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강해설교

고린도전서(2)

주님만 주님만 2022. 3. 19. 16:58

유월절과 성만찬

고전11:23-34, 26:17-29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26:17-19).

무교절 곧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 수장절과 함께 매년 지키라 명하신 삼대 절기입니다. 다른 절기와 차이가 있다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 받은 그날을 기념하여 누룩 넣지 않은 떡과 쓴 나물을 먹고 또 양을 잡아 칠일 동안 축제의 절기로 지켰던 것입니다. 유월절의 참된 의미는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여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실체와 그림자의 관계입니다. 율법에 따르는 모든 의식은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적인 진리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10:1).

그러므로 어떠한 의식이든지 그리스도가 안 계신 의식으로 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 유월절 양으로 오신 주님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는 그날부터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물론 죽음에 관한한 다른 피조물도 동일합니다. 또 그날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이 죽음은 의사에게도, 돈이 많은 부자나 체력을 단련한 운동선수에게도,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옵니다. 이렇게 불가피한 것이 죽음인데 사람이 사는 동안은 생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형수의 이야기입니다. 형장으로 끌려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일어나며 하는 말이 자칫했으면 죽을 뻔했다!”

생명은 귀중합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의인의 이야기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쉰들러는 나치가 점령한 2차 대전 당시 독일인으로서 일천이백 명의 유대인을 살려낸 사람입니다. 그는 부인 에밀리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일천 명을 독일군 무기 제작공장에서 일을 시킨다는 명분으로 빼돌려 좋은 숙소와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하기까지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었고 또 목숨이 위태로운 고비도 넘겼습니다. 그 후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밀리자 나치는 그 일천 명을 아우슈비츠로 돌려보내 가스실에서 학살하려 했지만 쉰들러 부부는 무기 공장에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구실로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는 유대인 이백 명을 또 빼내어 보호하다가 1945년 소련군의 진주와 함께 전원을 도망시켜 살려내었다고 합니다. 어떤 자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데 이렇게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했으니 의로운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라 수명을 연장시켰을 뿐입니다.

기억할 것은 내게 닥칠 죽음이 언제일지, 또 어떻게 그날을 맞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7:4).

다만 동일한 죽음일지라도 오늘을 사는 삶의 모습에 따라서 영원한 어둠에 떨어질 자가 있고, 빛으로 남을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의 죽음이 인류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1) 그리스도 대속의 죽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2)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죽음

사람이 사는 동안 어느 땐들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겠습니까마는 그중에도 더욱 중요한 순간은 임종일 것입니다. 숨질 때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 죽음을 앞두고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골고다 언덕에 있는 세 십자가 중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양편에는 강도의 십자가입니다. 한편 강도는 죽는 순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3) 영원한 죽음

한편 강도는 주님께서 피 흘리실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죽어 가는 순간에도 주님을 희롱하므로 구원 받을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와 무관한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어떠한 경우도 그리스도 없는 삶은 무의미하고, 그리스도 없는 죽음은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배신자와 나눈 성찬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26:20-25)

이것이 유다가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으나 유다는 이미 양심에 화인을 맞았으므로 아무런 가책도, 죄의식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하는 것을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이미 마귀의 노예로 전락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구원을 운운하지 않은 것 같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배신자에게는 성찬이 어떠한 의미나 효험도 없으며 변화도 없는 것입니다.

 

3. 성찬의 참된 의미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6-28).

먹으라’ ‘마시라이 성찬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린 육신의 양식과는 의미를 달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6:26-27).

성찬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나누는 신령한 양식입니다. 성찬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진리요 입으로 먹을 수 있는 은혜의 양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대속의 은총을 성찬을 통해 받게 되므로 이 성찬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6:53-55).

이 성찬을 통해 나는 주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게 됨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는 성찬을 통해 영적인 삶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배불리기 위해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자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욕되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고전11:22).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33-34).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일로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11:28-29).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로 사는 몸이 되었으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지 생각하고 주님의 뜻을 이룩하고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다양한 은사

고전 12:1-11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지상에 있는 교회는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고린도전서 팔 장에서부터 다루고 있는 몇 가지 문제입니다.

1) 우상의 제물

2) 여자가 머리에 쓰는 수건

3) 성찬에 관한 문제.

이제 본문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논하고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성령의 은사는 종교적인 의식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것은 인간의 욕심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기도할 때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마술사 시몬은 성령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줄 생각하였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에게 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자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8:18-20).

 

1. 신령한 자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1).

신령한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육신에 속한 자와 대조하면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5-6).

영에 속한 자는 영의 일을 기뻐합니다. 두 팔이 없고 한 다리마저 짧게 태어난 선천성 장애아 레나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읽어 주신 성경 이야기를 통해서 저는 예수님이야말로 제 인생의 최고의 선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물로 인해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이니까요.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 비밀이 제가 부르는 성가와 캐롤을 통해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바울과 같이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는이렇게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육신에 속한 자면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둠에 속한 자는 이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8).

메시아를 배척하는 유대인을 향해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8:43-44).

인간에게 있어서 진리가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큰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이성 없는 짐승은 본능대로 사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잘못 살면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사후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에 매여 종살이 하는 것을 보십시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2).

 

2. 직분과 사명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4-7).

무슨 말씀일까요? 내게 맡긴 직분과 사명은 한 분이신 성삼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이요, 이는 또한 동일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나 사울이 제사에 월권하고 또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일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름은 사무엘이 부었을지라도 세운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유익은 우리에게 사명과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명의식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나는 무익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직분을 받았던지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3. 성령과 은사

1)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

지혜는 은사 중에서도 귀중한 은사로서 이 은사에는 부수적인 복도 따르게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일로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서양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If you want to feel rich, just count all the things you have that money can't buy.”

만약 부유함을 느끼고 싶다면 가진 것 중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모두 세워 보아라.” 지혜는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8:17-19).

2)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이 지식은 믿음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리 위에 바로 서지 못하면 창수가 나고 대풍이 나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무너질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1:7).

지혜는 다스리는 자에게 필요한 은사라면 지식은 가르치는 자에게 필요한 은사라 할 수 있습니다.

3)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성도들 중에 혹 나는 아무런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믿어지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3:25).

4)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

병 고치는 은사는 방언과 함께 외적으로 볼 수 있는 은사입니다. 며칠 전에 어느 집사님이 치아 치료를 받은 후 얼굴에 통증이 와서 일 년이 넘도록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어서 기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고칠 수 없는 병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기도하십시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8:2).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11:3).

말씀만 하옵소서...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8:8).

모두가 주님의 마음을 움직인 간구입니다.

5)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모세를 통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게 하신 하나님,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큰 기적과 권능의 역사를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생명과 구원 사역을 위해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6)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인간의 눈으로는 오늘의 현상을 볼 수 있으나 영적인 눈으로는 장차 일어날 일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인들이나 과학자들이 말하는 비전이나 꿈과는 다른 것입니다. 또 사람이 보는 것은 상상의 세계이지만 영의 눈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미래와 영원을 통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은 일점일획도 어김이 없는 진리입니다.

