혼한 것이라 했습니다. 문제는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2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6-8).
하나님께서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을 모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지도자에게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고라의 무리도 땅이 입을 열어 삼키게 하였던 것입니다.
4. 미리암의 문둥병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10절).
그때에 아론은 왜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Hall 주교는 “그녀의 더러운 혀가 얼굴을 더럽게 한 것은 정당한 벌”이라 했습니다.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11-12).
5. 모세의 기도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주옵소서”(13절).
그가 누구입니까? 누구보다 동생을 깊이 알았고 또 함께 동행 하고 있는 누이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14절).
이렇게 영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무서운 죄가 됩니다. 우리는 서로 원망하지 말고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을 들어내어 보응 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겸손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긍휼히 여지는 자
마5:7
긍휼이란 가엽게 여기어 동정함(국어 대사전), 비천한 중에 있는 사람을 동정하고 구제하려는 자애롭고 경건한 마음(매튜 헨리), 남의 고통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그를 도와주고자 애쓰는 마음(알버트 반즈).
또 은혜는 허물을 제하고 긍휼은 고통을 제한다(벤겔)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긍휼
긍휼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2).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7-8).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 이렇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긍휼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같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또 암탉이 병아리를 자기 품에 모으려 하심같이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2:17-18).
나인 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울지말라 하시고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고(눅7:13-14), 허기진 무리를 불쌍히 여기사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요6:5-11, 막8:1-10).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
3. 성령의 긍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마시고, 성령의 열매 맺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4. 성도의 긍휼
긍휼은 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과 같이 귀중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내 몸 같이 귀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기억할 것은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긍휼 없는 심판대에서 살아날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긍휼을 베푸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주님께서 심판 날 오른 편에 있는 양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것이 곧 내게 하지아니한 것이니라”(마25:34-45).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들은 작은 자를 주님께 하듯 섬겼고 염소는 작은 자를 평범하게 대하여 넘겼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도 염소가 아닌 양의 대열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무에 따라 은사를 주시고 충성에 따라 상급을 주십니다. 우리가 긍휼을 잃으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될 것입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고후11:29).
긍휼은 남의 고통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도우려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눅10:25-37)를 기억합니다. 위선을 버리고 긍휼을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톨스토이의 걸작 중에 “악마의 제자”가 있습니다. 내용은 악마의 제자로 자처하는 불량 십대 소년을 그 부모가 성자로 알려진 사제에게 맡겼는데 어느 날 혁명 폭도들이 일어나 부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학살하게 되자 성직자는 피신했는데 악마의 제자는 붙잡혔습니다. 그 때 그가 성직자의 거처를 알려주면 자기는 살고 사제는 죽게 됩니다. 또한 사제도 자신이 죽어야 악마의 제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마의 제자는 사제를 대신하여 죽음을 택하고 사제는 자신이 살기 위해 악마의 제자를 죽게 하였습니다.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 모두 긍휼의 은혜가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마음이 청결한 자
마5:8
어떤 학자들은 마음의 청결을 성화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독립적인 덕목을 의미합니다. 참된 종교는 청결한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 청결한 마음
하루는 주님께서 저녁 잡수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에 베드로가 사양하므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13:7).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행하신 일은 단순히 섬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은혜에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유의 은혜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주님의 세족식에 참여하여도 영생의 주님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요13:10-11).
중요한 것은 제자들에게도 이 섬김의 도를 실천하도록 모범을 보이신 주님께서 섬김의 손길을 통해 존귀하게 되는 복과 사유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4-17).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1-23).
2. 사유의 은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3:4-7).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에게 사람들이 돌을 던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자기들이 저지른 죄로 인해서입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요8:7-9).
2) 예수님의 허물을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기 위해 바리새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은지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고, 또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은 일곱 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데 부활 때에는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하였습니다(마22:15-32).
