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 시대에 살았던 한 나그네의 노정
1. 일제 통치하에서
반만년의 역사가 끊어졌던 왜정시대에, 황해도에서 태어난 한 부부의 이야기다. 여자는 조실부모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부요하게 자라난 고명딸이었고, 남자는 너무도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새벽마다 교회에 먼저 나와서 새벽종을 울리는 열심 있는 청년이었다. 어디서 그런 열심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한국 교회사에서도 보면 성령역사가 평양과 원산, 황해도에서 일어났고 이로 인해 평양은 제이예루살렘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그 자리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을 세워 섬기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너무도 가난하고 주렸던 왜정시대에는 매년 성탄절이 돌아오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이 지금도 다시 탄생하시고,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에게 나타나신 천사의 음성도 다시 들려오는 것 같은 생각이 날 정도로 성탄 축제를 준비하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순수한 어린아이의 믿음을 기뻐하신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교회는 매년 두 번씩 목사 장로들이 돌아가면서 모이는 노회가 있었는데, 그런 때에는 모두가 반가운 얼굴들이라 식사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교회이야기도 하고 그동안 궁금했던 문제들도 함께 나누게 된다. 거기에 또 곁들이는 이야기는 신앙 좋은 젊은 사람들의 짝을 찾아 주는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목사님,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교회는 별 일 없고요?”
사실 왜정시대라 교회마다 박해가 너무도 심했다. 일본 경찰의 눈에는 교회가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비쳐졌기 때문에 억지로 신사참배를 시켜 우상을 섬기게 했다.
하지만 기독교는 박해가 심할수록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이었고 또 풀무불도 사자 굴도 불사하였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믿음이다. 이로 인해 그 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형제의 사랑이 그 어떤 것보다 뜨거웠던 것이다.
“네 장로님, 주님의 은혜로 이렇게 잘 지나고 있습니다. 장로님의 건강은 어떠신지요?”
“덕분에 저도 잘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그 날에 부끄러움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생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혹시 중매할 젊은 청년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예 장로님, 반가운 이야기인데 혹시 그런 청년이 있습니까?”
“예 우리교회 신앙 좋고 키도 크고 인물도 헌출한 총각이 있습니다. 얼마나 신앙이 좋은지 새벽마다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새벽종을 울리는데 얼마나 착한지 모르겠어요!”
“그래요? 우리 교회는 너무도 예쁘고 믿음도 좋고 거기다 마음씨도 착한 부잣집 아가씨가 있는데 한 번 소개해 볼까요?”
“예, 참 잘 되었네요. 한 번 해 봅시다.”
본래 중매하는 사람은 좋은 것만 보고 소개하기 마련이다. 또 그래야 중매가 될 수 있으니...
“너무도 마음에 듭니다..”
이렇게 중매는 시작되지만 성사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하여 처녀, 총각이 소개되었는데 만나기에는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구십 리 밖이라 중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오늘 같이 교통수단이 좋은 세상이면 자동차로 삼십분도 안 걸릴 거리지만 그 때는 오솔길에 또 자갈길이라 두 발로 걸어야 하는 길이니 그렇게 만만치는 않았다.
허지만 그동안 꿈속에서 상상하던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발밑에 바퀴(?) 달려 쉽게 갈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로의 첫 만남은 기대 이상이었다. 하루 해가 저물어 가는데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아쉽게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을 하게 되었고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랑은 깊어만 갔다. 이번에는 중간이 아닌 아가씨 집에서 만남이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할머니의 소개도 받게 되었다.
할머니 역시 손녀사위 감으로는 의의가 없었다.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에...
그런데 아가씨는 집도 가족도 소개를 했는데 총각은 한 번도 자기 집에 초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신 부모님도 한 번 뵙고 또 인사도 드리고 싶어요.”
“천천히 만나도 괜찮아요. 내가 잘 말씀드리고 있으니...”
아가씨의 제안에 수긍은 하면서도 만날 기회를 쉽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런 중에 점점 사랑이 깊어져서 이제는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도 아쉬워진다.
“누가 결혼을 연애의 무덤이라” 했던가?
그 때의 만남은 너무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이었다. 이것이 꿈이었다면 깨지를 말아야지...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 네 이는 모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에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아 4:1-5).
하루는 총각이 “우리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는 제안을 하자, 이미 마음으로는 결혼을 다짐한 때라 반갑기도 하고 또 흥분이 되기도 했다.