7)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진리의 영과 거짓된 영을 구별하는 잣대는 성경입니다. 성경을 벗어난 것이라면 어떠한 말에도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마귀도 성경을 가지고 시험하기 때문에 영을 분별하는 은혜를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8)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식별하기 쉬운 은사입니다. 그러나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에서 덕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고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9) 방언 통역하는 은사

방언하는 분은 통역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또 초대교회 방언 은사를 보면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방언이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방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역의 은사를 받으면 사람들이 알아듣게 함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고 다 함께 아멘 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에 덕을 세우며 또 생명과 구원 사역에 열매 맺도록 주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열매 맺는 일에 더욱 충성을 다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지체의 임무와 위치

고전 12:12-31

 

우리는 하나님의 오묘를 담고 있는 육체를 지니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므로 의미 없이 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체를 해부하는 의학도는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자랑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깨닫는 눈과 귀가 열려질 때 자신의 모습을 바로 알 뿐 아니라 또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139:13-14).

 

1. 지체와 몸의 관계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12).

우리가 한 몸에 다양한 지체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다양한 지체를 통해 진리의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

인간은 나면서부터 한 몸에 수많은 지체와 장부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그 중 하나라도 잃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지체가 있는가 하면 없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지체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지체를 막론하고 몸을 떠나면 지체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등지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위치를 이탈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2. 지체의 조화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14).

여러 지체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데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지체마다 고유의 임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 선수는 11명으로 한 팀을 이루는데, 효과적인 경기를 위해 선수 각자의 위치와 역할이 있습니다. 모두가 승리를 목적으로 뛰게 되지만 그렇다고 공격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비수도 있고 또 골키퍼도 있는 것같이 지체의 임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15-17).

인체의 신비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이목구비를 누가 이렇게 이상적으로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만일 얼굴 중앙에 우뚝한 코를 항문 근처에 두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향기롭지 못한 냄새로 인해 하루도 밝은 기분으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눈이나 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억할 것은 그 위치와 임무에 따라 책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11년 만에 밝혀진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을 두고 경찰에서 재조사를 펼치는 것은 그것이 경찰이 해야 할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2) 다른 지체를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다리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팔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다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팔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임무를 기운이 있다고 다리가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21).

성도가 시험에 들면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신앙생활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구역 식구가 미워지기도 합니다. 심해지면 그런 사람 보기 싫어 교회 오기도 힘들어 지지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도리어 은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워해도 멀리할 수 없는 관계가 가족이지요. 신혼부부들 보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가 없기에 아쉬움이 많습니다. 에덴의 행복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1-24).

한 몸같이 일생을 사랑하며 살아야 할 부부가 남남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마치 한 몸을 절반씩 나눠가지는 격이라 할 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행복을 불행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외롭고 고달픈 나그네 길을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며 살아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지음을 받은 그대로를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18).

인간의 구조는 최초의 설계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그런데 어디에 부족함이 있어서 인간의 손을 빌려 남자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성전환을 하는가 하면 주름진 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다 보니 배꼽이 가슴에까지 올라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미얀마 여인들은 황새 같이 목이 길어야 미인으로 간주하여 목을 억지로 늘리기 위해 구리를 용수철 같이 목에 감고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 사는 원주민들 중에는 여인이 귀에다 구멍을 뚫고 고리를 걸고 다니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는가 하면 또 어떤 부족들은 추장의 입술에 구멍을 내어 접시만한 것을 끼우고 또 코에도 구멍을 내어 맹수들의 송곳니를 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청소년들은 구멍 난 청바지에 머리를 염색하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백발이 되어 보지 않았기에 흑발이 좋은 줄 모르지요. 하나님의 작품을 손상하지 맙시다. 자신이 바로 둘도 없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자긍심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4) 공평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22-25).

제가 어릴 때는 안경을 멋으로 쓰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멋을 더 내기 위해 이를 뽑고 금니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저도 안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양말을 멋으로 신는 분은 없을 줄 압니다. 손님이 오기 전에 양말을 신는 것은 맨발이 추해 보이기 때문이지요. 의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다른 사람에 비해 여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랑하지 마십시오. 권세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육체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에게 더 귀한 믿음의 보화를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입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26-27).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이탈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요 또 지체의 위치에 따라 본연의 임무에 충성하여 주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와 화목해야 합니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9-31).

우리 모두 주님께서 예비해 두신 제일 좋은 길, 더 큰 은사를 사모하고 기도합시다. 이상적인 교회는 다양한 성도들이 화목한 가운데서 본연의 임무를 따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이 영광의 대열에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절대적인 가치

고전 13:1-3

 

바울은 십이 장에서 성령의 은사를 논한 후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하였습니다. 더욱 큰 은사와 제일 좋은 길은 동일하게 사랑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십삼 장에 대해 학자들이 말한 것을 소개합니다.

이 장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교회의 특별한 찬양의 대상이 되어왔다” (Farrar).

이는 바울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힘 있고 또 가장 심오한 것이다”(Harnack).

이 유명한 장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바울의 기록 중에 최고봉이다”(Craig).

사랑은 교회에서 능력의 첩경이다”(Findlay).

본문은 이 사랑에 대한 서론으로 어떠한 은사와 행위도 사랑을 제하면 영적인 가치 곧 진리의 가치를 잃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1).

사람의 방언에 대해서는 오순절 사건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 자기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기이하게 생각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2:5-8),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인지에 대해서도 양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나오는 천사의 말과 대조가 되므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하겠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랑을 제하면 그 의미를 잃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2. 예언하는 능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2).

역시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것도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언급된 이 은사 중에 어느 것 한 가지인들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은사는 누구든지 원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1) 예언하는 능

예언의 은사는 선지자의 영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체포하기 위해 사자들을 라마나욧으로 보냈을 때 그들이 예언을 했는가 하면 심지어 사울도 벌거벗은 채 하루 종일 예언한 일이 있었습니다(삼상19:20-24). 예언의 은사는 지체 중에서 눈과 같은 역할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22:13).

이는 우주의 기원과 영원의 세계를 한눈에 보시는 전능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 눈을 받았을 때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족장들의 역사를 보고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니엘은 금 신상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2:2),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2:9),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2:13),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2:19),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3:1, 15).

주님께서는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보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안목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영의 눈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더 귀중한 사랑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2) 산을 옮길만한 믿음

주님께서 간질 든 소년을 고친 일로 인해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19-20).

만일 오늘 어떤 사람이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독도는 울릉도로 옮길지어다라고 하여 그대로 되었다면 기상천외한 일로 온 세계가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도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 하셨습니다. 다만 겨자씨로 비유된 이 믿음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3. 구제의 은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

구제의 은사를 받은 자는 덕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합니다. 이러한 구제는 은사를 받지 않고는 열매가 맺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록펠러 재단이라면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록펠러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큰 부자였던 것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좋은 일 할 믿음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오십사 세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으로 죽어갈 때 하나님께 서원하고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물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구십삼 세까지 살면서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와 교육 사업, 또 사회사업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록펠러 재단에서 지급한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 일만 명 중에 노벨 수상자가 육십 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구제가 물질로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How we give is more important than how much we give."