사람이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질문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의 속을 다 아셨기 때문에 그 올무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요8:3-6).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3.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1)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그러나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하나님을 온전히 뵈옵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어느 전도자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 때에 방랑객이 되어 어느 깊은 산 속에 있었는데 “마음을 청결하라 그리하면 나를 보리라”는 음성을 듣고 반문하기를 “성결이라면 몰라도 청결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였더니 “분명히 맑을 청자니라 의심이 나거든 마태복음 5:8을 보라”고 들려주셨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 기독교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다시 세상을 보았을 때 밝은 천지가 보였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6).
2)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3-16).
그들은 주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고, 오병이어의 떡을 먹고, 또 죽은 자가 살아남을 보았지만 주님이 메시아임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후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베드로가 어떻게 이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의 눈이 밝아지면 “마리아야” “랍오니” 이른 새벽 무덤을 찾았던 마리아와 같이 주님을 뵙게 될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24:3-4). 아 멘
화평하게 하는 자
마5:9
화평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이는 유대인의 인사이며 또한 그들의 꿈입니다. 성도는 마땅히 화평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날지라도 화평을 조성하는 사람(Peace Maker)이 되어야 합니다.
1. 화평의 하나님
화평은 한편으로는 질서요, 조화요, 연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는데 이는 만족을 표시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창조의 질서가 있었고 조화가 있었으며 또 유기적인 연합이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 질서와 조화와 연합이 깨어지고 인간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화평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1:20-2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3:23-26).
2. 화평의 왕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화평의 왕이십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2-16).
간혹 매스컴을 통해 긴급한 수술 환자를 위해 희귀종의 혈액을 찾는다는 광고를 봅니다. 혈액이 맞지 않으면 거부반응을 일으켜 수혈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 분은 무한 자비하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사유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인생은 공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특수 체질이나 혈액형이 상관이 없으며 어느 부분이 병들었다 할지라도 근심할 것 전혀 없습니다. 평강의 왕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권속으로 영접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화평의 복음
첫 번 성탄에 천사들의 노래입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3-14).
아무리 평화를 운운한다 할지라도 그 곳에 평화의 복음이 없으면 참된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과의 화목이요 또 사람과의 화목입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원수 된 장벽이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이념이 상관이 없고 국경이나 혈통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모릅니다.
다른 나라는 돈을 위해 회사를 확장하는데 우리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는 생명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2:7-8).
4.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본래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났고 죄 중에 살다가 멸망 받을 죄인입니다. 그러나 화평하게 하는 이 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화평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5:22).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마7:16-19).
어둠에 속한 자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과연 분쟁이 있는 곳에 화평의 열매를 맺는 사람인지 화평이 있는 곳에 불화를 일으키는지? 그 행위에 따라 상급이 달라질 것입니다. 맡은 임무에는 구분은 있을지라도 이 땅 위에 평화의 나라, 의의 나라 이룩할 목적은 하나입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의 말을 소개합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입니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을 껴안을 수 있습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한 사람을 붙잡습니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나는 사만 이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 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마5:10-12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라는 말은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그렇지만 박해를 자초할 필요는 없을 줄 압니다. 다만 세상 법을 무시하거나 남에게 부덕을 끼치므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1.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0-12).
이 말씀은 의에 대한 개념이나 기준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의를 위해 사는 자가 구원의 결실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사 주의 백성 곧 선민의 열조로 삼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15:16).
여기서 유의할 것은 열매가 있으면 무엇을 구하든지 그 기도를 응답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을 줄 압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 차고 넘치도록 공급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일을 맡길 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2) 의를 위해 사는 자가 세상의 빛이 됩니다.
여러 해 전에 월북한 최덕신 교령이 75세로 이북에서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군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사단장, 군단장, 군사정전위 대표, 주 서독대사, 외무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결정은 용기와 결단력과 책임감 있는 최고 지도자다운 풍모를 보인 것이다... 유신체제는 우리의 정치 풍토와 체질에 적합한 가장 민주적인 체제이다.” 하고, 월북한 후에는 “김일성 주석님이야 말로 한울님이다. 태양계도 포괄하는 온 우주를 한 품에 안아... 은총을 베푸시는 전지전능하신 현세의 한울님이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영원불변한 것은 어떤 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성전이 훼파되고 바벨론에 의해 망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므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 앞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단3:28-29).
