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합한 사람
내 마음에 합한 사람
행13:13-23
세상을 사는 동안 친분이 두터워서 마음의 거리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멀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삶이라면 그렇게 살기 마련이나 생의 여정에서 남기는 업적은 중요합니다.
얼마 전, 이귀분 집사님의 바깥어른께, "이번에 우리 교회 교육관을 건축하는데 고인을 기념할만한 무엇을 남겼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마침 값진 비품을 들여놓아 감사를 드렸습니다. 생각해보니 고인이 천국에 가신 후에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1. 안식일에 회당을 찾는 전도자의 발길
이방인의 사도로 불림을 받아 이방인을 위해 일생을 바친 전도자 바울의 발길을 살펴보면, 어느 때 어디로 가든지 먼저 찾은 곳은 유대인의 회당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을 기뻐하면서도 항상 구원의 우선순위는 유대인에게 두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이렇게 바울은 유대인의 우월성뿐만 아니라 깊은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1-3)
회당의 유래는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후부터라(박윤선)하나 정확한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올렸을 때, 지역마다 율법을 가르치고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회당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15절)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물론 회당장은 아직 전도자의 신분과 목적, 또 백성에게 전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줄 압니다.
2. 바울이 전한 복음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16절).
바나바보다 앞서서 주의 복음을 증언하기 시작한 일은 구브로에서도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복음 사역은 인기주의가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을 시기하는 무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복음으로 인해 감옥에 있을 때에 그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었는가 하면, 바울을 시기하여 다툼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럴지라도 바울은,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 치례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5-18) 하였습니다.
진실한 전도자라면 덕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16절).
불타는 사명감에서 외치는 바울의 설교는 메마른 영혼들을 사로잡기에 넉넉하였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 간이라"(17-19절).
율법이라면 누구의 추종도 불허할 바울이기에 거침없이 역사를 꿰뚫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때에 가진 성경은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으로서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설정에 대해 거부 반응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동일한 사건이라도 어떠한 시각에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듯이 이스라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증언하는 말씀은 평소에 회당장들을 통해서 들을 때와 다른 것이, 그 말씀에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증언한 복음에서 두 가지 진리를 살펴보면,
1)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신다(롬1:16-17)는 진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일생 동안 이 복음 전하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였고, 또 상대방이 누구든지 가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진리를 누구든지 인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주님을 시험하던 사탄도 말씀을 시험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 후에 선지자 사물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20-22절).
이 말씀은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증언한 내용과 의미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묘한 것이 있다면 스데반이 증언할 때는 사울이 듣고 그 곳에서 그의 죽음을 당연히 여겼는데 이제는 자기가 이 복음으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스데반은 광야 생활을 길게 전하고 솔로몬의 성전에 대해 언급한 후 복음을 진술하였으나 바울은 보다 더 요약된 내용으로 나열한 후 다윗에 이르러,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23절).
동일한 면은 성령으로 증언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성령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내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두말할 여지없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그 뜻을 즐겨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먼저 기름부음 받은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했을까요? 사울은 교만과 불순종으로 버림을 받았으나 다윗은 어릴 때부터 믿음을 지키고 작은 일에 충성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22절).
물론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건축한 일은 중요합니다. 그로 인해 열국에 지혜의 왕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입니다. 더욱 중요한 하나님의 뜻은 다윗을 통해 메시아가 이 땅에 탄생하리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23절).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계2:16).
이것이 영생의 복음이고 또 세례 요한이 증언한 복음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요1:25)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알지 못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므로 선지자들의 예언을 응하게 하였습니다. 약속을 받고서도 진리의 원수로 전락시키는 행위, 이것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우리들도 이 반열에 서서 주의 뜻을 이룩하는 은혜를 힘입기를 바랍니다.
4. 두 가지 반응
1) 믿고 구원 받은 무리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42절).
목회자들의 가장 무거운 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일 줄 압니다. 왜냐하면 주일마다 갈급한 영혼들을 만족하게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연세 신학대학원 김중기 교수의 말입니다.
"교수들은 전공 분야가 정해져 있고 또 대상이 바뀌므로 한번 준비한 내용으로 평생토록 반복 교육이 가능하나 목사는 평생 교육이므로 같은 내용을 반복할 수 없으니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영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설교를 훌륭하게 준비하여도 은혜가 없으면 영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42, 44절).
2) 시기하고 박해한 무리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45절).
동일한 태양인데 엿은 녹고 떡은 굳어집니다. 같은 말씀에 은혜 받는 무리들이 있는가 하면 한 편에서는 이렇게 시기하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46절).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은 복음과 다르다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한 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그 성에서 쫒아내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51-52절).
진리를 박대한 자들에게는 전도자의 발에 묻었던 먼지가 심판대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전해진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늘 세계를 향해 뻗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고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