우리가 어떤 식으로 주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주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사명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 전 터키에 나가 있는 장혜경 선교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곳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터키인도 함께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가질 때에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는 구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루는 어릴 때부터 계명을 지켜온 청년이 주님을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19:16-22).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부자 청년이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다면 그가 구원을 받았을 텐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주님을 등졌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구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옅은 동정에 그칠 뿐이지만 복음을 앞세운 손길에는 구원의 열매가 맺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3:6)

그때 복음의 능력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로 하여금 일어나 걷고 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 이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닐지라도 생명을 불사르는데 던지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는 폭탄을 품고 죽음으로 뛰어드는 자들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사랑 대신 증오심이 불타고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여 그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면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으며 희생도 불사한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리스도 밖에서라면 누구도 그 희생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해서 살고,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할 절대적 가치는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잃으면 어떠한 희생도 유익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서4:10).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서4:12).

그리스도 없는 사랑을 논하지 말고 사랑이 결여된 은사라면 자랑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 사랑의 사슬에 매인 바 되어 주님의 영광을 온 땅에 펼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제일은 사랑

고전13:4-6

 

사랑은 모든 은사의 모체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행위도 사랑을 결여하면 무익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지적한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2-5).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곧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부부로 비유하는 것은 남녀가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밖에서의 만남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모두가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로 인해 이제는 계약 결혼을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주거 형태도 혼자 살아가는 원룸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서는 어떤 형태의 삶도 행복의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1. 소극적인 사랑

이것은 성별이나 성격에 따른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차에 가속 페달과 정지 페달, 두 장치가 함께 필요한 것과 같이 사랑에 있어서도 동일니다.

1) 사랑은 오래 참고

중세 시대 성 빈세트의 물을 마셔라는 말이 있었는데, 유래는 부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어 수도원을 찾아온 사람에게 해결책으로 수도사는 수도원의 물을 한 병 떠 주면서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마다 이 물을 머금고 삼키지는 마시오라고 하여 한 번, 두 번 그러다가 화목케 되어 전설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아서 만난 사람이 살다 보면 미워지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 하니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스러운 데가 있어야지요.” 푸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을 모르고 살아가는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부부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은 어느 쪽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Never try to make anyone like yourself - you know, and God knows, that one of you is enough"

절대로 다른 사람을 당신과 같이 만들려 하지 말라 당신도 알고 하나님도 알듯이 당신 같은 사람은 하나면 족하다는 말입니다.

현숙한 아내, 근면한 남편으로 주님을 모신 가정이라면 주님께서 복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2) 사랑은 온유하며

모두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가정이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4).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사랑은 행복을, 투기는 불행을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8:6).

3)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신뢰받을 줄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부지간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 가정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4)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사람은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언어 예절을 보면 부부인지 오누이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더욱 가부장적 문화에 젖어있는 남자들은 특히 언어폭력에 주의해야 합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라는 이 말씀에 유의하여 아내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내 또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남편을 존중하여 기쁘게 해야 합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5-6).

진실한 사랑은 상대편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또 불화가 있을지라도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도록 속히 풀어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4:26-27).

 

2. 적극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적극적인 사랑이요 선험적인 사랑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6)

사랑하기에 삼가야 할 것은 마땅히 삼가야 하지만 진실한 사랑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에덴동산에 불행이 찾아온 원인과 다윗의 왕가에 덮친 불행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과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함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4:4-5).

행복을 위해서 포도원을 허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2:15).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5:15-18).

 

3. 온전하게 하는 은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8).

우리가 육체로 있는 동안은 예언과 방언뿐만 아니라 모든 은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육체를 떠나 천국에 들어가면 이러한 은사가 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천국에는 사랑만이 영원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어릴 때는 단단한 음식이 아닌 모유가 필요하듯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다양한 은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9-11).

아직도 옛사람의 생활 습관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야 합니다. 나무는 자라야 열매를 맺고 믿음은 성장해야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본능을 따르지만 장성한 사람은 이성으로 판단함과 같이 우리의 믿음도 어린아이로 있을 때는 아이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장성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진단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신앙 연조와 직분은 성장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어제 유명을 달리한 이상훈 성도 입관 예배를 드리면서 고인의 사진을 보고 저런 때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삶, 우리가 걷고 있는 고달픈 이 여정이 얼마나 남았는지 측정해 보십시오. 진리가 아니라면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미래의 거울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청각이 약해서 대화를 하는데도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마침 부산 아시안 게임에 송종석 선수가 205kg을 번쩍 들어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아버지 지금 들어올린 저 역도가 쌀이 두 가마 반이 넘는 무게입니다.” 했더니 누가 죽었다고?” 하며 엉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도자의 말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12:1).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12-13).

아 멘

 

 

 

 

 

 

 

 

 

 

 

 

 

 

 

 

 

깨달은 다섯 마디

고전 14:1-19

 

울며 태어나서 잠깐 웃음 짓다가 눈물짓고 떠나는 것이 인생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제 현태 군과 선아 양의 결혼식을 마친 다음, 원자력 병원으로 가서 박기훈 성도의 마지막 임종 예배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고인이 살았을 때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기에 시신은 즉시 가톨릭 병원에서 인수해 가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만 하여도 목사님, 이제는 목사님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약속 했는데... 이것이 인생입니다.

기회를 잃고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무엇을 위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

"The greatest use of life is to spend it for something that will outland it."

인생을 가장 보람 있게 사는 방법은 영원히 지속될 것을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허무한 것에 매여 종살이하지 말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앞장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십이 장에 이어 다시 신령한 은사 곧 방언과 예언에 있어서 교회의 덕을 논하고 있습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모든 성도가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을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님의 분부대로 기도하던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

오늘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에 힘쓰면 은혜가 충만해지고 은혜가 충만하면 모든 은사가 충만하게 될 줄 믿습니다.

 

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1).

사랑은 은사의 모체입니다. 교회가 부흥되는 생명의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물론 물질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오늘은 십만 원, 이십만 원의 십일조일지라도 오래지 않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복을 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귀한 재산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마게도냐 교회가 받은 은혜를 보십시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그들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8:1-2).

오늘 이러한 은혜를 우리도 힘입도록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 성장학회에서 말하고 있는 성장하는 교회의 여덟 가지 원칙입니다.

1)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우는 교회

2) 은사 중심으로 사역하는 교회

3) 뜨거운 영성을 소유한 교회

4) 다양한 조직들이 제 기능을 다하는 교회

5) 준비된 예배, 영감이 넘치는 교회

6) 소그룹을 통해 치유가 일어나는 교회

7) 불신자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충족시키며 자연스럽게 전도하는 교회

8) 교인관계에 사랑이 넘쳐서 가고 싶어 하는 교회

이러한 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기도입니다. 저는 이 강단에서 전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이 있다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4).

