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언제까지 만족을 모르는 괴물일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으니 문제다.
우주 공간을 영영 정복할 수 없다고 미리 단념해 버렸다면 천문과학은 없었을 것이다.
자식의 결혼이 늦어지는 아들이 어머니의 눈에는 그렇게도 민망하게 보였던지,
“애야, 너에게 시집 올 아기씨가 그렇게도 없냐?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으면 집으로 데려 오너라.
나는 너 결혼하는 것 보고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 후에 사귀던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어. 이제는 어머니가 만족하시리라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다.
“애야, 아직도 기별이 없느냐?”
“무슨 기별이요?”
“아직 애가 없느냔 말이다.”
“글쎄요...”
한날 결혼한 동생보다는 늦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자식을 주셨다.
“어머니, 이제는 소원이 없으시죠?”
“아니다. 나는 네가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을 보면 소원이 없겠다”하시며 밤낮 노래를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이일도 허락하셔서 교회를 헌당하고
“어머니, 이제는 하나님 앞에 감사드려야지요.”
“그래 옳다. 그러나 나는 우리 교회가 크게 부흥되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
결국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지기전에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나그네 길을 마치게 하셨다.
살아계실 때 그 소원을 이루어 드리지 못한 불효가 마음을 괴롭힌다.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 나는 나의 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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