그 날이 다가 왔다. 곱게 차려 입고 얼굴도 예쁘게 단장하여 남자의 부모님을 처음으로 찾아뵙게 되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막상 남자가 사는 집에 가서 보니 문이 장석도 없는 집이라 방문을 들어갈 때 문짝을 들고 들어가야 하고 나올 때도 문짝을 들고 나와야 했다.
너무도 가난한 움막집이었다. 순식간에 이상의 꿈이 산산조각이 되고 말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런 집이 아니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가난한 집도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사랑이 무엇이기에 그런 상황이 조금도 부끄럽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또 그러한 사정 때문에 남자를 멀리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내가 결혼하면 돈을 가지고 와서 새집을 짓고 살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아 4:10-16).
2.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드디어 꿈은 현실로 돌아와 양가의 승낙을 얻어 목사님의 주례 하에 하나님과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날로 시집 올 때 가져온 돈으로 새 집을 짓고 또 남편을 공부도 하게 하였다.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보다 뒷바라지 하는 사람이 코피를 쏟으면서..
그럴지라도 매일 매일의 생활은 너무도 기뻤는데, 그 때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이런 것이 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날을 추억하며 노래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멈추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렇게 공부하여 드디어 교사 자격증을 얻게 되었고, 또 사랑의 결실로 첫 아들도 선물로 얻었다. 아빠와 엄마를 닮은 아들이라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그 때에 청천 벽력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곧 삼팔선이 가로막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북에는 김일성이 들어와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업고 공산정권을 수립하였다. 북한 헌법에 분명히 종교자유가 보장된다는 조항이 있었기에 조만식 장로와 김익두 목사가 선봉이 되어 기독교자유당을 만들어 김일성을 적극 후원했으나 김일성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 제일 먼저 기독교를 박해하고 척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1950년 6.25 전쟁이 터졌고 그 가정도 박해를 피해 남한으로 피난을 했다.
마침 교사의 자격증이 있었기에 육사에 들어가서 5개월을 훈련 받고 육군 소위의 계급장을 달고 소대장으로 전쟁에 투입하게 되었다.
3.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행복했던 나날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죽어갔는데 살아남는 군인은 계속 계급이 올라갔다. 소위에서 중위로 중위에서 대위로...
그동안 대구에서 낙동강 전투를 사수하다가 제주도로 파견되어 공비토벌을 하고 다시 대구로 와서 전쟁하는 동안 영관급으로 승진하여 몇 년이 되지 않아 대령이 되었다. 그동안 둘째 아들을 선물 받고 또 셋째를 임신하게 되었을 때 남편의 제안이다.
이제 아들 둘을 낳았으니 이번에 아들을 낳으면 당신이 남편에게 한 턱을 내고 딸을 낳으면 내가 당신에게 한턱을 내기로 약속을 했다.
사실 아들, 딸은 인위적으로 가려서 낳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식은 조물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을 뿐이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시 127:3-5).
그런데 이번에는 귀염둥이 딸을 낳았으니 남편보다 아내가 더 기뻐할 수밖에...
약속한 대로 아내는 남편에게 갑절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때가 그리워 노래를 하고, 이런 때가 아쉬워 슬퍼도 한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 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 3:5).
세상은 전쟁으로 아우성인데 이 가정은 행복의 깨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후에 또 막내아들을 선물로 받았으니 지금으로 생각하면 애국자 중에 애국자의 가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4. 포도원을 허는 여우
그런데 그 때 아내의 친구가 황해도에서 피난을 내려왔는데 가족도 잃고 갈 곳도 없고 거기다 먹을 것도 없어 방황하고 있었다. 그 사정을 알고 마침 이 가정에서 그 친구를 만나 구제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 가정을 덮칠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을 그 누가 알았을까?
이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나쁜 생각을 했기에 불행을 초래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친구를 구제했으니 칭찬 받을 사람이요, 아내는 반가운 친구를 구제할 수 있었으니 고마운 사람이요, 아내의 친구는 자기를 구제해 주었으니 두 사람 모두 은인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아내도 모르게 남편이 그 여자와 선을 넘고 말았다.
이 가정으로서는 남북 전쟁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터지고 만 것이다. 아내로서는 참을 수도 이해 할 수도 없는 너무도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해서 남편을 오늘에 이르게 했는데... 나는 그동안 남편을 위해 모두를 바쳐왔는데...
