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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말라

주님만 주님만 2014. 9. 27. 11:26

두려워하지 말라



행18:1-10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그처럼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씨를 뿌리기만 하여서는 곡식이 자랄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수고와 땀 흘리는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렀던 3년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기간이었습니다. 대부분 몇 달 심지어 몇 날 또는 그냥 스쳐서 지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해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도자의 발길을 주님께서 항상 인도하셨고 복음을 전할 때는 말로만 아니라 성령과 능력과 확신으로 증언하게 해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1. 고린도에서 만난 아굴라 부부

바울은 아덴에서 높은 식견의 사람들을 상대로 변론도 펼치면서 복음을 전하였으나 결실은 빈약하였습니다.

값진 소득이라면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 하는 경건한 부부를 만나게 된 일입니다. 그들의 충성심은 너무도 귀하였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 된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그처럼 충성하는 사람들이 뒷받침을 하므로 은혜의 역사는 더욱 크게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자는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고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생각하나, 오히려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을 축출한 일로 고린도에 온 것과, 바울이 로마 교회에 대하여 그처럼 많은 지식을 얻게 된 것이 그들을 통해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바울과 아굴라는 업이 같으므로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혹시 바울같이 위대한 전도자가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개척자의 가는 길입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전9:9).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3-14)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주업으로 삼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도 교회를 개척할 때는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알고 보니 결혼 전에 우리 교회를 다니다가 결혼을 한 후 일 년 동안은 사정이 있어서 교회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개척 교회로 다닌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목사님 가족들과 자기뿐이라 하였습니다. 남편이 실직한 관계로 자기가 직장을 다니다가, 아기를 낳게 되어 시부모님 신세를 지고 있는데, 딱한 형편을 알게 된 목사님이,

"우리 식구가 아침 한 끼는 금식을 하여 금식미가 있으니 쌀은 우리 집에서 가져가도 되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척자의 길입니다. 살펴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어찌 한둘이라 하겠습니까?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3절).

바울과 아굴라는 단순히 먹는 것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4절).

이것이 귀중합니다. 성경에는 세상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면류관을 주리라는 말씀은 없어도 주의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는 면류관을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복 받은 사람이 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토요일, 제2 남전도회 회장과 집사님들이 쌀가마를 잔뜩 어깨에 메고 당회실로 들어오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 쌀이 주님의 이름으로 어려운 분들을 돕기 위해 준비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열매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불림 받은 여러분! 우리들도 바울과 아굴라 부부같이 목숨 걸고 주님 섬기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은혜

주님의 손길에 붙잡힌 은혜, 성령의 강권적인 은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라는 말씀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고 하였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5절).

바울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불길이 용광로처럼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와 같이 전하지 않으면 심령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는 사명감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할 때마다 만족스런 결실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주의 이름으로 자기 민족을 사랑하여 복음을 증언하는데도 유대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고 또 박해였습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6절).

진정 전도자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의 일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6절).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며 이방인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환상 중에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0절).

이 말씀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처럼 죄 많은 도성, 음란한 여자의 별명을 '고린도 여자'라 할 만큼 그 도시는 음란하고 방탕하기로 소문난 도성이었습니다. 거기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대적하여 훼방하므로 바울이 옷을 떨어 심판받을 그 피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는데, 그 도성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셨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인간이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이 나를 붙잡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것은 이렇게 진리의 양식을 기다리는 주의 양들이 있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 믿음과 불타는 사명이 우리들 속에서 불타오르기를 바랍니다.



3.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라

루마니아의 공산 체제하에서 박해받던 범브랜드 (Richard Wurmbrand) 목사는 옥중에 있을 때 성경에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세워 보았는데 365회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일 년 365일의 날짜와 같은 것입니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7절).

전도자를 박대한다고 해서 세상을 한탄하지 마십시오. 선한 목자 주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내 갈 길이 막히면 주님 예비한 새 길이 열리고, 내 능력이 한계에 이를 때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하십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8절).

이렇게 갈급한 영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방심할 수가 없지요.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9절).

당당하게 복음을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모진 박해가 닥쳐와도 꺾일 줄 모르는 전도자의 이러한 의지가 어디에서 나온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환상과 계시로 주의 손이 함께 하심을 체험한 후에는 또 다시 새 힘이 솟아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후일에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서,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요 많이 수고함이 하나님의 은혜라"(고전15:10)고 하였습니다. 이 은혜가 그립지 않습니까? 주의 일에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일제 통치하에 있을 때에 "예수 천당"만 외친 최권능 목사님께서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그 소리를 그치지 않으니 결국 풀어주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4. 아무도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는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에 보내고 불안과 근심으로 심장병을 앓아 죽은 미국 시민들이 백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총,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불안과 공포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10절).

주님의 보장 아래 있는 것보다 더 안정된 곳이 있을까요? 이 은혜를 힘입은 시편 기자는,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시11:1) 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무엇으로 무기를 삼았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수1:5-6).


5.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구호가 있습니다. 건전한 정신력은 건강한 체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체력은 귀중합니다. 그러나 건강 자체를 목적으로 할 때는 여전히 허무로 돌아갈 뿐입니다. 이는 건강해도 세월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하기 위해 건강을 지키고 일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물론 육신의 일도 근면하고 성실하여 남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만 더 귀중한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여러분!

주의 은혜로 병 낫기를 원하십니까? 충성을 따라 기도하십시오. 주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욱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자의 발길이 왜 그처럼 복된지 아십니까? 맡은 임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영광이 온 천하에 충만하기 위해 더욱 분발하여야 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9-10절).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