2.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의 복
이는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을 의미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5:11-12).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
세상 영광을 위해서도 꿈이 있는 사람은 고난을 극복하는데 하물며 하늘나라 영광을 소망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더 큰 복을 받게 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1928년 22세의 본 헤퍼가 강연에서 고등학생들에게 한 말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종교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인물과 관계가 있습니다. 종교는 죽은 것,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에는 전혀 다른 것, 바로 하나님 자신이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그 분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헌신에 대한 그분의 절대적 요구를 진지하게 수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삼십구 세의 짧은 삶을 산 한 사람이 오늘의 하이테크 시대에까지 어떻게 이처럼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이것이 그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처럼 죽을 수 있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
박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소망의 눈이 흐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스데반이 돌무덤에 들어갈 때에도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이 밝았던 것은 하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2) 믿음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벧전4:1).
이 믿음으로 무장된 성도에게는 죽음도 두려움이 되지 못하며 환난도 장애가 되지 못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예비 된 상급
천국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순교자들이요, 다음은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이 있는 자에게 십자가는 최고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손 양원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빨갱이들에게 체포되어 끌려갈 때에 공포에 사로잡혀 함께 끌려가는 한 젊은이를 보고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젊은이, 죽음이 두려운가? 예수를 믿으면 죽음은 천국 가는 지름길이네. 예수를 믿어야 하네.” 그런데 모두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때 그 사람은 다리에 총을 맞아 죽지 않고 살아나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내 몸에 고난의 흔적이 생길 때에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늘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은 내가 혼자 걷는 길이 아닌 이미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길이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길입니다. 기뻐하며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 것임이라’ 아 멘
구름의 징조
민9:15-23
성경에는 구름에 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비를 내리는 자연 상태의 구름도 있지만 대부분은 진리적인 의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던 구름기둥을 비롯하여 구름과 관련된 말씀들이 출애굽기에서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사십여 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증거의 구름
애굽에 내린 장자재앙으로 인해 바로는 더 이상 조건을 제시하지 못하고 모세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값진 보물들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오게 되었는데 숙곳에서 출발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기까지 여호와께서는 그들 앞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습니다.
이렇게 출애굽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요,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다시 군대를 이끌고 따라오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자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과연 하나님께서 막다른 골목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동풍을 불게 하여 홍해를 육지같이 길을 내셨습니다. 기적의 통로가 열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길이었으나 바로의 군대에게는 심판의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표적의 구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과 나누는 영적인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십계명과 제사의 법령인 레위기를 받았으며 천국의 모형으로 이스라엘 진 중앙에 성막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또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성소에 필요한 모든 기구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봉헌예식을 올리자 주의 이름을 두신 곳,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일은 그 날 이 후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진 중앙 성막 안에 좌정하시므로 성막 위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구름과 불이 덮였고 또한 증거막 위에 덮인 구름의 징조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민9:17-20).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앞길의 보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간 광야 길은 사하라 사막같이 광활하고 위험한 지역은 아니라 할지라도 민족 대이동의 역사로 볼 때에는 결코 쉬운 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같이 편리한 교통수단이 있고, 방향표시가 확실한 세상이라면 얼마든지 오고갈 수도 있으나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감사드려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표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을 하면 우리의 갈 길이 아무리 험해도 근심할 것 없을 줄 믿습니다.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9:21-23).
2) 현실적인 문제의 보장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역사에 가장 기적이 많았던 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사십년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반석에서 솟아나오는 생수를 마시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추라기를 먹었습니다. 또 사십년 동안 광야 길을 걸을 때에 옷이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였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 떠나지 아니 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사십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느9:19-21).
3. 계시의 징조로 나타난 구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출19:9).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출16:10).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 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출19:16).
이렇게 구름은 여호와께서 나타나시는 징조가 되었습니다. 이 구름은 솔로몬의 성전에, 또한 승천하시는 주님께도 나타났으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들림 받는 성도들에게 나타날 징조입니다(살전4:17).
