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강해설교

질서의 하나님

주님만 주님만 2014. 9. 27. 13:22

질서의 하나님

고전 14:20-33

바울은 누구보다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8절) 하였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다섯 마디로 말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1.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20절).
인간은 연령에 따라 신체적인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바른 도리를 따라 살며 옳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지혜와 지식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거기서 진리와 비진리, 선과 악을 깨달을 수 있고 육신에 속한 것과 영에 속한 것을 분별하여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아는 지혜와 지식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2. 악에는 어린아이
이것은 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믿음과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을지라도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이성 없는 짐승과 다름없이 완악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것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물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하고 물었을 때,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1-4) 하셨습니다.
이렇게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는 자를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는 물들지 않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3. 방언과 예언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22절).
같은 성령으로 받는 은사이지만 사람마다 다르며 또 사역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에 치유의 은사는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해 주신 은사이므로 이 은사를 받은 자는 주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방언의 은사는 영적인 기도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이루게 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신 일로 사도들과 성도들이 방언하는 것을 본 무리들의 반응입니다.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됨이냐”(행2:5-8).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21절).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엡2:8)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믿음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방언에 비해 예언은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은사입니다.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24-25) 하였습니다.
선지자 나단을 통해 은밀한 중에 범죄한 다윗을 회개하게 하였고(삼하12:7),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13:38)는 주님의 말씀으로 베드로가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널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이렇게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가 산 교회요,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4. 은사와 질서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26절).
은사를 받은 분들은 특히 주의해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가 자신이 승천하는 순간까지 따르기를 멈추지 않았던 엘리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을 때 엘리사의 대답입니다.
“스승의 영감이 갑절로 내게 임하기를 원하나이다 네가 어려운 것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보기 전에는 그것이 네게 임하지 않으리라”(왕하2:9-10).
여호수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모세를 능가하는 영감을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은사일지라도 교회에서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부작용을 일으켜 교회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27-30) 하였습니다.
또 어떠한 은사든지 은사 받은 사람이 절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계실 때에는 혈육과 의논하지 말고 열매 맺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또 근심시키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은혜 충만, 능력 충만, 은사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5. 교회 안에서 여자의 위치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33-36).
이 말씀은 바울이 남자이므로 가부장적인 편견을 가지고 여자를 비하하기 위한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남녀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상하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의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유명한 인물의 배후에 어머니와 아내의 돕는 손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질서에 순응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시력장애를 가진 강영우 박사의 오늘이 있게 된 가장 큰 은인은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가 중학교 1학년 때에 시력을 잃고 2년 동안 시력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 몸부림치며 기도했지만 회복이 되지 않자 점자 글을 익혀서 5년이 지난 후에 다시 중학교 과정에 들어갔을 때 마침 자기에게 등록금을 후원해 주기 위해 찾아온 다섯 여대생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전달하고도 더욱 친절을 베푼 한 여인이 지금의 자기 아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녀는 부잣집의 고명딸로 숙명여대에 다니고 있었으며, 자신은 시력장애를 가진 중학생이었으므로 서로들 부부될 생각을 품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깊어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강영우 박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고, 그 아들들 또한 훌륭하게 자라 큰아들은 아버지의 눈을 밝히겠다는 꿈을 품고 하버드 대학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힘든 의과대학에서 공부하여 안과 박사가 되었고, 작은 아들 부부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미국 국회에서 최연소 법률 연구위원으로, 지금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법률 고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장 불행했던 사람이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 사례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영광스런 몸을 누구에게 먼저 보이셨습니까? 옥합을 깨뜨린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렇게 여인은 귀한 존재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1부, 2부 새벽예배를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과연 깨어있는 기도는 생명의 원동력이 됨을 믿습니다. 믿음이 타성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는 매일 세 번 이상 “새벽을 깨우소서”라는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기도로 헌신하는 분들이 교회의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같이 생명록에서 그 이름이 빛을 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