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설교
스데반의 설교
행6:10-15
초대 교회의 경전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 곧 구약이었습니다. 또 사도들이 보고 듣고 생생히 체험한 그리스도의 복음과 오순절의 성령 체험은 복음 증거에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신구약의 경전이 어떻게 연결을 이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인데 반해 신약은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과 교회라는 점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증언에서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유의해야 할 줄 압니다.
1.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당치 못했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10절).
성령의 지혜와 성령의 능력을 당할 자는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보다 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한 것이 인간의 강한 것보다 월등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를 보십시오. 평소에는 그가 학문이 없는 범인으로 알았으나 오순절 사건 이후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능력의 말씀 앞에 모두가 거꾸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성령 충만, 지혜 충만한 성도가 되어야하겠습니다.
2. 스데반을 박해한 이유
성전과 모세의 율법을 부정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모세와 하나님을 훼방한다고 하여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을 종교 재판 곧 공회에 끌고 가서 재판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고소한 내용을 살펴보면,
1)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허물 것이라
2) 모세가 전해 준 계명을 변개하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전을 부정하고 모세의 율법을 부정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중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특징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언하는 것이 모세의 율법입니다. 이렇게 율법은 중요합니다. 또 율법에 의해 이룩된 것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그림자는 실체가 등장하면 그 의미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진정한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행7:48).
뿐만 아니라 성전을 봉헌한 솔로몬도,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이는 46년 동안에 지은 헤롯의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가 없는 이스라엘 역사라면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성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진리의 의미를 잃게 된다면 이는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므로 인해서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9-11).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식화 된 율법주의로 인해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배역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2) 모세의 율법 문제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가감이 허용될 수 없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며 그런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13: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믿고 복종하며 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모세의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므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또 예수 믿는 성도들을 박해하였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읽고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은 모세의 율법이 잘못되었거나 솔로몬의 성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의사의 진단이 정확하여도 환자를 살려내지 못하면 효력이 없는 것같이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진리를 깨닫고 "법은 신령하나 나는 죄 가운데 있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모세의 계명에 결함이 있어서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계명을 범한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라면 당연하다 하겠으나 진리를 잘못 해석할 때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진리에서 이탈하여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신앙은 전통이 중요합니다. 건실한 교단인가를 먼저 확인하고 하나님 기뻐하는 교회에 몸을 담아 충성하는 것이 복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가까운 사람이 적그리스도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장 정통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는 자가 쭉정이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계명을 준행하였다면 주님같이 잘 지킨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은 율법으로 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주님께서 율법의 정죄를 받아야 했을까요? 이것이 곧 율법주의자들의 횡포입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의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율법을 무시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오히려 구약을 배경으로 하여 진리를 증언하였습니다. 스데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깨뜨린 일이 없었으며 솔로몬의 성전을 잘못이라 지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상징적인 성전 제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체로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지하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바로 깨닫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영광에 이를 줄 믿습니다.
3. 스데반의 설교
1) 아브라함의 약속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고소한 죄목은 그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증언한 말씀은 그들이 자랑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사건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행 7:2-4).
스데반 집사가 어떻게 이스라엘 역사를 그렇게 잘 알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성령의 조명을 받아 증언한 말씀입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고소한 자들에게 “너희들이 이스라엘의 뿌리인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었고 그에게 세운 언약으로 가나안 땅에 거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5 이하에 보면 이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12조상이라고 하는 혈통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한 것은 ‘할례의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은 야곱에게, 야곱은 12조상에게 행하므로 이는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언약의 혈통’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 출애굽 사건
또 모세의 등장과 그의 사역에 관한 말씀이 길게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있겠으나, 특별히 스데반을 고소한 내용이 모세를 부정한다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등장한 배경을 보면 "사십 년이 차매"(7:30)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특히 사도행전 7:35 이하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부한 모세를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통치자 곧 구원자로 세우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행7:35-36).
이렇게 스데반은 모세의 율법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밝히 증언하였습니다.
4. 절정의 말씀
이렇게 모세에 대해 역사적인 사건을 밝히 증언하는 스데반을 그들은 모세를 부인하고 계명을 거역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데반이 자신을 변명하여 혐의를 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박해하는 이 복음을 증언하는 전도자로서 목이 곧고 패역한 조상과 같이 지금도 진리를 대적하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그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행7:39-41).
과연 누가 심판받아 마땅할 죄인이요 우매한 백성입니까? 광야에서 쓰러진 그들의 조상이요, 오늘도 이 진리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타성을 조심하십시오. 잘못된 고정관념도 탈피해야 합니다. 신앙의 연조를 자랑하면서도 천국의 문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회개해야합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 7:51-53).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요, 성령의 책망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회개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질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7:54).
결국 스데반을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쳐 죽이므로 그들에게 돌아온 최후의 기회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전도자의 외침 소리는 거기서 그쳤으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8-60).
순교자의 피는 살아 있습니다. 스데반과 같이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