이제 믿음의 눈으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만 아니라 오늘도 임마누엘의 주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를 발견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영원한 기업을 보장받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복음의 능력
행16:19-25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러 그 곳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는데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칭찬받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초대교회는 이렇게 믿음이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해 갔는데, 오늘의 소아시아는 98%가 회교권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해 당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28-31).
1.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행16:6-7).
그 때 성령이 바울을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한 이유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긴급을 요하는 일이 마게도냐 지역에 생겼으므로 바울의 발길을 그리로 가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내놓은 사람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2-24).
순교를 각오한 바울이라 할지라도 주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2. 빌립보의 첫 열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
이 환상을 보고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네압볼리로 건너갔습니다. 네압볼리는 오늘의 까발라라 하는 인구100만 정도의 항구 도시입니다. 거기서 빌립보까지는 자동차로 3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인데 지진으로 무너진 유적들을 보아 바울 당시에는 많이 번창했던 지역인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바울은 기도처를 찾아 강가로 나가서 여자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 두아디라 성의 자색 옷감 장사로서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했습니다.
1)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
루디아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바울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면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게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행8:27-39)와 백부장 고넬료(행10:1-4)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모하는 영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여도’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양을 사랑하는 선한 목자의 마음입니다.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7-11).
2) 은혜를 입은 여자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행16:14-15).
이로 인해 빌립보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빌립보 교회는 마게도냐 교회 중에서도 칭찬을 받은 교회로서 이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리디아 기념 교회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빌4:15-17).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또 좋은 토양에 심은 곡식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3. 귀신들린 자를 고친 일
귀신을 다스리는 권세는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주신 영적 무기입니다(막16:17).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행16:16-18).
주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마귀의 아성이 무너지고, 진리 안에 있는 자에게 참된 자유가 보장됩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4-36).
4. 완전한 승리
사람은 결박하여도 진리는 결박되지 않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16:25-26).
종말적인 심판이 닥칠지라도 두려워할 것 없는 것은, 그 날이 성도들에게는 최대의 승리와 영광과 보상의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간수가 자다가 그 광경을 보고 자살하려 하므로 바울이 소리 쳤습니다.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16:28-34).
이것이 복음의 완전한 승리요, 전도자의 승리입니다. 이 승리가 오늘 우리의 승리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기도
민10:33-36
애굽에서 나온 지 제이 년 이십일에 시내 광야에서 법궤를 앞세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출발할 때와 궤가 머무를 때에 올린 모세의 기도입니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35-36).
어떻게 보면 이는 모세의 기도와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모세의 기도로 인해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르고 또한 모세의 기도로 인해 구름이 떠오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시는 사역에 모세의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간절한 기도가 필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1. 기도의 의의
일반적으로 기도는 간구 즉 무엇이든지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는 것인 줄로 생각하지만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도 대화가 단절되면 교제도 끊어지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와 같이 기도가 끊어지면 교제도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값진 보석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 분이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천국에서 중요합니다. 그 분은 당신을 아주 진지하게 대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서면 수행원들은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고개를 돌립니다. 무시당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을 더듬거나 두서가 없어도 누구도 당신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집중하여 들으십니다. 기도는 값진 보석처럼 소중히 취급됩니다. 기도의 말은 정화되고 능력이 있어 주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올라갑니다. 당신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여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당신은 기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하늘의 행동은 누군가 이 땅에서 기도할 때 시작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맥스 루케이도)
2. 기도할 수 있는 특권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요, 가장 큰 은혜 역시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이보다 더 든든한 보장과 큰 복이 있을까요? 이 복을 묻어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고, 맡긴 사명 바로 감당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신실한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겔36:37).
3. 기도할 때 지각이 열려집니다.
응답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응답이지만 인내를 요하는 경우도 있고, 문제를 그대로 두는 응답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깨닫는 지각을 열어주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7-9).
4. 기도로 귀신을 다스리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벙어리 되고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기 위해 제자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지만 밤을 새우며 기도해도 고치지 못했는데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께서 고치심을 보고 제자들이 물었을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8-29).
KJ 버전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행3:1).
