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
행12:1-17
스데반의 순교로 사도들 외에는 모두 예루살렘을 떠나 각 곳으로 흩어져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하므로 복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헤롯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먼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였는데 그 일을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 옥에 가두어 군사를 풀어 굳게 지키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구원해 내었습니다. 그런 일은 성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베드로에게는 두 번째(행5:19)가 됩니다. 이는 베드로를 통해서 이룩하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1. 헤롯의 박해
신약에는 동명이인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다섯 명의 헤롯 왕이 나옵니다.
1) 헤롯왕(B.C.37-A.D.4)
그는 아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를 학살했던 장본인입니다(마 2:16-18). 그는 열 명의 아내를 거느렸고 그 중 다섯이 자녀를 낳았는데 자녀들 간에 반목과 불륜의 관계가 형용할 수 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2) 헤롯 아켈라오(A.D.4-6)
헤롯 대왕의 넷째 부인인 사마리아 여인의 소생으로 아비의 대를 이었으나(마 2:22) 곧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3) 헤롯 안티파스(B.C.4-A.D.34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왕)
아켈라오의 동복동생으로 제수인 헤로디아를 빼앗고 그를 책망했던 세례 요한을 목 베인 자입니다(마14:1-14).
4) 헤롯 아그립바 1세(A.D.37-44)
헤롯 대왕의 손자로서 아리스토 블루스의 아들이며 헤로디아의 동복 오라비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물로서 그 자녀로는 아그립바 2세 버니게(행 25:13), 드루실라(행 24::24) 등이 있습니다.
5) 헤롯 아그립바 2세(A.D.49-100)
가이사랴에서 바울의 송사를 맡았던 자입니다(행26:28).
그런데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무슨 이유로 야고보를 죽이고 또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세웠듯이 헤롯 아그립바 1세 역시 정치적인 야심으로 보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Knowing).
물론 사도들은 세속의 정치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은 불의를 다스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며 사회에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 폭군들이 등장하여 그 권한을 남용한 일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신앙인들도 국민이므로 국민 된 의무와 질서를 지켜야 하지만 본연의 임무를 이탈하여 세속과 타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구출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초대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요,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세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헤롯은 야고보를 죽인 후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베드로도 죽이기 위해 옥에 가두고 군사를 풀어 넷씩 네 패로 나누어 밤낮 빈틈없이 지키게 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무교절 곧 유월절 절기로 인해서 죽이는 일을 지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적의 손길로 건져내었습니다.
베드로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면,
1)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게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5절).
물론 야고보를 위해서는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순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베드로는 살려내어 주의 사역에 임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들이 육신의 죽음을 초월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초월한 그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2) 천사를 동원했습니다.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구출해 낸 사건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6절).
궁금한 문제는 왜 주의 사자를 등장시켜 원수를 심판하지 않고 베드로를 구출하는 일에만 주력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도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이 헤롯의 문 앞에 다가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침묵 속에 전도자를 죽이고 박해했던 죄상은 백보좌 앞에서 낱낱이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7절).
그 때는 베드로도 얼마 동안 꿈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손길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들을 자연의 질서를 따라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과학은 자연의 진리요, 법칙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러한 자연 법칙이 무신론적 입장에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우리 교회 교역자들과 함께 대전 엑스포장에 있는 창조 과학관 개관 예배에 초청을 받아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거기에는 미국을 비롯한 소련과 일본, 호주 등지에서 창조 과학회 책임을 맡고 있는 학자들이 참석하여 세미나도 개최하였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창조 6일의 역사와 노아 홍수 사건을 담은 스크린을 볼 수 있었고, 또 진열장에 있는 화석들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지구의 연령에 따라 오래된 화석들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자들과 무신론자들이 변박할 수 없는 창조의 역사가 화석에서 증명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5천만 년 전 박쥐의 화석이 오늘의 박쥐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숭이 두개골로 발견된 것은 그대로 오늘의 원숭이요, 사람의 두개골은 오늘 사람의 두개골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은 진화론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한국 창조 과학회 회장으로 있는 김영길 박사의 말입니다.
"과학은 올바른 신앙 위에서 출발할 때 생명력 있는 과학이 될 수 있습니다. 무신론과 유물론적 가치관 위에 과학이 세워진다면 과학은 인류에게 더 큰 좌절과 고통을 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여호와를 알만한 것이 우주 속에 충만하여도 불신자들에게는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8-9절).
신기한 일의 연속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장애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베드로의 출옥을 의심한 성도들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 없이 믿을지라도 주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므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10절).
그제야 비로소 베드로는 정신이 들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11절).
유의할 것은 천사가 베드로를 풀어 밖으로 인도한 후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에서라면 계속 함께하셔서 우리의 방패와 인도자가 되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왜 모습을 감추어야 했을까요? 천사는 영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이르러 대문을 두드릴 때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너무 기뻐 문을 미쳐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하니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15절).
왜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못 믿었을까요? 그들은 분명히 베드로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던 자들이요, 또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지금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셨으나 야고보를 잃은 충격과 상처가 너무도 컸으므로 그러한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16절).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17절).
궁금한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처럼 기적의 손길로 함께 해 주셨는데 그 때에 원수 앞에 베드로가 자신의 모습을 보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담대함이 지혜를 동반하지 않을 때는 만용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정적인 시기를 위해서는 매사에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4. 베드로 때문에 목숨 잃은 파수꾼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18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죽이려고 지키던 사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도 빌립보 감옥에 있을 때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간수가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처럼 엄격한 법령을 그들이 알고 있었으므로 파수를 소홀히 할 수가 없었으나 하나님의 손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2:1-4).
결국 파수꾼들은 베드로를 지키지 못한 일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19절).
5. 헤롯의 교만과 하나님의 심판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21절)
지금도 이북에는 김일성 세습 체제가 내리는 교시는 절대적이어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구상 어느 지역을 한번 가리키면 그 곳에는 지진이 일어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22-23절).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 하셨도다”(시7:12) 하였습니다.
"내가 곧 국가다"라고 하던 폭군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로마의 황제 세베루스 (A.D.306-307)는 "내가 곧 세상"이라 하며 권력을 휘두르다가 임종시에 "나는 모든 것이지만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라고 탄식하면서 자기 유골이 담길 항아리를 보고
"조그만 항아리여, 너는 이 세상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미약한 존재였던 한 사람의 뼈를 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리석은 인생같이 자신을 과신하다가 수치를 당하지 말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6. 점점 흥왕하는 하나님의 말씀
이와 같이 복음은 환난 중에서 뿌리를 내리고 박해 속에서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시험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순교를 각오한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변해도 진리는 영원합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자, 또 대적하는 나라는 무너져도 복음은 점점 흥왕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과 함께 우리들도 영원한 승리의 역군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