그때 열한 제자들을 비롯하여 모인 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1:13-14)고 하였습니다. 전도가 중요하고 봉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없이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이십 세기 세계적으로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를 통해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도 그분을 만나기까지는 술을 먹고 방탕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십일 세에 변화 받고 지금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도의 열매는 이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로 뻗어나간다는 사실입니다. 하루는 뉴욕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가 전도 집회를 하는데 동부에서 크게 사업을 하는 필립이라는 사람이 은혜를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생관이 변하고 물질관이 변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를 찾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닉슨 미국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보좌관이던 챨스 콜슨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Water gate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 있었는데 니고데모 같이 밤에 찾아가서 네가 변화 받은 비결을 내게도 알려 줄 수 없겠느냐하여 그가 은혜받은 간증을 한 다음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순간인데 자기에게 강력한 에너지가 흘러드는 것을 체험하고 그 길로 뛰쳐나가 자동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마치 물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은혜의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는 법정 재판에서 칠 개월 형을 받고 감옥에 있는 동안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는지 교도소 안에서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출감된 후 거듭난 사람이라는 책을 비롯하여 수많은 간증집을 출간하고 전국망을 가진 방송에도 진행을 맡아 죄수들을 위해 헌신하는 일로 템플턴 상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쓰라린 과정을 통해 맛보게 된 은혜의 열매입니다. 사랑을 따라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도구로 들어 쓰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언과 방언

이는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은사를 각각 지체의 기능에 따라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떠한 은사든지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리라”(2-5).

여기서 바울은 방언이 절제를 필요로 하는 것은 교회에서 방언으로 공중기도를 올릴 때는 성도들이 아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6,8-9).

혹자는 바울이 은사의 차등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방언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8).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하리요”(14-16).

 

3. 깨달은 다섯 마디

미국에서 있었던 일로서 목사가 유명 배우와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당신은 꾸며서 하는 말인데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그렇게 웃기고 울릴 수 있지요?”

, 나는 거짓을 진리 같이 말하고 당신은 진리를 진리가 아닌 것같이 말하는데 있소.” 라고 했다고 합니다. 진리는 깨달은 자가 소유할 수 있는 보배입니다. 아무리 값진 보배일지라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9).

여기서 언급하는 방언은 육에 속한 언어가 아니라 영에 속한 언어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는 일만 마디보다 자신이 깨달은 다섯 마디가 남을 가르치는데 더 효과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16:17).

새 방언은 역시 영에 속한 언어입니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방언으로 전하지 않았는데 유대인들이 알아듣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영에 속한 언어 곧 방언이기 때문입니다. 영에 속한 말씀은 영의 귀가 열려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는 귀와 보는 눈과 깨닫는 지각을 가진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일깨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

“Salvation is a free, but it's not yours until you receive it."

구원은 거저 받는 선물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기 전에는 당신 것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듭난 체험이 없는 자라면 복음의 열매를 맺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운 복음, 또 믿음의 증거가 없는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도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복음을 외쳤던 제이 수가성 여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행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4:29, 39).

우리 모두 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만민에게 증언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질서의 하나님

고전 14:20-33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당부하신 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8).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9).

본문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질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1.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20).

인간은 연령에 따라 성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바른 도리를 따라 살며 옳은 길을 가야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지혜와 지식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거기서 진리와 비진리, 선과 악을 깨달을 수 있고 육신에 속한 것과 영에 속한 것을 분별하므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아는 지혜와 지식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2. 악에는 어린아이

이것은 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믿음과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이성 없는 짐승과 다름없이 완악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주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하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18:1-4).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는 자를 존귀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죄에는 물들지 않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3. 방언과 예언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22).

같은 성령으로 받는 은사이지만 사람마다 다르며 또 사역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에 치유의 은사는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해 주신 선물이므로 이 은사를 받은 자는 주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방언의 은사는 영적인 기도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이루게 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신 일로 사도들과 성도들이 방언하는 것을 보고 무리가 보인 반응입니다.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2:5-8).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21).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2:8)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믿음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방언에 비해 예언은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은사입니다.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24-25).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통해 은밀한 중에 범죄한 다윗이 회개하였고, “오늘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베드로가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슬피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 심원 골수 관절을 찔러 쪼갠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가 산 교회요, 말씀에 반응하는 심령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4. 은사와 질서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26).

은사를 받은 분들은 특히 주의해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가 승천하는 순간까지 따르기를 멈추지 않았던 엘리사가 승천 직전에 엘리사와 주고받은 말입니다.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왕하2:9).

네가 어려운 것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왕하2:10).

여호수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에게도 모세를 능가하는 영감을 주시지 않으시고 모세에게 도전하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은사일지라도 교회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교회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27-30).

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떠한 은사든지 은사 받은 사람이 절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계실 때에는 혈육과 의논하지 말고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또 근심시키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은혜 충만, 능력 충만, 은사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5. 교회 안에서 여자의 위치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34-36).

이 말씀은 바울이 남자이므로 가부장적인 편견을 가지고 여자를 비하하기 위한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남녀를 상하 개념이 아니라 질서의 개념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유명한 인물의 배후에는 두 여인이 있는데 어머니와 아내입니다.

시력장애를 가진 강영우 박사의 가장 큰 은인은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가 중학교 일 학년 때에 시력을 잃고 이 년 동안 시력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 몸부림치며 기도했지만 회복이 되지 않자 점자 글을 익혀서 5년이 지난 후에 다시 중학교 과정에 들어갔는데, 그때 마침 자기에게 등록금을 후원해 주기 위해 찾아온 다섯 여대생들이 있었는데 그중 친절한 한 여대생이 아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그분은 부잣집의 고명딸로 숙명여대에 다니고 있었으며, 자신은 시력장애를 가진 중학생이었으므로 부부될 생각을 품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깊어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강영우 박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고, 그 아들들 또한 훌륭하게 자라 큰아들은 아버지의 눈을 밝히겠다는 꿈을 품고 하버드대학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힘든 의과대학에서 공부하여 안과 박사가 되었고, 작은아들 부부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미국 국회에서 최연소 법률 연구위원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법률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불행했던 사람이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 사례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영광스런 몸을 누구에게 제일 먼저 보였습니까?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1, 2부 새벽예배를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과연 깨어 있는 기도는 생명의 원동력이 됨을 믿습니다. 믿음이 타성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하루에 세 번 이상 새벽을 깨우소서라는 기도를 잊지 말고 드려야 할 것입니다. 기도로 헌신하는 분들이 큰 일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로님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주시고 또 안수집사님들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십시오. 우리 모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이 생명록에서 빛을 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사도 중에 작은 자

고전 15:1-11

 

복음 중에 복음이라면 부활의 복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진리만이 유일한 진리임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또 여러 가지 은사를 다룬 후에 이제는 그리스도 부활의 진리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부활의 사건이 은밀한 중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육신으로 오신 주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으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초월하신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광이 곧 우리의 영광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15:51).

