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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총회

주님만 주님만 2014. 9. 27. 11:20



예루살렘 총회



행15:1-21



매년 1차씩 9월이 되면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총회를 개최하고 봄, 가을에는 노회가 열립니다. 그 때마다 빠짐없이 인용되는 구호는 '성 총회', '성 노회'입니다. 또한 개회예배와 성례식에 이르기까지는 엄숙한 분위기가 지켜지나 서기가 출석을 확인하면서부터는 회원의 자격문제로 시비가 벌어지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덕스럽지 못한 일로 모처럼 방청석에 참석했던 성도들은 평소에 존중받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모임이기에 오순절 성회로 알았다가 상처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1. 할례와 구원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1절).

이 말을 한 사람은 복음과 무관한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할례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욕되게 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것이 유대인들의 율법에서 나온 교만입니다. 바울도 누구 못지않게 유대인인 것을 자부하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 받은 후에는 일생 동안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또 증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할례와 구원의 문제입니다. 할례는 율법 이전 아브라함 때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사 그와 그의 후손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모든 남자는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게 하므로 구별의 표시를 삼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 모세도 호렙산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능력의 지팡이를 휴대하고 애굽으로 내려갈 때 갑자기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모세를 죽이려하므로 십보라가 차돌로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면서 "당신은 내게 피 남편이라"(출4:25) 하니 주의 사자가 놓아주었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표시보다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3)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망한 이유는 할례를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실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구원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구원도 할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대속의 제물 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므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지 아니하고 복음을 증언하므로 이적과 권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2. 양보할 수 없는 진리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2절).

이 문제는 안디옥 교회에서 결론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의와 죄악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진리처럼 가장하고 등장하는 비진리입니다. 유대인들이 정경으로 삼고 있는 성경이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입니다. 그런데 왜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한 편에는 진리인데 다른 한 편에서는 비진리가 될까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옳습니다. 동일한 말씀일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생명의 말씀이 되고, 그리스도가 없으면 율법조항일 뿐입니다. 이는 신앙의 핵심 문제이므로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을 보십시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갈3:1-2).

그것은 에덴에서 선악과로 아담과 하와를 실족시킨 뱀의 유혹과 동일한 수법입니다. 본색을 가리고 접근하는 이리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복음은 율법같이 행위가 온전하여야 의에 이를 수 있는 계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인에게 생명과 소망을 안겨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값없이 선물로 받은 후에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야 구원에 이를 줄 생각한다는 것은 주의 은혜를 배역하고 저주를 자초하는 행위입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갈3:4-5).

행위가 온전하여 성령 받았다는 고백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은혜로 받은 구원을 율법으로 마치려고 한다면, 배도자의 받을 형벌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히6:4-6).



3. 베드로의 해명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4절).

예루살렘에서도 바리새 파 중에 속했던 유대인은 여전히 율법을 고집하였습니다.

"바리새 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5절).

그런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였는지 궁금합니다.

그 일로 예루살렘 총회가 많은 변론을 벌인 후 베드로가 일어나서 하는 말입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7-9절).

지금 베드로는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이방에 대한 차등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민의 자존심이 아니라 잘못된 교만입니다. 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넘겼습니까? 이방 죄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죄를 바로 알았다면 이방인을 멸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엎드려 통회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10-11절).

옳습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3:30).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는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움이 된다는 것입니다(롬 3:31). 베드로의 해명에 이어 바울과 바나바가 변명을 마치자 이제는 야고보가 일어나 마지막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4. 야고보의 결론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13-21).

역시 수제자 베드로의 해명에 동의하면서 사도행전15:16-18절까지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말씀하고 야고보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즉 율법과 계명 중에서 네 가지만 언급하여 지키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잘못된 유대인의 인식을 돌려놓기에는 충분하지 못하여도 예루살렘 총회에서 다루던 중요한 안건은 일단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 우상의 더러운 것

엄격이 말하면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롬14:1-2).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4-5). 하였습니다.

다만 건덕에 문제가 될 때에는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 섬기던 우상행위를 단절하고 직접 가담하지는 아니할지라도 그들의 잔치에 스스럼없이 참여한다면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성도들 중에도 불신 가족이 있어서 조상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속히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2) 음행

이를 여러가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마는 일단 성도는 가정생활이 건실해야 합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2:15) 하셨습니다.

3) 목메어 죽인 것

우리나라에서만 이 말씀을 문제시하는 사람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구원에 관하여서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문제로 시험에 드는 자가 있다면 삼가 함이 좋을 줄 압니다.

4) 피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구약의 사상입니다. 피는 생명이니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의미에서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해 전에 영락교회에서 세계 기독교 지도자 협의회가 있었는데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는 몰라도 낮 집회가 끝나자 교회 앞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가 어딘데' '과연 저 사람들도 성직자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도 틀림없는 성직자들이었고 한 나라의 대표자로 참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면이 있다면 그 나라에서는 성직자들이 담배를 피워도 무방하다는 것뿐입니다. 그와 같이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한 이 모든 것이 구원에 이르는 진리와는 무관하지만 믿는 사람으로서 덕을 세워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