그렇게 믿었던 남편인데... 그 친구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이제는 무엇으로도 마음의 깊은 상처를 싸맬 수도 회복할 수도 없게 되었다.
원수가 따로 없다. 그동안 김일성 원수를 때려잡기 위해 전쟁을 했는데 그 보다 더 큰 원수가 내 집에 있을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남들은 남의 일이라 쉽게 말들을 한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자식들이 있으니 자식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것이 남자들의 근성이라고...
그런데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남편이?
그렇잖으면 그 여자 친구가?
내가 잘못해서 그 친구를 구제한 일로?
이것이 바로 선악과로 타락한 원죄 때문이요, 인간의 연약함 때문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에게 있는 이성의 약점을 마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지금 국회에서는 성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구실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들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종말적인 심판을 앞당기는 징조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성 결혼이 그렇게 귀중하게 여겨진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앞장서서 아들을 위해 다른 남자를 자부로 받아들이고 사위를 위해서 다른 여자를 받아들여 본보기로 삼았으면 어떨까? 성적인 타락이 극도에 이를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기억하고 마귀의 올무에 빠져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행복은 지킬 줄 아는 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귀중한 보배일지라도 그 가치를 모르면 소유하고 누릴 수 없다.
사실 이성 없는 짐승이라면 본능대로 행동하여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도리어 당연한 일이요 자연스러운 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짐승에게 윤리를 논하겠는가?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윤리가 있고 도덕이 있다. 그러므로 행복이 귀중한 줄 알았다면 그것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전 2:15).
마귀의 유혹은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그 올무에 빠져들어 죄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마귀의 유혹 앞에 인간이 너무도 연약하기에 복음이 필요한 것이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4-36).
군사정권 시절이라 이제는 군복을 벗고 모 도청소재지에 있는 C시에 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처음 탈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두 번 세 번이 반복되면 점점 익숙해지는 법이다. 그 후에는 해마다 여자를 바꾸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어떤 여자인들 참을 수 있겠는가? 결국 아내는 집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집 나온 그 날부터 살아가기는 너무도 막막하고 어려웠다.
주거할 집도 없고 생활할 돈도 없었다. 중랑천에 있는 철거민 무허가 건물에 방 한 칸을 겨우 얻어 봉제 기술을 익혀, 동대문 시장에 가서 가져온 한복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밤낮으로 일을 했으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푼돈에 그쳤다.
문제는 이렇게 어려운 사정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식들이 큰 애부터 둘째 셋째 막내까지 차례대로 엄마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네 아비에게 있어야 밥도 굻지 않고 공부도 할 수 있단다. 속히 들어가라.” 아무리 설득하고 쫓아내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다른 여자가 싫어요. 엄마가 없는 집에는 들어가기 싫어요. 나는 엄마를 떠나기 싫어요.”
울며 매달리는 자식들을 볼 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렇게도 보고 싶어 찾아왔는데 막상 엄마에게 있으니 먹을 것도, 입을 것도, 학교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둘째가 청천벽력 같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는데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생떼 같은 자식이 죽어가는 그 모습을 목도했던 그 충격은 너무도 커서 무엇으로도 싸맬 수가 없었다. 결국 견딜 수 없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한강을 찾아가서 자살 기도를 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길에는 어느 누구 동행자도 있을 수 없고, 어떠한 꿈도 이상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그만 살기 위해서 선택한 길이기에 한 가닥의 빛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한 강의 여울지는 물결 속에 자식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큰 애가 나타나서 “엄마 죽으면 안 돼. 우리는 어떡하라고. 엄마 죽으면 안 돼.”
또 둘째가 나타나서. “엄마 죽으면 안 돼. 나 다시 음독자살하지 않겠어요. 엄마 죽지 마. 엄마 내가 잘못 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어요.”
이번에는 딸이 나타난다. “엄마 죽지 마, 나 엄마에게 있지 않고 아버지 밑에서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어요.”
막내가 나타난다. “엄마 죽지 마. 나는 어떻게 하고. 나는 엄마 없는 세상은 살 수가 없어요.”
울렁이는 물결 속에서 아이들의 얼굴이 나타나서 엄마를 죽지 못하게 한다.