 

1. 영생에 이르는 믿음

복음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한다면 이는 참된 복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은 언제나 그리스도 부활에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1-2).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것은 이미 받은 복음이요 또 그 믿음 가운데 서 있다 할지라도 동일한 복음을 또 다시 전해야 할 것은 복음은 믿는 자에게 생명이 되는 영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은 건강한 것 같아도 곡기가 끊어지면 속히 운명합니다. 사실 죽음의 문제는 젊은 사람, 어린아이라도 차이가 없습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까? 마지막 심판도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전화 심방을 하면 내가 모두 알아서 할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는 분도 있습니다. 고맙지요. 그러나 영혼이 핍절하면 우리의 믿음도 약해지는 것입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3:1).

믿음은 복음을 들음으로 성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부에 떨어진 홍포 입은 부자에게 낙원이 위로가 될 수 없다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 성경대로 이루어진 부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3-4).

육신으로 오신 주님도 성경대로 오셨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한 복음입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1:45).

성경에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삭과 삼손, 세례요한과 같이 예언으로 온 인물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임무와 사명을 받아 태어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예언에 의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영하라 하신 일반 법칙으로 났지만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일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15:16).

주님은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려 함이라하신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각본에 의해 등장한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진리가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너의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8).

 

3. 부활의 증인

바울은 본문에서 부활의 증인들을 모두 언급하지는 않으나 횟수와 숫자를 보아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5-8).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원수에게는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에서라면 바리새인들과 그를 심문하던 제사장들에게 한번 보이셨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백보좌 심판 때에는 원수들에게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

2) 택함을 받은 자 즉 사랑하는 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귀중한 선물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부활이 믿어지십니까? 나를 특별히 사랑하사 이 믿음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3) 시공을 초월하는 분으로 등장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26).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께서는 이제 나귀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사십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셨으나 그동안 어디에서도 숙식을 함께 하신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시공을 초월하신 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불원간 우리의 부활이 되어 우리도 영원한 영광에 이를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바울의 겸손

1)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자

이는 달을 태우지 못하여 모자라게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곡식이 덜 익어 수확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기는 인간으로서 어디가 모자라게 태어난 자와 같다는 고백입니다. 일찍 그가 진리를 대적할 때는 이런 겸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후 그 앞에서는 자신이 너무도 미미한 존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순간이라도 멸망 받아 마땅한 자로서 죄인 된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2:6).

그러면서도 낮아진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 자신의 영광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밤하늘의 별들이 밝은 태양 아래서는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게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이 되시기 소원합니다.

 

5. 두 가지 고백

1) 나의 나 됨의 은혜

미국 대통령 부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엘 고어와 대통령 선거로 한참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을 때 그의 보좌관으로부터 권유가 있었습니다.

유세 때 될 수 있으면 하나님의 소리를 적게 하라 유권자의 인기가 떨어진다고 하자.

나는 이 땅에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만일 떨어지면 NBA 자격이 있으니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여 더 인기가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또 하루는 기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존중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를 들 수 있습니까?” 하였을 때 서슴치 않고 “Jesus Christ. He has change me and my life." ”예수 그리스도, 그는 나를 변화시킨 분이다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믿으면 천국가고 불신자는 지옥에 간다는 것이 보수층의 믿음인데 당신의 신앙관은 어떠합니까?” 하자,

“Ask God.” “그것은 하나님께 물어보시오. 구원하고 안 하는 것은 나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믿기 때문에 사후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내 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 더 많이 수고한 은혜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0).

얼마나 마음 뜨거워지는 고백입니까? 이러한 믿음의 사람 자기의은 자기 공적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도리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영광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하나님의 능력 힘입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 소원합니다. 아 멘

 

 

 

 

 

 

 

죽은 자의 부활

고전 15: 12-19

 

진리는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자연의 진리요, 또 하나는 영생의 진리입니다. 자연의 진리는 우주 만물의 창조와 함께 부여된 자연의 질서 곧 자연의 법으로서 이것은 과학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진리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밝힐 수 없는 진리 곧 영생의 법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와 한 청년이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청년이 성경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사유를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다는 말씀에 감동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청년! 원문에는 홍해가 아니라 갈대 바다일세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릎까지 차는 갈대밭을 건넌 셈이지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무릎까지 밖에 차지 않는 갈대밭에서 애굽 군대를 전멸시켰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기적이 아닙니까?”

여기서 그 신학자는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구원의 진리를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전1:18-19).

 

1. 부활의 진리를 불신하는 자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복음은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는 허위로서 속임수가 될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13-15).

그리스도의 부활은 엄연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렇게도 확실한 부활의 진리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활의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서1:1).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행하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24:17-20, 25-27, 32-35).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된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실의에 빠졌던 발길이 돌아서게 되었고 또 진리를 대적하던 발길은 증인의 삶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5-16).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

여러분! 성령을 받았습니까?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힘입은 자는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므로 영생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어느 때에 성령이 임하시는지 보십시오.

(1) 말씀을 들을 때 임하십니다.

초대교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일어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 명이나 더하더라”(2:37-39, 41).

(2) 기도할 때 임하십니다.

우리의 자랑은 새벽기도입니다.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더욱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2-13).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4:31).

 

2.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바울은 변증법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중에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하고 가정법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은 신 불신을 막론하고 무덤에서 종지부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16).

모든 사람은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는 그 날에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20:6).

그날에 우리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불신하는 자들을 향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하고 가정법을 써서 부활의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1) 믿음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사실 구원받지 못할 진리라면 누구를 믿으라고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부활의 진리요, 영생의 진리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2) 속죄의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속죄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8:11).

간음하다 현장에서 끌려온 여인에 하신 말씀입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9:2).

침상에 누운 채 네 사람에게 메여 온 중풍환자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서기관들은 속으로 신성을 모독하도다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죄를 사할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받으신 고난과 흘리신 보혈이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죄악을 사해주셨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부활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7-18).

3)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부활신앙을 가진 자가 더욱 불쌍한 자가 됩니다.

세상에는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또 부모 없이 살아가는 고아나 과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에게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긍휼을 더 많이 힘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쌍한 자는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세상 영화를 한 몸에 지니고 살면서도 부활의 신앙을 불신하는 자들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믿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불행이라면 거짓을 진리로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19).

그러나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진들은 영원한 이 진리를 위해 목숨도 기쁘게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믿음 굳게 잡고 오늘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부활의 차서

고전 15:20-28

 

옛날이나 오늘이나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또한 불신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영생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를 살펴보면 유교나 불교에서 주장하는 신선과 극락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나온 기대일 뿐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2002년 뜻깊은 성탄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일반인들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지난 금요일 저의 자부가 병원을 다녀오더니 아버지, 아이 사진 한 번 보세요. 그리고 속히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예쁜 이름으로요.” 하며 보여주는데, 칼라와 흑백으로 나온 뱃속 아기의 사진을 보면서 참 세상이 많이 좋아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몇 달 있으면 저도 할아버지가 됩니다. 성도 중에는 목사님이 손자를 보시면 다른 아이들은 안중에 두지 않으리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저는 본래 생긴 것이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으니 근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의 결과에 대해 언급한 후 본문에 와서 그리스도 부활의 적극적인 면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1. 부활의 첫 열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

유의할 것은 첫 열매입니다. 곡식 중에서 맏물은 우량종으로서 농부들은 그것을 씨종자로 사용합니다. 또한 육체와 부활체의 차이입니다. 성경에는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들이 있는데, 그중에 나사로의 부활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르다와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11:21-27).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신 주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11:43-44).

