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으로 확산된 복음의 역사
이방으로 확산된 복음의 역사
행8:1-8
스데반을 죽인 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는데, 감사한 일은 외부적으로 닥치는 시험이 더 할수록 복음은 더 왕성하게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에서라면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을 죽였으니 위축되게 마련이나 순교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11:4).
순교자는 죽은 것이 아니었기에 제2, 제3의 스데반이 등장하여 복음을 더욱 담대히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독재자는 살아있을 때 영향력을 행사하나 순교자는 죽어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1. 복음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사울
우리가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을지라도 사람이 성령이 될 수 없듯이, 복음을 박해하는 자도 마찬가지로 사탄이 아닌 사탄의 도구로 전락되는 것입니다. 다만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은 영생의 소망과 하늘나라 상급이 있으나 사탄의 도구로 전락되면 영벌을 받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꾼들은 자신의 하는 일을 알 수 있으나, 마귀의 일꾼들은 그 일을 알지 못하므로 죄를 짓는 일에 담대해지게 됩니다.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1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3절) 하였습니다.
잘못된 신앙관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십시오. 사람을 죽였으나 죄책감도 없이 여전히 복음을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나사렛 예수가 모세의 율법과 성전을 파괴하므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를 멸절시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와 모세가 상극이 될 수 없듯이 복음과 율법의 관계 역시 상극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언제 율법을 폐지하고 모세의 율법을 잘못이라 비판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연약함으로 율법의 정죄를 받게 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로되 죄는 없으십니다. 불행스러운 일은 아직도 이 은혜를 외면하고 박해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사울같이 잘못된 신앙으로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굴하지 말고 더욱 담대한 믿음으로 대처하여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사마리아에 전파된 복음의 역사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1절).
그렇게 박해 속에서 흩어졌으나 그들이 모두 성령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사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환란을 당할 때에 시험에 빠집니다. 그러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은 박해가 심할수록 신앙의 뿌리는 더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스데반을 죽인 자들이 다른 사람인들 못 죽이겠습니까? 얼마든지 죽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목숨과 바꿀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4-6절).
과연 그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하는 믿음의 용장들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7-8절).
얼마나 귀한 은혜입니까? 이는 의학이 발달된 오늘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은 복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도 함께하시고 또 영광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3. 마술사 시몬의 잘못된 요구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9절).
마술이 무엇입니까? 글자 그대로 마귀의 술수 곧 속임수입니다. 사람의 눈을 속이고, 귀를 속이고, 마음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행동으로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자들입니다. 시몬의 행위를 보십시오. 얼마나 가증스럽습니까?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10절).
이것이 마귀의 교만입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영광 받을 자리에 자기를 올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탈선을 방지하고 겸손하여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돌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과 악령을 분별하는 시금석은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교만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면 이는 분명히 마귀의 술책임을 깨닫고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기 바랍니다.
사람이 언제 시험에 드는지 보십시오. 자신이 높은 사람인 줄 알고 교만해질 때 입니다. 스스로를 높여 백성을 속이던 시몬도 빌립을 만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13절).
놀랄 일이지요. 이는 아무리 살펴봐도 마술로 하는 자신의 속임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성령으로 거듭나지는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본래의 인간성이 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그러한 사람도 교회에서 봉사를 할 수 있고, 신앙 연조에 따라 직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의 기틀 위에 교회가 세워지면 자신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회도 바로 서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므로 직분이 있는 자들은 진리위에 바로 서서 신앙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18-19절).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흥정하는 행위를 보십시오. 얼마나 가증합니까? 과거에 마술을 부릴 때 하던 습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이런 일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주님 앞에서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사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사유함을 받았다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사유함을 받았다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시몬같이 성령을 사욕의 도구로 삼으려는 생각이 발동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께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0-21, 23절).
얼마나 무서운 저주입니까? 은혜를 욕으로 바꾸지 마십시오. 나를 구원해 주신 이 은혜의 보화를 어찌 물욕으로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발람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이 내게 있는 모든 것 곧 썩어질 것과 없어지고 욕된 것을 진리 위해 투자하여 영생을 소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사도들을 통한 성령의 역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14-16절).
이는 대단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주석가들의 견해도 다양합니다. 과연 사도들이 오기 전에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인지, 아니면 빌립을 통해 일어난 권능의 역사와 함께 세례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는지…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일은,
1)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2)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중생으로 간주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술사 시몬이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성령으로 변화 받은 증거가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사는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안수를 통해서만 성령 받는다는 주장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빌립을 통해서 증언하신 것 외에 사도들이 와서 말씀을 전하고 성령받기를 위해 기도함으로 성령이 충만하여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 역시도 인위적인 방법으로 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 빌립의 순종과 내시의 경건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26절).
우리는 주의 사자가 어떠한 모양으로 나타나서 지시했는지 알기가 어려우나 중요한 것은 빌립의 믿음과 순종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은혜는 아무에게나 또 어느 때든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이 영감을 통해 나타나고 또 충성된 믿음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그 때에 빌립은 즉시 순종하고 그곳을 향했습니다. 마침 목적지에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27-28절) 하였습니다.
에디오피아는 에집트 남쪽 나일강 상류 지방으로, 구스 족속(사 11:11) 곧 검은 피부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 나라는 구약에서 스바라 불리우고,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한 이래(왕상 10:1-10) 유대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신약에서는 그 내시의 회개 이후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왕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그렇게 중요한 임무를 이행할 사람이기에 빌립을 급하게 그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이 빌립에게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29-31절).
모두가 극적인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지시를 따라 그에게 접근하였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빌립의 지도를 요청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곧 은혜의 상통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 베드로를 보내기 위해서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도 자주장사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청해 올 것을 지시하였던 것입니다.
빌립이 이사야 53장에 있는 말씀을 풀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에 그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서 세례를 받으므로 주의 은혜를 힘입게 되었습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39절).
이 대목 역시 주석가들은 엘리야를 지상에서 옮겨가신 초능력의 역사로 옮겼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빌립을 다른 곳으로 옮겼으나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하였습니다.
빌립이 성령의 도구가 되어 그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내시는 수가성 우물가 여인과 같은 심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내시가 매우 기뻐하였는데, 이는 거듭난 감격이요, 불타는 사명감이요, 진리에 대한 확신에서입니다. 결국 빌립의 전도는 구스의 내시를 변화시키고 내시는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자기 백성을 변화시켰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역사요,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것이 곧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능력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영혼을 살리고 또 박해 속에서도 퍼져나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내게 원하실 때 주저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은혜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40절).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