기도하는 사도들의 손길을 통해 앉은뱅이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귀신을 다스릴 수 없고 또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병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5.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기도
1)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마귀가 기뻐하는 기도입니다. 꼭 같이 구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가 있고, 정욕적인 기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 믿음과 기도로 모두가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2) 통회하는 기도입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하였던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통회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응답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 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57:15). 아 멘
감사와 찬양의 은혜
시100:1-5
본 시편은 유대인들이 예물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은 시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일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1. 범사에 감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4절).
백합꽃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향기를 풍기듯이, 성도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의 향기를 잃지 않아야합니다.
2. 자족과 감사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상의 자리)
[어느 의사가 솔즈베리(영국 남부의 고원지대)의 양치기에게 물었습니다.
“내일 날씨가 어떨 것 같습니까?”
“글쎄요, 제게 기쁨을 주는 날씨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날씨는 언제나 저를 기쁘게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일은 매우 고달프지 않습니까?”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해야 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하지만 빈둥거리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말은 그렇지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텐데요.”
“그것도 맞습니다. 고생스럽고 어려운 일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들판에 나가서 일하면 도시 한 복판에 사는 사람들처럼 갖은 유혹에 노출될 일도 드물고 하나님에 대해 묵상할 시간은 더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양치기의 자리에 놓으신 것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최상의 위치에 두신 것이니까요.”] C S 스펄젼
2. 불행을 행복으로 변화시키는 중화제
주님의 이름으로 환난과 박해를 당할 때에 성도가 불행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8-9).
마귀의 올무를 주의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하와에게 어떤 올무를 사용했습니까? 불만의 올무였습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에덴동산에 불만이 있을 수 없었으나 마귀의 올무에 빠져들면 지족과 감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항상 헌금을 도둑질하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예수님까지 은 삼십에 팔았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족이 있었습니까? 자기의 소행을 자기도 용서할 수 없었기에 목매달아 배가 터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7-8).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0-11).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세상에서 제일 복 받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하나님께 가장 많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요, 가장 큰 부자가 있다면 믿음의 부자입니다.
몰몬경에 보면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생육과 번영을 할 수 없었다 하고 또 그 때는 불행과 기쁨도 알지 못했으며 죄를 알지 못했을 때에는 선을 행할 수도 없었다(몰몬경 니파이서2:22, 23, 24)고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분명한 것은 생육과 번영의 복은 타락 이전에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그러므로 사람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여자가 해산하는 수고는 없었을 것이요 남자는 땀 흘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영원히 살 수 있고 땅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없었을 것입니다.
4. 주의 궁전에 사는 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4-5).
이는 찬양과 감사를 모르는 자는 그 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71:6).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84:1-4).
천국에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천군천사와 함께 세세에 살아계신 성 삼위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6:1-3).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계7:9-12).
모세의 범죄
민20:1-13
세상에서 흠 없이 온전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불행입니다. 이것이 죄 아래 있다는 증거인데 죄에는 무서운 보응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충신 우리아를 죽게 한 것이 큰 죄가 되었다면, 모세도 혈기로 반석을 두 번 친 일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1. 모세가 범죄한 원인
이는 목이 곧고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서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정월에 신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미리암이 거기서 죽어 장사지낸 후 또 다시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3-5).
이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입니까? 지금 그들은 오늘은 보아도 내일은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물론 그들의 현재 상태로만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광야 길이 아무리 거칠고 험할지라도 그 곳에 정착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인내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을 그리워하였습니다.
오늘이 아무리 고달프다 할지라도 뒤를 보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누릴 영원한 기업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광야와 같은 오늘의 세상이 아니라 약속의 땅 영원한 천국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1서2:15-17).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과연 성도가 불쌍해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도리어 천국의 소망이 없이 살다가 멸망 받을 죄인들이 불쌍한 자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의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오늘이 고달파도 애굽을 그리워하지 마십시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6-39).
2. 모세와 아론의 기도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6-8).
기도보다 더 큰 자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충성된 믿음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즐겨 응답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이는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동안 기도하였고 또 응답을 받았는데도 백성 앞에서 대노하여 반석을 두 번이나 내려치고 말았습니다.