이 나사로는 예루살렘 성 밖에 가면 주의 사랑하는 자, 그의 곁에서 잠들다는 묘비와 함께 예수님의 빈 무덤 곁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떻습니까? 다시 무덤에 들어가야 할 육체가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원간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도 그리스도와 동일한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람으로 말미암은 사망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1).

만일 인간이 없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가 있을까요? 모두가 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국립공원에는 얼마나 많은 초식동물이 맹수에게 잡혀 먹히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미개인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짐승에게 해를 입으면 그것은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천재지변이 일어났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그곳에 사람이 있으면 재앙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성 없는 짐승은 사후에 심판받을 일이 없는데 인간은 있으므로 그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멸망 받을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God loves every one of us as if there were but one of us to love."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치 이 세상에서 사랑할 사람이 나 한 사람밖에 없는 것같이 사랑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리 난간에 화환을 걸어놓았기에 그 연유를 물었더니 조금 전에 한 여인이 자동차에서 강아지를 안고 여기에서 투신자살을 했는데 그녀가 타고 온 자동차 안에 남긴 유서에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는 자가 없어요. 이 강아지 외에는이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다면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생명을 그렇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므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내 인생이 존귀한 존재임을 알았다면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내 할 본분과 사명의 중대함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아담 안에서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

이 말씀은 저에게 있어서 오랫동안 쉽게 풀리지 않았던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왔다는 말씀은 선악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 할지라도 아담의 범죄가 왜 후손들에게 동일하게 미쳐야 하느냐 하는 문제와 또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된다는 부활의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신 진리가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요, 또 참포도와 들포도의 비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3:22-24).

이로 말미암아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어야 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감사할 일은 죽어야 마땅할 죄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생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을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류가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것이 만인 구원설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국한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덴에서 축출된 아담의 후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나기 전에는 어떤 도덕이나 철학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혈의 능력이 무한하지만 그리스도 밖에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4. 부활의 차서

이것 역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거기 따라 영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가인 같이 아우를 질투하여 그 영광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길 줄 아는 자가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됨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천국에도 불만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23-24).

1)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모든 역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심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요, 대속과 구원의 은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라면, 부활의 영광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요, 영원한 영광도 그리스도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2)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구원받는 모든 성도가 여기에 속한 자로 이들은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이 오기 전에 더욱 충성된 믿음으로 과실을 많이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3)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입니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24-26).

미국에는 믿는 조종사와 부조종사를 함께 탑승시키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함께 들림을 받을까 하여서라 합니다. 물론 조크이지만 생각할 여지는 있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안전사고를 염려할 겨를은 없을 것입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날에 세상의 일들을 생각한들 자신의 생명에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저주와 고통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영광의 새 아침이 불원간 올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오시는 그 날 영광 가운데 주님을 맞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영광에 이르는 길

고전 15:29-49

 

지난 목요일 우리는 앞으로 오 년 동안 나라를 책임질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역대 선거 중에서 가장 돈이 적게 든 선거였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국정을 수행해 나가는 데도 부정부패가 없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이기에 국민이 기대하는 바는 매우 클 것입니다. 학생들은 수능의 고비 없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며,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은 등록금의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가난한 백성들은 사글세에서 전셋집으로, 전셋집은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또 장사하는 분들은 불황이 없도록, 사업하는 분들은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농사짓는 분들은 농작물 가격을 안정시켜 잘 살 수 있도록, 월급 받는 분들은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바랄 것입니다.

전 미국 대통령 J. F. 케네디의 말이 기억납니다.

미국 시민 여러분!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 전 세계 자유 우방 국가 국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 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서울 법대 출신의 대통령 후보자가 지방 상고 출신 후보에게 두 번이나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목포상고 출신이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부산상고를 졸업하여 은행원이 되기를 꿈꾸었으나 농협에 들어갈 시험에도 떨어져 그 꿈을 접었다고 했습니다. 또 예비 퍼스트 레이디 권양숙 여사는 계성여상 삼학년을 중퇴한 사람입니다. 학벌이 낮은 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줄 압니다. 또 젊은이들이 많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선거 당일 저는 골절상을 입고 입원 중인 젊은 성도를 문병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팔에 목발을 딛고 나오기에 저는 화장실을 찾는 줄 알았더니 투표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얘들아 투표는 될 사람에게 찍어야 되느니라.” 했더니 아닙니다. 우리는 찍을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어요.” 하는데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구도가 달라졌습니다. 십오 대까지는 자신과 같은 출신의 사람이 반드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번 선거에서 이러한 지역구도가 깨뜨러진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이 나왔으니 세계에서도 국가의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도록 긍지를 가지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부활을 부정하는 자에게 부활의 상태와 그 원리에 관해 변론하고 있습니다.

 

1. 죽은 자들을 위한 세례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29).

이 말씀에 관한 해석은 구구합니다.

1)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자들을 위해 산 자가 대신 세례를 받는 것.

2) 신자의 일반 세례로서 죽은 자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는 세례, 즉 죽을 죄의 사유를 받기 위해 받는 세례입니다. 죽은 자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8:21-22).

첫 번째가 천주교의 해석이라면 두 번째는 개신교의 해석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죽음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30-31).

이 말씀은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과 욕을 쳐서 복종시키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속에 사는 것이 영생의 진리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믿음의 선한 업적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32).

절제를 모르는 삶에서는 참된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올무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33-34).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오늘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버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낙마로 척추를 다쳐서 숨도 못 쉬며 음식도 먹지 못하고 산소호흡기와 튜브를 통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 지경에 처했을 때였습니다. 급히 소문을 듣고 찾아온 어머니를 향해 한 말입니다.

어머니, 이제 저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안락사 할 수 있도록 이것들을 빼는데 동의해 주십시오.” 하였을 때 어머니는,

얘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니? 어쩔 수 없구나.” 하고 슬퍼하면서 동의를 안 할 수 없었으나 부인은 동의하지 않고 하는 말이 “You are still you."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라고 하면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극을 받아 자신에게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Still me"라는 책을 내어 bestseller가 되었고 많은 돈을 벌어 척추신경재생재단을 만들었는데 전국적으로 후원자가 나서서 2$ 이라는 거금이 모아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척추 재단으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모금이었다고 합니다.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병든 자도 들어 쓰십니다. 돈이 없어도 들어 쓰십니다.

저는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한없이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아시는 것처럼 최근에 우리 교회 전종실 장로님께서는 몸이 매우 약해지셨습니다.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위에 혹이 있고 간에도 그런 증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일 저녁에 기도 받고 월요일 다시 가서 위내시경 사진을 찍었더니 위와 간에 있던 혹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심방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장숙자 집사님의 친정아버지가 후두암으로 투병 중이라며 심방을 요청하여 갔더니 팔십 되신 아버지를 세 딸이 간호하고 있었는데 예배를 마치자 그들이 성령의 불을 체험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형태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35-38).

