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가치
절대적인 가치
고전 13:1-3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더욱 큰 은사와 가장 좋은 길은 동일하게 사랑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대해 학자들이 말한 것을 소개합니다.
“이 장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교회의 특별한 찬양의 대상이 되어 왔다” (Farrar).
“이는 바울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힘 있고 또 가장 심오한 것이다”(Harnack).
“이 유명한 장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바울의 기록 중에 최고봉이다”(Craig).
“사랑은 교회에서 능력의 첩경이다”(Findlay) 라고 하였습니다.
어떠한 은사나 행위도 사랑을 제하면 영적인 가치 곧 진리의 가치를 잃게 됩니다.
1.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1절).
‘사람의 방언’에 대해서는 오순절 사건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 자기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기이하게 생각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행2:5-8),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인지에 대해서도 양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나오는 ‘천사의 말’과 대조가 되므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하겠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제하면 그 의미를 잃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방언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2. 예언하는 능력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2절).
역시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본문에 언급된 은사 중에 어느 것 한 가지인들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은사는 누구든지 원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1) 예언하는 능력
예언의 은사는 선지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체포하기 위해 사자들을 라마나욧으로 보냈을 때 그들이 예언을 했는가 하면 심지어 사울도 벌거벗은 채 하루 종일 예언한 일이 있었습니다(삼상19:20-24). 그러므로 그것이 속담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언의 은사는 지체 중에서 눈과 같은 임무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 이는 우주의 기원과 영원의 세계를 한 눈에 보시는 전능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 눈을 밝아졌을 때 시내산에서 창조의 사역과 족장들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고, 다니엘은 금신상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계2:2),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거니와”(계2:9),
“네가 어디에 사는 지를 내가 아노니”(계2:13),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계2:19),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계3:1, 15).
이렇게 주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눈에 보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안목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눈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또 더욱 귀한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 산을 옮길만한 믿음
주님께서 간질 든 소년을 고친 일로 인해 제자들이 조용히 나아와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19-20) 하셨습니다.
만일 오늘 어떤 사람이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독도는 울릉도로 옮길지어다’라고 하여 그대로 되었다면 이것은 기상천외한 일로 온 세계가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도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 하셨습니다. 다만 겨자씨로 비유된 이 믿음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창조하신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3. 구제의 은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절).
구제의 은사는 무엇보다 귀중합니다. 구제의 은사를 받지 않고는 구제의 열매가 맺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록펠러 재단이라면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록펠러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큰 부자였던 것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좋은 일 할만 한 믿음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54세에 불치의 병으로 죽어갈 때 하나님께 서원하고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물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93세까지 살면서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와 교육사업, 또 사회사업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록펠러 재단에서 지급한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 일만 명 중에 노벨 수상자가 60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구제가 물질로 그치지 않고 구원의 복음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How we give is more important than how much we give." 우리가 어떤 식으로 주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주느냐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사명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 전 터키에 나가 있는 장혜경 선교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곳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터키인도 함께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가질 때에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는 구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19:16-22).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부자 청년이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다면 그가 구원을 받았을 텐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재산이 많으므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주님을 등졌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구제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동정에 그칠 뿐입니다. 오직 복음을 앞세운 손길에 구원의 열매가 맺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 하였을 때 일어나 걷고 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절). 이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닐지라도 생명을 불사르는데 던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는 폭탄을 품고 죽음으로 뛰어드는 자들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사랑 대신 증오심이 불타고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다면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으며 희생을 불사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리스도 밖에서라면 어느 누구도 그 희생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해서 살고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할 절대적 가치는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잃으면 어떠한 희생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4:12)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사랑을 논하지 말고 사랑이 결여된 은사라면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사랑의 사슬에 매인 바 되어 주님의 영광을 온 땅에 펼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