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의 임무와 위치
고전 12:12-31
오늘 우리는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는 육체를 지니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므로 의미 없이 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체를 해부하는 의학도는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깨닫는 눈과 귀가 열려질 때 존재의 신비를 발견할 뿐 아니라 또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게 될 줄 믿습니다.
1. 지체와 몸의 관계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12절).
한 몸에 다양한 지체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다양한 지체를 통해 진리의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절).
사람의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는데 그 중에 어떤 지체도 몸을 떠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 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밖에는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하셨습니다.
2. 지체의 조화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14절).
1) 지체마다 고유의 임무가 있습니다.
축구 선수는 11명으로 한 팀을 이루는데, 효과적인 경기를 위해 선수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정해집니다. 모두가 승리를 목적으로 뛰게 되는데 여기는 공격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비수도 있고 또 골키퍼도 있는 것같이 지체의 임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15-17).
인체의 신비는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이목구비를 누가 이렇게 이상적으로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만일 얼굴 중앙에 있는 우뚝한 코를 발바닥이나 항문 근처에 두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온갖 먼지와 냄새로 하루도 상쾌한 기분으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눈이나 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억할 것은 그 위치에 따라 임무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11년 만에 밝혀진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을 두고 경찰에서 재조사를 펼치는 것은 그것이 경찰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2) 다른 지체를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다리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팔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팔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임무를 기운이 더 있다고 다리가 대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21절).
성도가 시험에 들면 불신자들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구역식구가 미워지기도 하고, 다른 성도들이 미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해지면 그런 사람 보기 싫어 교회 오는 것도 힘들어지는 경우까지 발생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도리어 은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미워도 멀리할 수 없는 관계가 가족입니다. 신혼부부들을 보면 너무도 아름답지요. 에덴의 행복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1-24).
그런데 지금은 한 몸같이 일생을 사랑하며 살도록 서약한 부부가 돌아서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마치 한 몸을 절반씩 나눠가지는 격이라 할 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행복을 불행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외롭고 고달픈 나그네 인생길을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살아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지음 받은 그대로를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18절).
최초의 설계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하기에 남자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성전환을 하며, 또 주름진 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다 보니 배꼽이 가슴에까지 올라간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미얀마 여인들은 황새같이 목이 길어야 미인으로 간주하여 목을 억지로 늘리기 위해 구리를 용수철같이 목에 감고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 사는 원주민들 중에서는 여인이 귀에다 구멍을 뚫고 고리를 걸고 다니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는가 하면, 또 어떤 부족들은 추장의 입술에 구멍을 내어 접시만한 것을 끼우고, 또 코에도 구멍을 내어 맹수들의 송곳니를 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청소년들은 구멍 난 청바지에 머리를 염색하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백발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흑발이 좋은 줄 모르지요. 하나님의 작품을 손상하지 맙시다. 자신이 둘도 없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주님의 영광 위해 자긍심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4) 공평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22-25).
옛날에는 안경을 멋으로 끼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멋을 더 내기 위해 자기 이를 빼고 금니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 양말을 멋으로 신는 분은 없을 줄 압니다. 손님이 오기 전에 양말을 신는 것은 맨발이 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의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다른 사람에 비해 여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랑하지 마십시오. 권세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육체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에게 더 귀한 믿음의 보화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9:23-24).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26-27)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이탈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지체의 위치에 따라 충성하여 주님을 기쁘게 해야 하고 다른 지체와 유대를 돈독히 해야 합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9-31).
우리 모두 주님께서 예비해 두신 제일 좋은 길, 더 큰 은사를 사모하고 기도합시다. 이상적인 교회는 다양한 성도들이 화목한 가운데서 충성하므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이 영광의 대열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