여기서 우리는 육체와 부활 체가 전혀 다른 모습이리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 분명한 변화가 있는데 영원한 영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이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보다 더 큰이가 없다고 하였으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40-41).

영원히 시들지 않는 부활의 영광을 위해 오늘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4. 영광에 이르는 길

죽어야 산다는 것이 부활의 진리라면 썩을 것을 심어야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산다는 것이 영광에 이르는 진리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42-44) 하였습니다.

여러분! 부활의 진리를 믿으십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심으십시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킬 수 없는 육체의 생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심으십시오.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욕된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심으십시오. 영광스러운 것을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불원간 청지기 직을 내려놓아야 할 때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귄 자가 주인에게 칭찬받은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돈의 한계에 대한 글을 인용합니다.

돈으로 약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건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다. 그러나 가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낭만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다. 그러나 식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다. 그러나 숙면은 살 수 없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8:12).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당부한 말씀입니다.

네게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며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아 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자

고전 15:50-58

 

우리는 지금 창조의 질서를 넘어서서 복제인간을 만들어 내는 종말적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복제 서비스 전문기업을 표방하는 ‘Clonaid'는 프랑스 카레이서 출신인 라엘이 천구백칠십삼 년에 설립한 단체 라엘리안 무브먼트라는 종교집단의 자회사입니다.

본명 클로드 보리옹인 라엘씨는 천구백칠십삼 년 십이월에 엘로힘이라는 외계인(UFO)을 만나 인류 탄생의 비밀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외계인이 DNA를 복제해 만들었으며 라엘씨는 천구백칠십오 년 엘로힘의 행성을 방문해 인간 복제 현장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현재 전 세계 팔십 여개국에 오만오천 명의 라엘리언 신도가 있는데 한국 지부에도 팔십삼 년도 오월에 창립되어 이천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자신의 몸에서 채취한 DNA로 자신과 동일한 복제인간을 만들면 자신의 존재가 다시 탄생하게 되므로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경에 비춰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중생의 진리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50).

만일 복제인간이 육체가 아니라면 영생을 운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로 태어나는 자는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밤에 주님을 찾아온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와 주고받은 말씀입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3:2-8).

육체와 부활체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육체는 죽을 수밖에 없으나 부활체는 죽지 않습니다. 만일 내 몸에서 DNA를 추출하여 복제인간이 태어나게 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유한한 존재로 태어났을 뿐 영생과 무관함을 알아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6-18).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이와 같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리는 복제인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born again’ 곧 중생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영원한 일과 헛된 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이 없습니다. 그중에는 중요한 일이 있고 중요하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공적인 일이 있는가 하면 사적인 일도 있습니다. 또한 영에 속한 일과 육에 속한 일이 있습니다.

유의할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의 일과 세상일에 있어서 우리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옳은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또 복된 일과 욕된 일이 있다면 복된 일은 기회를 잃지 않아야 하고 욕된 일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솔로몬이 전무후무의 복을 받게 된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1) 지혜를 구한 일

솔로몬은 부왕 다윗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먼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일로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하셨는데 그때 솔로몬은 왕으로서 임무를 바로 감당하기 위해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는 자기가 맡은 임무를 따라 백성을 바로 다스리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므로 그가 구하지 않은 수와 부와 권세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오늘도 충성된 자의 기도를 즐겨 응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성전 건축

7

칠 년에 걸쳐 이룩된 성전에 법궤를 옮기고 기도를 올렸을 때 성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그는 자기를 위하여 십삼 년에 걸쳐 백향목 궁을 건축하였습니다. 사실 솔로몬이 이렇게 큰 부와 영화를 누리고 살았다할지라도 하나님을 멀리하면 욕되고 무익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와 영화가 극도에 이르자 절제를 모르고 살았던 후일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2:9-11).

당부 드립니다. 개인 사업이나 직장생활,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솔로몬이 마지막으로 남긴 생의 결론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12:13).

영원히 헛되지 않는 일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복된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 이 영광의 대열에서 의의 면류관 받아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58).

 

3. 부활의 능력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51-52).

이 부활의 진리는 유대인들이 알지 못했고, 과학으로도 밝힐 수 없고, 마귀도 알지 못하는 비밀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2:6-8).

마귀도 부활의 진리를 알았다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주를 따르는 성도들을 박해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둘째 심판으로 지옥에 들어갈 저주받은 영물입니다. 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부활의 진리가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주는 무기입니다.

선진들이 무엇으로 세상을 이겼는지 보십시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이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도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11:32-38).

어떤 무기이기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을까요? 부활의 진리입니다.

풀무불도 불사하였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무장이 곧 부활의 믿음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3:16-17).

이뿐만 아니라 사자 굴도 불사하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다니엘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현세가 아니라 내세, 육신이 아니라 부활신앙으로 무장을 하였기에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부활의 진리를 길게 다룬 후에 이제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55-57).

이것이 부활 신앙으로 무장한 성도들의 영원한 승리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진리가 아니면 흥분하지 마십시오. 사소한 일로 신앙을 잃게 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직 부활의 진리를 위해 헌신하여 영원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헌금의 은혜

고전16:1-9

 

저는 이천삼 년도 신정 예배를 드리고 4남전도회 가족들과 함께 이른 새벽 불암산에 올라가서 해돋이 구경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혹시 저의 얼굴이 TV에 비칠까 기대했는데 방송국 기자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작년에는 청년들이 대부분 중도에서 포기하고 내려왔다는 말을 듣고 우리 교회 청년들이 몹시 유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any of life's are people who did not realize how close they were to success when they gave up" (Thomas Edison)

인생에서 많은 실패는 자신들이 얼마나 성공에 가까이 있느냐를 깨닫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팔십 대의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이십 대의 늙은이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을 젊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연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꿈과 이상의 유무에 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동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협회에서 발표한 노인의 정의입니다.

1) 늙었다고 느낀다.

비록 착각이라 할지라도 마음까지 늙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한다.

배움은 일평생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맥아더 장군은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고, 요한 웨슬레는 말을 타고 가면서도 독서를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3) “이 나이에 그까짓 일을 뭐 하려고 해라고 말한다.

4) 내일을 기약 할 수 없다고 느낀다.

5) 젊은이들의 활동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젊은이들의 모험이 부질없는 불장난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큰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6)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노인들은 먹은 것이 입으로만 간다는 말도 합니다.

7)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7:10).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로워질 수 있는 영원한 소망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103:5).

바울은 고린도전서 십오 장에서 부활의 진리를 정점으로 언급한 후 이제 본문에서는 연보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연보의 의미

연보에 관한 의미는 여러 가지입니다.

1) 연보: (λογιασ) 모으다λοΥεοω에서 나온 용어입니다.(1-2).

2) 은혜: (χαρισ)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3)

3) 교제:(16:26) (κοινωνια).

4) 축복: (ευλοΥια)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후9:5).

5) 봉사: (λειτουρΥια)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고후9:12).

