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 사랑
고전13:4-6
사랑은 모든 은사의 모체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은사도 사랑이 결여되면 무익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편지한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2-5).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곧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성경에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부부로 비유하는 것은 남녀가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밖에서의 만남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모두가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로 인해 지금은 계약 결혼을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주거형태도 혼자 살아가는 원룸이 늘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서는 어떤 형태의 삶도 행복의 욕구를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
1. 소극적인 사랑
이는 성별이나 성격에 따른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에 가속 페달과 정지 페달, 두 장치가 함께 필요한 것과 같이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1) 사랑은 오래 참고
중세 시대 “성 빈세트의 물을 마셔라”는 말이 있었는데, 유래는 부부 싸움이 그칠 날 없어 수도원을 찾아온 사람에게 해결책으로 수도사는 수도원의 물을 한 병 떠 주면서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마다 이 물을 머금고 삼키지는 마시오.” 라고 하여 한 번, 두 번 그러다가 화목하게 되어 전설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아서 만난 사람이 살다 보면 미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럴지라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니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스러운 데가 있어야지요.” 푸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부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은 어느 쪽도 완전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Never try to make anyone like yourself - you know, and God knows, that one of you is enough"
“절대로 다른 사람을 당신과 같이 만들려 하지 말라 당신도 알고 하나님도 알듯이 당신 같은 사람은 하나면 족하다”는 말입니다.
현숙한 아내와 근면한 남편으로서 주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면 주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2) 사랑은 온유하며
모두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부드러운 어머니 품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가정이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4절).
사랑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사랑은 행복을, 투기는 불행을 가져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8:6) 하였습니다.
3)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신뢰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부지간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 가정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4)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사람은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언어 예절을 보면 부부인지 오누이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가부장적 문화에 젖어있는 남자들은 특히 언어폭력에 주의해야 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라는 이 말씀에 유의하여 성경적인 아내의 위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내 또한 남편의 위치를 존중하여 기쁘게 순종해야 합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5-6).
진실한 사랑은 상대편을 먼저 배려하는데서 찾게 됩니다. 또 불화가 있을지라도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도록 속히 풀어야 할 것입니다.
2. 적극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적극적인 사랑이요 선험적인 사랑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6절)
사랑하기에 삼가야 할 것은 마땅히 삼가야 하겠지만 진실한 사랑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에덴동산에 불행이 찾아온 원인과 다윗의 왕가에 덮친 불행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과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4:4-5).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7-8).
3. 온전하게 하는 은혜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8절).
우리가 육체로 있는 동안은 예언과 방언뿐만 아니라 모든 은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이러한 은사가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천국에는 사랑만이 필요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어렸을 때에는 단단한 음식이 아닌 모유가 필요하듯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다양한 은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9-11).
여러분!
아직도 옛 사람의 생활 습관에 젖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야 합니다. 나무는 자라야 열매를 맺고 믿음은 성장해야 일꾼이 됩니다. 아이는 본능을 따르지만 장성한 사람은 이성으로 판단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어린아이로 있을 때에는 아이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장성하면 진리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진단해 보셔야 하겠습니다. 신앙 연조와 직분은 신앙 성장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어제 유명을 달리한 이상훈 성도 입관예배를 드리면서 고인의 사진을 보고 저런 때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삶, 우리가 걷고 있는 고달픈 이 여정이 얼마나 남았는지 측정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자의 말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12:1)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2-13).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