그 때마다 삶에 대한 미련은 포기할 수 있어도 자식들은 잊을 수가 없어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사후의 문제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울 뿐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살 길을 너무도 쉽게 선택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살률 1위에 올라있다. 인간에게는 정해진 수명이 있다. 그 수명을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또 죽음을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불가피한 것이 죽음이므로 이로 인해 죽음을 어떤 사람은 생의 도피처로 생각하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닌 주인이 따로 있기에 그것을 잘못하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 살아 있을 때에는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사후에는 선택의 자유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 복음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요, 죄인을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요,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는 것이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불원간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5. 고명딸이 선택한 운명
엄마가 없는 세상, 자고 나면 아버지는 또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서 새엄마라 부르라고 하면서 어린 가슴에 칼질을 한다. 생모는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는데...
하지만 딸아이는 죽어도 다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를 수 없었다. 나를 낳아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딸을 달래도 보고 안아도 주고 위로도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다. 드디어 협박에 매질까지 하고,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네가 이렇게 아비 속을 태우면 안 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자라야지.”
하지만 그렇게 착하고 예쁘게 자라야 할 아이를 누가 그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게다가 딸아이는 어느새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생모에게서 자랐어도 반항이 있을 나이인데...
견디다 못해 생모를 수소문해서 찾아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엄마 품에 안겨서 마음껏 울고 울다가 눈물을 지우고 보니 앉을 자리도 누울 자리도 없는 단칸방인데 거기서 오빠들과 동생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기는 배부르게 먹을 것도 없고 또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그럴지라도 엄마 품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함께 살아갈 수가 없었기에 엄마는 그 딸을 되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엄마에게 있으면 안 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고, 공부도 할 수 없단다.”
“싫어, 나는 엄마와 같이 살고 싶어, 엄마 없는 세상은 살기 싫어 엉엉...”
하지만 그렇게 울면서 매달려도 어쩔 수가 없었다. 딸은 “절대 안가.” 고집을 부리는데 엄마는 “함께 살 수 없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쫓아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나...
결국 중학교에 다니던 딸은 이런 세상 살아서 무엇 할까 하고 인천여객선 부두까지 가서 어디로 가는 배인지도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한 가지 목적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바다에 몸을 던지고자 한 것이다. 얼마나 큰 사랑 받고 태어난 딸아이인데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으며 또 누구를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딸은 죽지 않았다.
갈 곳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외딴 섬 마지막 부두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 때 한 사람이 다가 와서 “학생, 어디서 왔어, 누구를 찾아왔어?” 물었다.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는 고아인데 살기가 너무 어려워 그만 살려고 이곳까지 왔다”고 하자 그 사람이 충격을 받았던지 그러지 말고 내가 너를 구제할 테니 나와 함께 살면 어떻겠느냐고 하는데 갑자기 죽는 것 보다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생명의 은인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부모가 알았다면 그 일을 어떻게 허락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에 그 딸이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에게 찾아와 얼굴을 보였다.
6. 차라리 일본으로 떠나 버릴까?
너무도 생활환경이 가혹했기에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꿈도 이상도 사라져 버린 세상, 모두가 너무도 힘이 든다. 실오라기라도 붙잡고 의지하고 싶은 심정,
그 때 마침 재일 교포가 나타나 “나와 함께 일본으로 가서 살면 어떻겠느냐는”는 권유가 있었다. 모두를 버리고 함께 갈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떠한 꿈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오늘의 짐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마침 그 때 보문동에 있는 S교회를 섬기는 K전도사가 찾아와서 내 믿음의 아들이 총신에서 공부를 하는데 그의 친구가 개척하는 교회를 소개하여 광명의 새 길을 찾게 해 주었다.
7. 아버지의 편지
“등록금을 보냈다.” 큰 아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편지다. 지금은 카톡으로 편지대신 문자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또 스마트 폰으로 화상전화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유일한 통신 수단이 우편으로 주고받는 편지었다.
아버지와 아들, 어떻게 생각하면 자상하기는 어머니라 하지만 그래도 자식이 그처럼 열악한 환경에서도 탈선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왜 자랑스럽지 않았겠는가?
아들은 서울 안암동에 있는 K대학에 합격했다. 모두가 나서서 기뻐하고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하지만 등록금은 아버지에게 알렸고 아버지는 짧은 편지와 함께 등록금을 보내주었다.