6) 구제: (`ελεημοσυνα)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24:17).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은혜받은 사람이 맺게 되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린 여인은 그리스도의 참사랑과 은혜를 맛보았고, 여제자 도르가와 루디아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일절에 갈라디아 교회에 명한 것같이라는 말씀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다른 사도들을 통해 부탁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2: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6:10).

“Love is a fruit in all seasons and within the reach of every hand.” (Mother Teresa)

사랑은 모든 계절에 얻을 수 있는 열매이며 또한 모든 사람들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정과 욕을 다스리십시오. 기회는 지나갑니다. 우리 모두 허무한 데 종살이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충성하여 의의 면류관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 매 주일 첫날 모임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2).

매 주일 첫날은 그리스도 부활하신 날로서 성경에 주일에 모이게 된 동기와 역사를 보면,

1) 동기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16:9).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24:1).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1:10).

2) 주일에 모임을 가진 역사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20:7).

물론 초대교회 사도들은 안식일과 주일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고 또 성도의 교제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주일로 완전히 변경된 것은 주후 4세기 초엽으로 보고 있습니다.

 

3. 헌금의 기준

헌금의 기준은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일평생 주님을 섬기노라 하면서도 성물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약속하신 복이 성취되는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또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 십일조를 정하여 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므로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복도 계산하지 않고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8, 10).

혹시 하루살이는 걸러먹고 약대는 통으로 삼키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심판대에 이르기 전에 청산해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는 구약에서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도 명하신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23:23).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2).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6-7).

시찰 산하에 있는 S교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그 교회 장로님이 목사님, 필요한 책을 구입하는데 쓰십시오.” 하고 수표를 주는데 그날로부터 새벽마다 올리는 그 장로님의 기도가 그렇게 은혜로울 수 없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울은 다시 언급하기를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5-6).

이는 사르밧 과부의 가정에서 한 끼의 양식밖에 없음을 알고도 그것을 먼저 나로 먹게 하라는 엘리야의 요구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응한 사르밧 과부의 순종이 삼년 육 개월 기근을 이기는 기적을 가져오게 해주었습니다.

여러분! 무덤에 들어가 한줌의 흙으로 사라져버릴 육체를 우상시 하지 마십시오.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였습니다. 내게 있는 물질이 물질로 그치지 않고 성령의 열매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누군가 교회 건축을 위해 집을 드릴 분도 나오리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전화를 하신 어느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 너무 감사해서 목사님께 먼저 전화를 올립니다. 저의 아들 내외와 의논을 했는데 어머니의 뜻이 그렇다면 집을 드리는 일에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하여 집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그분은 40세에 혼자되어 철부지 삼남매를 기도로 기른 어머니입니다. 오늘 아침 그 아들 내외가 봉투를 가지고 와서 저에게 기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병이어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주님! 오늘도 솔로몬의 영광이 이 땅에 이뤄지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 기도하고 영광에 대열에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고전 16:10-24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첫 번째 편지는 오늘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많은 저자들을 접하게 되지만 그중에도 바울을 통해 받는 은혜는 너무도 큽니다. 성경이 누구로 말미암아 기록되었든지 진리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 누구를 막론하고 성경은 지금 내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저에게는 골방 기도처가 있는데 그곳은 바로 저의 사무실입니다. 특히 월요일 아침이면 매 주일 헌금 통계를 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보통 30-40분이 걸리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에는 신년 감사헌금 봉투를 가지고 이천이 년도 기도제목과 대조하며 기도를 올렸는데 약 두 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은,

1) 모두가 선한 목자 되신 주의 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요.

2) 콩나물이 자라는 줄 모르고 자라듯이 우리의 믿음이 이렇게 성장하고

3) 성도들의 소박한 소원 속에 담겨있는 진실된 믿음과,

4) 기도로 출발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금년에는 우리 교회 창립 삼십 주년이 됩니다. 피로 사신 주님의 교회를 건축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힘입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며칠 전 총회신학교 Vision 2012년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Vision 2012년의 청사진을 만들어 교회를 부흥시켜 나갈 것입니다.

금년도 목표는

1) 주의 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솔로몬과 또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신 영광으로 우리에게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태신자 갖기 운동으로 교회를 배가시켜나가는 일에 주력할 것입니다. 이 일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유치부를 비롯하여 유초등부와 중고등부 청년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기도하고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3) 전성도 새벽기도에 주력하는 일입니다. 경건 생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생명의 원동력이요 능력의 원천이므로 우리는 전심으로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무기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9:29).

또 기도는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5:15).

저는 새벽기도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기도에 어떠한 장애가 있습니까? 극복해야 합니다. 기도는 건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병든 자들도 해야 합니다. 기도는 부자나 가난한 자,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무한 자원입니다.

스펄 젼 목사는 일이 분주할수록 기도하는 시간을 더 늘렸다고 합니다. 이유는 주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성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1. 디모데에 대한 당부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10-11).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면서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당부하는 것은 그들로 은혜받을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다니던 시골 교회에서는 목사님을 뵐 수 있었던 날이 일 년에 두 번 성찬식 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10km 떨어져 있는 오순절 교회에는 목사님이 계셨고 또 그곳에 저의 사촌이 있어서 교회 행사가 있을 때 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교회의 목사님이 얼마나 귀해 보였던지 성직자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사무엘을 멸시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영접한 백부장 고넬료와 엘리사를 영접한 수넴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10:33).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왕하4:9-10).

그들은 하나같이 은혜받을 기회를 잃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1-2).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귀함을 알아 우리는 감사로 열매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바울은 또 아볼로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12).

아볼로가 고린도에 갈 뜻이 없었다는 이유에 관해서는,

1) 현재 머물고 있는 곳에 더 중요한 계획이 있어서,

2) ‘나는 아볼로에게라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깨어있는 믿음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13).

여기서 바울은 십자군의 사령관으로서의 영적인 권위로 네 가지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1) 깨어나라

이는 경성과 분발을 의미합니다. 잠든 상태로는 어떤 일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또 주님 오실 날을 우리가 알 수 없으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13:35-37).

2) 믿음에 굳게 서라

이것은 영적인 무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6:13).

3) 남자답게 강건하라

이는 담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9).

4) 강건하라

이는 용맹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는 전사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두렵고 떠는 자는 기드온의 삼백 명 용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어떠한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마지막 권면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15-16).

첫 열매가 되었다는 것도 귀중한데 더욱 보배로운 것은 그들이 성도를 섬기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마땅히 존중하고 본받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교회를 만들고, 좋은 교회는 좋은 풍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오순절 사건 이후 초대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He who puts God first will be happy at last."

하나님을 첫 번째 두는 사람은 나중에 행복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도 스데바나의 집과 같이 섬김의 복을 받아 선한 사업에 부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17-18).

 

4. 문안과 축도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19-20).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교제는 무엇보다 귀중합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1-22).

어느 때 누구를 막론하고 진리를 변질시키는 자들은 용납할 수 없으므로 그런 자들은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죄는 저질러도 무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개할 수 있는 죄가 있고 회개할 수 없는 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질적인 죄는 시벌이 불가피하여 제명, 출교를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23-24).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