1) 모세의 과신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10-11).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모세는 응답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어떻게 하면 그 반석에서 샘이 솟아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럴 때일수록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모세의 혈기
물론 모세가 혈기를 내었다면 목이 곧고 패역한 그 백성들로 인해서였습니다. 그럴지라도 경건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106:32-33).
진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1:19-20).
경건한 사람은 더욱 언행을 주의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
은혜로 사는 몸,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더욱 주의하십시오. 죄는 순간일지라도 보응은 무서운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에돔 땅 변경 호르 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르시되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니라”(민20:23-24).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 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신34:1-4). 이렇게 미스바의 사건으로 아론은 호르산에서 생을 마치고 모세는 비스가산에서 마쳤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아 멘
선한 사업에 부자
딤전6:17-19
어느 날 교회 건축적금 문제로 은행에 들렸는데 은행직원이 적금 잔고를 보고 하는 말이 “사장님 여기 와서 앉으십시오.” 하면서 차를 대접하는 것을 보고 같이 간 집사님이 한 수 더 떠서 “이 분은 사장님이 아니라 회장님이야.” 해서 웃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사장님, 회장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돈만 있으면 사장도 되고 또 회장도 됩니다. 그렇게 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 많아 복이 되기도 하지만 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일 중에 하나는 뇌물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있어서 불량 자료 납품 비리 사건으로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이라 하면 소유개념이 아니지만 재물이라 하면 소유개념에서 생각합니다. 이는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때문일 것입니다.
1. 물질과 신앙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십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신분에 맞게 살아가면 물질에 구애받거나 매여서 종살이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6:31-34).
천국에서 먹는 문제로 근심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성 없는 짐승은 본능대로 사는 것이 당연하므로 누구도 그런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짐승처럼 산다면 욕이 됩니다. 더욱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물질과 죄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돈은 액수에 따라 그 가치가 일정합니다. 그러나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있어서는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생명을 살리는 기금이 될 수도 있고 죽이는데 쓰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질이 의롭게 쓰일 수도 있고 악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 뇌물로 쓰이는 물질
성지 순례 때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에 갔더니 그 나라는 돈이 법인지 법이 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카이로 박물관 입구에는 카메라 휴대금지라 써 붙여 놓았는데 그 안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어서 알아보았더니 2$만 내면 허용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발람은 뇌물에 눈이 어두워 멸망 길로 빠진 이방 선지자입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물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벧후2:15-17).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23:8).
2) 탐욕의 물질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의 물질이 탐이 나서 엘리사를 속이고 얻은 일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들었고(왕하5:20-27). 아간이 여리고 도성에서 물질을 훔쳤다가 돌에 맞아 죽었고(수7:25-26), 아나니아 삽비라가 땅 값 얼마를 숨겼다가 저주받아 죽은(행5:1-11) 일이 있었습니다. 또 물질을 제 용도에 따라 쓰지 않고 낭비하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3. 물질과 선행
선한 열매는 마음으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물질이 따라야 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5-17).
우리는 소유의식보다 바른 용도에 따른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묻어두어 녹슬게 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육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약5:1-5).
4. 영원한 부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17-19).
여기서 부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1)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쇠붙이가 좌석에 영향을 받듯이 마음은 물질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청지기의 신분을 바로 알면 물질로 인해 교만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2)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은 생의 목적이 될 수 없으므로 물질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한 천국에 있으므로 썩어질 것과 없어질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뜻을 준행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물질의 주인은 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지기의 신분을 망각하면 가진 것도 빼앗기고 형벌을 받지만 맡긴 임무에 충성하면 하늘나라 상급이 쌓여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리 모두 믿음의 부자 되어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왕이신 예수
마2:1-2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날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하늘에 나타난 별의 인도를 따라 경배하러 왔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절).
