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경건
행10:1-16
오순절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3천 명, 5천 명이 가슴 치며 회개하고 또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면서 복음을 증언하던 베드로가, 욥바에 사는 피장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가이사랴에 있는 이달리아대의 백부장 고넬료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특이한 현상은 베드로와 고넬료 모두 환상과 계시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자의 발길은 자의적으로 행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의 손길이 배후에서 섭리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가정
사람은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하나 뜻대로 되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이유를 살펴보면 세상에는 죄와 유혹이 많고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백부장 고넬료를 보십시오. 그 사람이라고 경건생활에 장애가 없었겠습니까? 점령군의 신분으로 유대인의 신을 섬기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경건생활에 힘썼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2절).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여기서 고넬료가 받은 복을 생각해보면,
1) 전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고넬료가 어떻게, 누구를 통해, 언제부터 경건생활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경건이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어떠한 야심에서가 아니라 군인의 신분으로 선한 일을 하였습니다. 복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부리지만 고넬료 가정 같은 경건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어떤 청년은 "목사님 우리 어머니 신앙생활 잘하게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당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사님 우리 남편과 자식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에 제가 아는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인생 여정에 곡절은 있게 마련입니다마는 그 가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겸손하게 주님을 섬길 때는 형통과 번영의 복을 누렸으나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여지없이 징계하여 낮추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때는 '세상에서 그렇게 복을 받은 가정이 있을까?' 하고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살았는데 미국에서 공부하던 자식이 갑자기 백혈병으로 죽고 또 그처럼 잘 돌아가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여 하루아침에 어렵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과연 행복이 무엇이며 누구에게 있을까요? 고넬료의 가정을 보십시오.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는 두말할 여지없이 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경건한 가정으로 구원의 은총 힘입기를 바랍니다.
2)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이는 경건 된 생활에 반드시 구비되어야 할 요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하였습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백부장이 그 종을 구원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의 장로들이 주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7:4-5).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이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눅7:9) 하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선행의 열매, 이는 하늘나라에 쌓여질 의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선한 사업에 부자 되어 의의 면류관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이는 고넬료의 경건을 더욱 빛나게 하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유물이나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만 올리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살전5:17). 또 주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 것을 악한 재판관과 원한 맺힌 과부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눅18:1). 근신하고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하였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하십니까? 더욱 분발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쉬는 것이 죄가 됨을 알았다면 우리는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하십니다.
우리 교회에서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P집사님이 얼마 전에 담석증으로 고생하여 함께 기도한 일을 기억하실 줄 압니다. 수술을 받아야 할 증상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회복되었으니 기도할 일이 끝난 줄 알고 마음을 풀어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2절).
이 믿음이 귀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믿음이 오늘 우리의 믿음 되기를 바랍니다.
2. 고넬료에게 나타난 환상
사실 고넬료는 지금까지의 경건 생활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족하다 하지 않으시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오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빌립을 통해 복음을 받은 사마리아에,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낸 것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즉 말씀의 귀중성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이 가까움을 알았다면 영적인 상태도 마찬가지로 성장이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기준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이요, 우리의 목표는 성령으로 열매 맺는 생활입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은혜 받을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받을 사람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3-4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또 기억할 일은 우리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두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은 많이 할수록 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5-6절).
너무도 생생한 계시입니다. 사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에게와 같이 천사를 통해 주의 복음을 전할 수도 있을 텐데 왜 베드로를 청하라 하셨는지 궁금하게 여길 수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은 이렇게 복음 전할 임무를 천사가 아닌 전도자 곧 먼저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임무는 천사가 흠모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천사를 통해 보혜사 성령이 임하지 아니하고 전도자가 증언하는 복음과 함께 성령이 역사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베드로에게 나타난 환상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각은 제 육시더라"(9절).
가이사랴에서 그 곳까지는 50km정도의 거리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시간인데 마침 시장하여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10-11절).
비몽사몽간에 베드로는 이렇게 신비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12-13절).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없었다면 이상 중에 펼쳐지는 광경으로 지나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혹자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보자기가 네 귀에 매여서 내려왔다 하여 네 숫자에 의미를 살리기도 합니다.
1) 동서남북으로부터 오는 전 세계 인류를 가리킨다.
2) 네 복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보자기 안에 있는 부정한 내용물입니다. 이러한 일이 동일하게 세 번이나 반복되어졌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14절).
베드로의 거절을 주님께서는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율법에 명시된 대로 오늘까지 그가 지켜온 생활이 옳은 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서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았다고 했습니다(롬3:21). 다시 말씀드리면 율법으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안에서는 용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방과 선민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없으나 복음으로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들려온 음성입니다.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15절).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 그것이 귀중합니다. 물론 보자기 안에 있는 부정한 것들은 이방인을 가리키는 상징물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로서 역시 복음도 유대인에게만 전하여야 할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던 율법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여러분! 이 놀라운 주의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4.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베드로가 환상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의심하고 있을 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와서 노크하고 있었습니다.
1) 순응해야 할 하나님의 뜻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19-20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복종할 줄 아는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이제야 하늘로부터 내려온 보자기의 내용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21-22절) 하였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즉시 그들을 영접하여 유숙하고 다음날 그들과 동행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임을 깨달았을 때에는 절대 복종하여 그의 뜻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 고넬료의 태도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24-25절).
손님을 공손하게 맞아들여 대접할 줄 아는 것은 미덕입니다. 그러나 공손이 지나치면 도리어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이는 지나친 것이나 아첨이 아니라 그의 진실이었습니다. 법궤 앞에서 다윗의 춤이 사람에게가 아닌 하나님께였다면 고넬료 역시 베드로에게 엎드린 것은 상관의 머리에 있는 계급장 때문이 아닌 신적인 권위 앞에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위엄과 권위를 발견할 때 은혜의 문이 열려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베드로의 말입니다.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26절).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28-29절).
고넬료가 천사의 지시를 따라 베드로를 자기 집에 오게 한 것같이 베드로 마찬가지였습니다. 양편 모두 하나님께 복종하는 믿음으로 함께 한 자리였기에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 또 영광이 충만하였습니다.
3) 말씀을 들을 때에 일어난 역사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께 있나이다"(행10:33).
그 때에 베드로가 전한 복음은 지극히 단순한 말씀입니다.
①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
② 그리스도의 등장과 복음사역
③ 유대인들로 인한 십자가의 고난과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심을 증거하고 결론으로 하신 말씀은,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43절)고 하였습니다.
34-43절까지 불과 아홉 절의 복음 그것이 전부입니다. 복음을 지극히 간략하게 전했을 뿐인데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의 법정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행26:27-29).
고넬료의 가정에는 베드로의 적은 말씀에도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44-46절).
여러분! 지금도 성령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같이 경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여 주의 은혜 크게 힘입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