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중에 작은 자
고전 15:1-11
복음 중에 복음이라면 그리스도 부활의 복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임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또 여러 가지 은사를 다룬 후에 이제는 그리스도 부활의 진리에 관해 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부활의 사건이 은밀한 중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육신으로 오신 주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으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한 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광이 곧 우리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15:51) 하였습니다.
1. 영생에 이르는 믿음
복음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한다면 이는 참된 복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언제나 그리스도 부활에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1-2).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미 받은 복음이요 또 그 믿음 가운데 서 있다 할지라도 동일한 복음을 또 다시 전해야 할 것은 복음은 믿는 자에게 생명이 되는 영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은 건강한 것 같아도 곡기가 끊어지면 속히 운명하지요. 사실 죽음에는 젊은 사람, 어린아이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까? 영적인 생명 또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전화 심방을 하면 “내가 모두 알아서 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는 분도 있습니다. 고맙지요. 그러나 영혼이 핍절하면 우리의 믿음도 약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빌3:1).
우리의 믿음은 복음을 들음으로 성장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홍포 입은 부자에게 낙원의 아름다움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 성경대로 이루어진 부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3-4).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한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메시아가 아닐지라도 태어나기 전부터 이삭과 삼손, 세례 요한과 같이 예언으로 태어난 인물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임무와 사명을 부여하여 보낸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예언에 의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영하라 하는 일반적인 법칙에 의해 왔지만 선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일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다른 이들과 같이 부분적인 임무를 띠고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려 함이라”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각본에 의해 등장한 인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각본은 진리가 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너의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하였습니다.
3. 부활의 증인
바울은 본문에서 부활의 증인들을 모두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횟수와 숫자를 보아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5-8).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1) 원수에게는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에서라면 바리새인들과 그를 심문하던 제사장들에게 한번 보이셨으면 역사가 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백보좌 심판 때에는 그들에게도 보이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보이시는지 보십시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하셨습니다.
2) 택함을 받은 자 즉 사랑하는 자에게 보이셨습니다.
귀중한 선물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부활을 믿으십니까? 나에게 이 믿음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3) 시공을 초월하는 분으로 등장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26).
이렇게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께서는 이제 나귀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사십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셨으나 어디에서도 숙식을 함께 하신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신 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불원간 우리의 부활이 되어 우리도 이 영원한 영광에 이를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바울의 겸손
1)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자
이는 출중하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곡식이 덜 익어 수확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는 인간으로서 어디가 모자라게 태어난 자와 같다는 고백입니다. 일찍 그가 진리를 대적할 때는 이런 겸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이후 주님 앞에서 자신은 너무도 미미한 존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순간이라도 멸망 받아 마땅한 자로서 죄인 된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갈2:6).
그런데 본문에서는 너무도 낮아진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 자신의 영광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밤하늘의 별들이 밝은 태양 아래서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게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5. 두 가지 고백
1) 나의 나 됨의 은혜
미국 대통령 부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엘 고어와 대통령 선거로 한참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을 때에 그의 보좌관으로부터 권유가 있었습니다.
“유세 때 될 수 있으면 하나님의 소리를 적게 하라 유권자의 인기가 떨어진다”고 하자.
“나는 이 땅에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만일 떨어지면 NBA 자격이 있으니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여 더 인기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또 하루는 기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존중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를 들 수 있습니까?” 하였을 때 서슴지 않고 “Jesus Christ. He has change me and my life." ”예수 그리스도, 그는 나를 변화시킨 분이다”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믿으면 천국가고 불신자는 지옥에 간다는 것이 보수층의 믿음인데 당신의 신앙관은 어떠합니까?”
“Ask God.” “그것은 하나님께 물어보시오. 구원하고 안하는 것은 나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믿기 때문에 사후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내 신앙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더 많이 수고한 은혜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0절).
얼마나 마음 뜨거워지는 고백입니까? 이러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자기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소원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살아 계신 주님께서 충성된 모든 자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