그들은 상당한 지위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베들레헴에는 예수님의 탄생 기념교회가 있는데,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세운 1,600년의 역사를 지닌 건물입니다. 페르시아 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 다른 교회는 다 파괴하였으나 그 교회는 보존하였는데 교회 안에 동방박사들의 모자이크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천 년 전에 동방으로부터 온 그 박사들로 인해 예루살렘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유는 한 아기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소식을 헤롯이 듣고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그 일로 인해 아기 예수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난을 당했고 또 그 신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귀가 헤롯의 마음을 어떻게 자극하였으며 또 유대인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잘 살펴서 마귀의 올무에 빠져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1. 예수는 왕이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6-37).
어둠이 왕 노릇하는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진리의 세계만이 영원합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에 본 금 신상은 이 세상 나라이고, 그 신상을 깨뜨린 뜬 돌은 그리스도 왕국입니다. 그러므로 불원간 이 세상은 종말적인 심판으로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룩될 것입니다.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단7:17-18)
2. 예수는 불의와 죄악을 심판하시는 왕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요5:22-23).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요5: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2:26-27).
그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회개하고 심판 받을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죄가 많아서 구원 받지 못함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버트란드 러셀은 노벨 수상자입니다. 그가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는가?”에서 ‘아들을 그처럼 처참하게 죽이는 그 신을 나는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신 그 참혹한 십자가는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3-34).
3. 예수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은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19:41-42).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입니다. 그런데 평화의 도성에 평화가 없음은 무슨 이유일까요? 이는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박대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23:37).
왕이신 주님께서 좌정하셔야 할 자리에 마귀가 앉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곳은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마24:15-18).
4. 예수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2:44).
이 나라가 우리의 본향 천국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막11:8-10).
불원간 주님께서 오십니다. 그 날에 주께서 왕 됨을 원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있고,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 성도들은 영원한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날의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그리스도의 탄생
마1:23
인간은 기쁨 속에서도 슬픔이 있고 슬픔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감정의 곡선이 있습니다. 뜻 깊은 성탄을 맞아 감격의 눈물을 보이는 분도 눈에 뜨입니다. 그것은 불행의 눈물이 아닌 은혜의 눈물입니다.
1. 성탄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신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아무리 태양이 밝아도 맹인에게는 여전히 어두운 것입니다. 고대 교회의 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론에 대한 분쟁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리우스와 아다나시우스의 논쟁이었습니다.
아리우스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가 창조되었고 또 그리스도의 영은 로고스 곧 말씀으로서 인간의 영혼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강조하고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도 있었습니다. 헬마스는 “그는 평범한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예수께 임재하여 머무르셨다.”고 하였고 데오도터스는 “예수는 성령의 비호로 처녀의 몸에 나셔서 인간 중에서 가장 의로우시며 신앙심이 깊은 분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이 아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그 위에 내리시므로 특별한 사명을 다하시도록 필요한 힘을 받으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니케아 회의에서 확정된 것은 아다나시우스의 주장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 본질에 있어서 아버지인 하나님과 동일하시며 영원 전부터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면서 완전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교리를 시정하고 바른 진리를 확립하였다고 비 진리와 이단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이단은 오늘도 줄기차게 뻗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어둠에 속한 자들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비밀입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4-16).
베드로에게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2. 성탄은 구원의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0-2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
매년 성탄이 돌아오면 백화점, 술집, 심지어 퇴폐업소마저 성탄트리로 화려해지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성탄의 의의를 바로 알지 못하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1-12).
아브라함의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므로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6-48).
오늘 세계의 종교분포를 보면 기독교, 불교, 회교가 주종을 이루고 또 나라마다 우상종교가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십시오. 바울이 삼층천을 다녀오고 손수건을 얹을 때에 병마가 떠나가고 심지어 사도들의 그림자만 비춰도 고침 받는 역사가 있었다고 하여 그들을 신성시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메시아는 그리스도 외에 달리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3. 성탄은 은혜의 사건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탄이 역사적인 사건이요, 구원의 사건일지라도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면 여전히 멸망 받을 이방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눅1:26-28, 35).
이렇게 그리스도의 탄생은 은혜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그리스도를 주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고전12: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요3:5).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 나서 이 뜻 깊은 성탄과 함께 가정들마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
마25:14-21
누구를 막론하고 지나온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출발이 있다면 종말도 있다는 것이요, 그 날에는 모두가 자기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마태복음 2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모두가 종말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날에 부끄러움 당하지 않도록 오늘을 바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배분된 달란트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14-15).