아버지와 아들, 또 그렇게도 기뻐할 일인데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었을까. 그렇게 쓴 편지는 졸업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8. 부자간에 나눈 회포
그러던 아버지와 어느 날 부자간에 만남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때 유행한 “The Sound of Music” 영화를 보고 나서 아들과 나눈 이야기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남자가 군인이었기에 더 감명이 깊었던 것 같다. 그 영화의 내용은,
수녀원에서 수녀로 있던 Maria von Trapp이 공군대령 Captain Georg von Trapp의 집에 소개를 받아 가정교사로 들어갔을 때 그 가정에는 너무도 문제가 많았다. 어머니가 없는 가정에 일곱 자녀들은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질서가 없어 너무도 어지러웠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가정 분위기를 되살려 아이들과 그 가족 모두에게는 구세주역할을 하게 되었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듯 아이들에게서 노래재능을 살려 푸른 풀밭에서 부르는 요들송이 이 영화의 절정에 이르고 있다. Maria von Trapp은 그렇게 얼어붙은 가정에 들어와서 그 가정에 웃음의 꽃이 피고 또 노래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결국 Captain Georg von Trapp은 점차 사랑이 깊어져서 결혼을 하게 되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독일군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여 Captain Georg von Trapp은 베를린 정부에서 해군대령으로 보직을 옮겼으니 베를린으로 오라는 호출을 받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오스트리아에서는 음악 경연대회가 있어서 그 행사가 끝난 다음에 가는 것으로 허락을 받고 음악경연대회에 참석하여 대상을 받게 되었으나 대상을 받지 않고 시상식 시간에 탈출하여 수도원으로 들어가 몸을 감추고 있다가 집과 재산을 다 버려둔 채 야반도주를 하여 알프스 산을 넘어 스위스로 도피하게 된다.
아들과 마주 앉아 주고받은 이야기다.
“Sound of Music”을 봤는데 거기 나오는 주인공과 나의 차이가 있다면 그는 공군이었으나 나는 육군 대령이었고 그는 아들 딸 일곱을 두었는데 나는 넷을 두었다는 것이란다. 또 다른 하나는 그는 Maria를 만나 그렇게 문제 많았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리켜 세계적인 음악의 가정이 되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이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을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개발하고 또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자기 인생의 문제는 본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과 두 달란트 받았던 종은 주인이 돌아왔을 때 동일하게 칭찬을 받았는데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그러지 못했던 이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4-29).
9. 집으로 다시 들어가시오
교회를 개척하다보니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이 생명의 귀중성이다. 좋은 사람들은 천국에 갈 때까지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자식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는 부모가 양보해야 하듯 내게도 결단이 필요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남편 곁에 함께 있던 여자가 집을 나갔다는 것이요, 또 그동안 다른 여자를 통해 태어난 자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죽어도 들어갈 수 없으니 제발 그것만은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다른 것은 무엇이든지 다 순종하겠습니다.”
“그래도 들어가야 합니다. 죽더라도 들어가서 죽어야 합니다.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아직 결혼을 하기 전이었으니까.
그 어느 땐가는 서로들 만날 약속만 있어도 가슴이 뛰었고 흥분이 되었는데 누가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을까?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과 같이 무거운 발길을 돌려놓는다.
“주님, 잃어버린 첫 사랑을 다시 회복하여 남은 삶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아멘!
그런데 깨어진 그릇이라 어쩔 수 없었던가?
신혼부부도 아닌데 내가 함께 가주었고 다시는 이러한 불행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왔다.
얼마나 어렵게 또 얼마나 오랜 만에 다시 들어갔는데...
두 분이 만나 무슨 말을 했을까?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어요.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오.
다시는 우리 행복을 깨뜨리지 않겠소.”
혼자서 상상을 해본다.
물론 여자는 묵묵부답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할지라도 용기 내어 집으로 들어갔으니 눈물로 회포를 나눌 줄 알았는데 이걸 어쩌나...
다시 만난 첫날밤이라 여자는 시장으로 가서 침구를 새것으로 바꾸고 아름다운 잠자리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자는 그날따라 밖에 나가서 술에 고주망태가 되어 새 침구에 구토를 하여 잠자리를 더럽히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는 잘못된 아내일지라도 다시 되려오라 해셨으니 이들에게도 사랑을 다시 회복시킬 수는 없었을까?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