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같은 얼굴
행6:7-15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에 빠지는 일로 화목이 깨어짐을 보고 사도들은 즉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세웠는데, 그 중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사람이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과 빌립 집사였습니다.
그들은 봉사의 직임을 맡고도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앞장설 만큼 충직하였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한 일로 공회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같이 광채를 띠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스데반이 받을 영광이요 또 복음을 증언하는 자들이 받을 영광입니다.
1. 점점 왕성해 가는 복음의 역사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절).
말할 수 없는 박해 속에서도 복음은 왕성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의 역사 곧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에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4:30-32).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인해 이방인들의 공격이 있었으나 이제는 사도와 전도자들이 복음을 이방에 증언하는 일로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모세의 율법만 있고 복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할 육체가 없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뻐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불림을 받아 이방도 손님도 아닌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엡2:19).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무슨 말씀일까요? 이는 복음을 받은 성도의 무리들이 복음 사역에 충성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일터에서나 병원에서나 어디서든지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사명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렇게 성령의 능력 앞에 제사장들이 엎드러졌습니다. 아직 그들이 공회 앞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할지라도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밤에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사도들이 복음으로 박해를 받을 때에 변호하였던 가말리엘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역사는 성령 받은 성도들로 말미암아 왕성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이처럼 박해를 무릅쓰고 시련을 극복하고 줄기차게 뻗어 나간 이 복음은 세계를 돌고 돌아 우리에게까지 임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오실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후까지 충성된 종이 되어 하늘나라 확장 사업에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스데반을 통해 일어난 역사
주님의 은혜가 불필요하여 거절할 분은 없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람을 주님께서 들어 쓰실까요? 복음에 충직한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8절).
모두가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으로 일어난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들어 쓰시기 합당한 도구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십시오. 나는 무익할지라도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 교회 이 전도사님과 성도들이 병원에 입원한 성도가 있어서 문병을 갔는데 마침 다른 병실에 있는 어린 환자가 있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울면서 병든 자식을 위해 매달리는 것을 보고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기도하면 병든 자식이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제발 목사님이 한 번만 와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보십시오. 병원의 의사는 약이 있어야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약이 없어도 고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을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능하게, 강하게, 또 온전하게 해주셔서 주님의 영광 드러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3. 무익한 변론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9절).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15절).
복음을 위한 변증은 불가피할지라도 변론에 휘말려드는 것은 무익할 뿐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라면 변론도 필요하지만 변론을 통해서는 얻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고정된 주관에 따라 자기 입장을 고수하면 무슨 말이라도 설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은 변론으로 받는 것이 아닌 믿음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끝없는 변론은 삼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3-4) 하였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10절).
그런데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스데반이 지금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그들이 당하지 못할 진리를 선포하는데도 그들의 마음은 더 완악해져 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11-12절).
그럴지라도 스데반은 의의 불검으로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7:51-53).
스데반은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에 있고, 모세의 율법이나 선지자의 예언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는 자들의 귀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13-14절).
여기서 우리는 진리와 비진리를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 증인들의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진리는 세상 법정에서 밝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주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지각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4. 광채 띤 얼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15절).
원수 앞에 서 있는 스데반의 모습입니다. 지금 곧 돌을 들어 스데반을 죽일 자들입니다. 마치 피에 굶주린 사자 같은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얼굴이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수 무리들은 듣는 귀가 닫쳐진 것같이, 눈이 어두워 스데반의 얼굴에서 발하는 광채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여전히 살기가 등등한 그들의 눈에는 스데반이 하나님께 굴할 줄 모르는 오만불손한 자로서 죽여도 마땅할 진리의 반역자로 비쳤을 뿐입니다.
여러분!
스데반의 영광이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이는 썩어지고 없어질 세상 영광과는 비길 수 없는 영광입니다. 그 영광을 누릴 자가 누구일까요?
1) 주를 앙망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시34:5). 이것이 회개하고 사유함을 받은 자가 누리는 영광이요, 기도하는 사람이 누리는 영광이요, 주의 긍휼을 힘입은 자가 누릴 영광입니다. 주의 은혜로 누리는 영광, 그 기쁨은 영원토록 시들지 않는 영광입니다. 이 영광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옛날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남의 양을 도둑질하면 이마에 Sheep Thief(양도둑)이라는 머리자를 따서 S.T 라는 화인을 찍기로 하였는데, 결국 두 사람이 걸려들어 화인을 맞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그 마을을 떠나 이사를 하고, 한 사람은 남아서 그 때부터 궂은 일, 좋은 일 가리지 않고 앞장을 서서 다 하므로 그 후로는 양을 잃는 일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세대가 바뀌어 S.T 라는 약자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화인 맞은 어른을 존중하여 Saint(성자)로 호칭을 하였다고 합니다.
2) 하늘나라 면류관을 기약 받은 사람입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목에 걸 때 선수들은 감격에 벅차서 눈물을 보입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기쁨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의의 면류관(딤후 4:8), 시들지 않는 면류관(벧전 5:4), 모두가 동일한 영광입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7:56).
드디어 절정에 이른 스데반은 영안이 밝아져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원수들은 그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원수 앞에서 천사와 같이 광채 띤 스데반의 모습, 얼마나 복되고 아름답습니까? 스데반의 영광을 보십시오. 이 영광은 그의 무덤에 기념비를 세워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사람에게 칭찬 받는 사람,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제일 먼저 순교한 사람, 그의 생애는 모두가 보배로 충만하였고 이 진리 위해 목숨까지 버렸으니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우리 모두 스데반처럼 살고 또 주를 위해 목숨 바쳐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