누가복음 19장에는 므나 비유가 나오는데 열 사람을 불러 한 므나씩 배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달란트 비유와 같이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할 때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내게 하였습니까? 그것이 충성과 불충성의 차이입니다. 지혜자의 말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2. 그 날에 상 받을 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보고하였을 때 주인은 그들에게 동일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0-23).
종이 주인에게 맡은 일을 하였다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충성된 종에게 칭찬과 함께 많은 것을 맡기고 또 주인의 즐거움에 동석시켰습니다. 이 뿐 아니라 누가복음에는 심지어 주인이 종에게 수종을 든다고 하였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눅12:35-37).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눅12:42-44).
3. 그 날에 심판받을 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신분에 맞지 않게 주인의 기대를 저버린 무익한 종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했든지 싫어했을 수 있습니다. 이유는 주인에게 칭찬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주인은 반드시 돌아와서 결산을 보게 되어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청지기들의 소행을 보십시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5-48).
한 달란트 받은 종의 핑계를 보십시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마25:24-25).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둔 자가 받는 심판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25:26-30).
우리는 주님 앞에 무익한 자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보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기도의 무장을 풀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회개하는 기도가 중요하고 충성된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힘차게 기도하고 선한 일에 욕심을 내어 기도합시다.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일을 맡길 때 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충성된 대열에 서서 주님의 날에 영광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마지막 경고
말1:1-5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로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어떤 주석에는 “말라기는 어느 지루한 하루를 장식하는 늦저녁과 같으나 동시에 자궁 내에서 영광의 날을 간직하고 있는 아침 여명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말라기의 예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통렬한 책망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또 ‘어떻게’ 라는 단어를 반복함으로 도덕적인 타락과 영적 신분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라기서는 계2장-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와 유사점도 있습니다.
1) 멸시받은 사랑(말1:2) :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계2:4).
2) 멸시받은 이름(말1:4) :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나 사탄의 회(계2:9).
3) 주님의 상을 경멸한 죄(말1:7) : 발람의 교훈을 받아들인 죄(계2:14).
4) 멸시받는 인내(말2:17):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음(계2:21).
5) 환영받지 못한 문제(말3:8): 살았다 하나 죽은 사데 교회(계3:1-3).
6) 성물을 도둑질 한 죄(말3:8): 부유한 라오디게아 교회(계3:15).
1. 사랑을 망각한 죄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1-3).
에서와 야곱은 동복형제일지라도 함께 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에서는 장자였고 또 이삭도 에서를 사랑해서 장자의 복을 빌려고 하였으나 야곱이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부모의 편애라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예정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25:23).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2).
2) 에서가 장자 권을 대수롭잖게 여겼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창25:32-33).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12:16).
3) 육신의 길을 걸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유11절).
이것이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잃어버린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그처럼 복 받기를 원했어도 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4절).
BC 450년경에 바벨탑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을 찾아보고 자기의 공적도 그렇게 사라져버릴 것을 생각하여 탄식하며 돌아섰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안목을 가지고 무엇이 욕된 것이며, 무엇이 영원한 것인지를 바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 주의 이름을 멸시한 죄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6절).
그것이 바로 주의 상을 경멸히 여기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가문이 저주받은 죄악이 무엇입니까? 제사를 멸시한 것입니다.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십시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삼상3:14).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를 멸시한 죄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9-10).
3.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는 죄
우리의 혀로 기도하고 또 찬송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이 혀가 마귀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입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2:17).
이렇게 혀로서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또 조롱하는 것은 용납 못할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말3:7).
4. 하나님의 성물을 도둑질 한 죄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3:8-9).
아직도 성물을 도둑질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면서도 거리낌조차 없다면 이는 중대사입니다. 어떤 분은 꿈에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결산을 보는데 다른 분들은 다 도장이 찍혔는데 자기 이름 밑에는 공란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결단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물을 구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임을 알았다면 모두가 실천하여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