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강해설교

성령의 전

주님만 주님만 2014. 9. 27. 13:09

성령의 전

고전 6:12-20

작은 축구공 하나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World cup) 경기를 개최한 것도 그렇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축구 강국들을 무너뜨리고 연일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선수들이 패배했다면 개최국이라는 명분만으로는 이렇게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16강에 들기를 그처럼 염원했는데 이제는 당당하게 4강에 올랐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머물 것이 아니라 금주 화요일 상암경기장에서 준결승을 거쳐 마지막 일본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도 우승을 할 수 있도록 뜨거운 성원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선수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량에 기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은 곧 전국을 붉게 물들인 국민들의 응원과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성도들의 승리를 위해 구름 같이 둘러싼 우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세 가지 비결입니다.
1)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용맹을 떨치던 여호수아 군대도 성물을 훔친 아간으로 인해 아이성 싸움에서 참패한 일이 있었습니다.
2) 인내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인내하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
그러므로 기한과 때가 이르기 까지는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만 바라보았을 때에는 물 위로 걸을 수 있었으나 성난 물결을 보고 의심이 들었을 때는 물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어떠한 역경이 있습니까?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가는 길이 험난합니까?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극복할 능력을 주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바울은 본문에서 주제를 돌려 이제 다른 문제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1. 자유와 건덕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12절).
인간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피조물 중에서 인간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다스릴 수 있는 다른 피조물은 창조하지 않으시고 다만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잊어서 안 될 것은 인간에게는 만물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보존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를 보십시오. 그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먹는 것에만 매달리는데 그러면서도 더 낳은 내일을 위해 농사짓지 않습니다. 육식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아닌 다른 피조물에게 자연 훼손의 책임을 물을 수가 없지만 인간에게는 묻게 됩니다. 내게 자유가 보장되었다고 공공의 이익에 해가 되는 일을 한다면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같이 자기 생명에도 해가 되는 행위는 삼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혜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혜는 마귀의 도구로 전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내게 유익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또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우리도 진리 안에서 누리는 이 자유로 본분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음식과 인간
“식물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식물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13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배는 위장(코일리아)을 의미합니다.
맹수들의 눈에는 초식동물이 먹이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식동물들의 눈에는 푸른 초원이 먹이로 보이는 것입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흙에서 영양을 섭취하며 자라납니다. 그런데 동식물이 제공하는 것으로 영양을 섭취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동식물 모두가 입맛을 충족시키는 식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각 나라가 처한 환경과 전통에 따라 내려오는 음식 문화가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연령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그처럼 왕성하던 식욕도 감퇴하기 시작하고 또 병이 들어 먹을 수 없는 날이 닥치면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일지라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식물이 주는 기쁨은 내가 건강하여 섭취할 수 있을 때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것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하신 말씀은 썩어질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모두가 허무로 끝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새벽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어떤 분이 찾아왔습니다. 대단히 노여운 목소리로 자기 아내가 교회에 헌금한 것을 찾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연유는 남편 대우를 해주지 않고 교회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달에 얼마나 생활비를 드리느냐고 물었더니 복덕방에 나갈 때는 생활비를 주었지만 지금은 나이 많아 나가지 못해서 주는 돈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돈을 교회에 그렇게 많이 바쳤겠느냐고 하면서 “정 그렇게 의심이 간다면 교회를 함께 나와 보십시오 그러면 아실 것입니다.” 그랬더니 “나는 교회에 안나옵니다. 옛날부터 교회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면서 이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팔아 그 돈으로 경로원에 들어가 편히 살리라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나오지 않는 가족일지라도 측은히 여기시고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사람이 향락을 목적으로 산다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5절). 우리는 성스러운 그리스도의 지체로 성령의 열매 맺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성령의 전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9-20).
여러분!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을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해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보혈을 대가를 지불한 주님의 소유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장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이유는 그 물건이 내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나를 사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주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건강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주신 건강으로 주님을 기쁘게 섬기십시오. 지혜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주신 그 지혜로 주님을 기쁘게 섬기십시오.
물질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주신 물질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주님께 드린 정성은 하나도 헛되지 아니하여 영원히 주 앞에서 내가 누릴 영광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에 매여 종살이 할 때는 마귀의 기뻐하는 일을 했을지라도 이제는 은혜로 사는 몸, 내 마음 성전 삼고 성령이 내 속에 거하심을 알았다면 이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십시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19-22)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자는 하늘의 영광을 이 땅에서 맛보고 누리게 될 줄을 믿습니다. 이 영광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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