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강해설교

징계와 사랑

주님만 주님만 2014. 9. 27. 13:07

징계와 사랑

고전 4:14-21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월드컵(Word cup) 경기가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백년 만에 올 수 있는 기회라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이런 경기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은 동족상잔의 피를 흘렸던 이 땅에서 이제는 세계인의 축제를 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모두가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시적인 흥분상태에서 스쳐가는 기쁨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한 구원의 기쁨으로 성화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1. 참된 영광
이 영광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 영광과는 달리 진리 안에서의 누릴 수 있는 영광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10-11).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서 너무도 대조가 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누구와 함께 하시며 누구를 더 기뻐하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을 멀리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져도 만족이 없고 주님과 함께 하면 세상 것을 다 잃어도 부족함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고 떠났던 야곱은 천상의 복과 장자의 권을 가졌으므로 돌아올 때는 두 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교만한 자가 아닌 겸손한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사도 없이 왕 노릇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14절)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히 누릴 영광이 어떤 것임을 바로알아서 우리는 기회를 잃지 말고 더욱 겸손한 믿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2. 스승과 아비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15절).
이것이 개척자만이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영광입니다.
‘스승과 아비’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군사부일체”라 하여 임금과 스승, 부모님은 동일하게 존중하라 하였습니다. 구분을 한다면 스승은 교육적인 관계에서 존중의 대상이고, 부모는 존재적 관계에서 그러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관계이므로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역하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 또한 큰 죄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여기서 목회한지 23년, 그러다 보니 제가 주례하여 시집 장가간 사람들이 자녀를 낳아 또 결혼시킬 나이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 어리고 철없기 그지없던 강희세 집사가 새 집을 지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삼 남매를 두고 젊은 나이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옥자 집사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로는 특별한 재주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녀들이 모두가 잘 자라서 어머니께 효도하는 것을 보면 역시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잘 섬기고 효도하는 가정에 복 내려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복 받을 믿음의 유산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16절) 하였습니다.

3. 믿음의 아들 디모데
바울의 생애에서 무엇보다 큰 수확은 디모데를 얻게 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 충성하기를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같이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일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아들이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하라”(눅10:2)고 하셨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하나같이 사람을 바로 쓸 줄 알았다는데 있습니다.
카네기 무덤에는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볼 줄 알았고 그를 활용할 줄 알았던 세기의 거인 여기 잠들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얼마나 아끼고 신뢰하였는지 보십시오.
“이를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7절) 하였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 의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의논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 통찰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상담을 원할 때는 해결할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에게 찾아갑니다. 의사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3) 충성된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충성된 사람은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게으른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6) 하였습니다.
디모데의 충성심을 보십시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2:19-22).
하늘나라에서 받을 면류관은 맡은 달란트에 충성하는 자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 모두 충성된 믿음으로 영광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의 나라 물질의 풍요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주님께서 나를 위해 베푸신 성찬예식은 세상 사람들같이 진수성찬으로 즐기는 것과 의미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지만 세상 잔치는 육신을 위하는 데 그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북에는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영양과잉으로 체중이 늘어나서 이제는 아이들이 성인병으로 인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체중은 늘었으나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건강이 아닙니다. 우리는 식욕을 위해 음식을 찾지 말고 일하기 위해 음식을 찾는 사람이 되고, 물질을 선용하여 복음 사역에 이바지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5. 진실한 경건은 능력에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18-20).
주님의 교훈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지 아니하여 권세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는 예수를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셉과 같은 정치인이 나와서 나라가 복을 받고 기독교 문화로 변화시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이름뿐인 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경건의 능력을 힘입기를 소원합니다.

6. 징계와 사랑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21절).
사랑 대신 징계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줄 압니다. 그런데 사랑 받을 사람이 사랑 받을 행동을 안 하면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할지라도 사랑받을 자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은혜 받을 자에게 은혜 베푸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시18:25-27) 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떠한 주님을 기다리십니까? 은혜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완고하여 회개를 모르는 자들이라면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요 회개하여 사유의 은총을 힘입고 돌아온 탕자와 같이 내 아버지 집에서 충성된 자들은 그날에 영광이 넘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 내려주시는 주님 앞에서 겸손한 믿음으로 영광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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