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이루어진 천국
땅에 이루어진 천국
행4:23-30
지상 천국은 가능한지? 그리고 이루어진다면 그곳은 어디이며 또한 천국 생활은 어떠할지? 이러한 질문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궁금하게 생각하는 일일 줄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모델을 어디에서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스위스의 몽블랑 등정을 하고 황홀경에 빠져 과연 천국이 여기보다 좋을까 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눈요기일 뿐 인간이 기대하는 소원을 만족시켜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 서부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높이가 1612피트(약 496m)나 되는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리본폭포(Ribbon Fall)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폭포들이 아홉 개나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도 왜 그런지 그 곳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의사소통이 어려울 것이고, 더 큰 문제는 주일에 교회도 가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면 진정으로 만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어떠한 그림 속에서가 아닌 진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1. 풀려난 사도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23절).
그 때에 사도들이 풀려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인데, 사도들이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셨고 또 다시 오실 메시아로 증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증언하니 그것을 진리로 인정한다면 역사가 뒤집히는 일인데 그대로 둘 수 없지요. 그러나 진실을 뒤집어 놓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나라들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하나 같이 전쟁과 슬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이요, 치열한 국제 경쟁 사회에서 개척해 나가야 할 미래입니다. 소련을 비롯한 동 구라파에서 공산 체제가 무너질 때 드디어 자유가 보장되는 새 날이 밝아오는 줄 알았는데 불행스럽게도 민족 분규가 그칠 줄을 모르고, 그로 인해 국가 경제는 몰락해 가고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에게 사상과 이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옛날이 좋았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는 말들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도들을 보십시오. 진리는 결박되지 않습니다. 진리 안에 있는 자는 영원한 자유자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하셨습니다.
몸은 가두어도 진리는 가둘 수가 없으므로 바울은 옥중에서 옥중 서신을 남겼습니다. 무덤 문을 터뜨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억제할 수 없어서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20) 하고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2. 일심으로 올린 기도
"그들이 듣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이로소이다"(24-26절).
외부적인 박해는 더욱 내부적인 단결을 가져오고 합심하여 기도하게 하여 하나님의 더 큰 능력을 힘입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신앙 때문에 닥치는 시험이라면 주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기도하여 더 큰 영광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여러분!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 힘든 일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고 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박해 속에서 더 힘 있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때에 올린 기도의 내용입니다.
1)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29절).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다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위협하고 풀어 주었는데 그들은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과연 그러한 기도는 적극적인 믿음에서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올린 기도입니다. 내 힘으로는 세상을 이기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는 세상을 이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 때 초대 교회 성도들이 외부적인 박해를 두렵게 생각하여 믿음이 위축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순절의 사건은 일시적인 광신자들의 불장난으로 끝났다는 평가를 내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성도들은 담대했습니다. 불같은 시험이 있을 때는 불같이 일어나고, 사자같은 시험이 있을 때는 사자같이 담대하게 대처해 나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일 수 있는 이 기도의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를 행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얼마나 든든한 보장입니까? 이 자원을 묻어두지 마십시오. 충성을 따라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목적 삼고 기도합시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능력을 행사하는 증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했습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30절).
그들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로 소동이 일어났을 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복음을 증언했으며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계속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욕심을 부리자면 사도들이 박해를 당하지 않고도 복음을 증언할 때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와의 접전에서 거룩한 긴장은 놓을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이 말로만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증언되었다고 했습니다(살전1:5).
우리는 더욱 분발하고 경성하여 생명과 성령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응답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절).
이 대목은 중요합니다. 그 무리들은 오순절에 은혜 받은 성도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은혜를 받았을지라도 우리는 반복적인 기도,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과 또 하나님의 은혜 역시 날마다 충만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은혜를 항상 새롭게 또 충만하게 힘입어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는 내 마음대로 받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보사부 장관으로부터 효녀상을 받은 분이 성가대에 있습니다. 그의 지극한 효심을 보면 대통령상을 받아도 마땅할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국민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있는 일이라면 당연지사이므로 하등 기뻐할 일이 못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대상이 엄선될 뿐 아니라 또 그것은 시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이 은혜의 선물을 주실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요, 주의 사역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심령이 메말라 있는 자가 있습니까? 연료 없는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듯이 은혜가 메마르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주의 은혜가 얼마나 귀중한지 보십시오. 그 품에는 온갖 보화가 담겨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주님께 충성을 다짐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의 성령이 더욱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4. 땅에 이루어진 천국
땅에 이루어진 천국은 성도가 바라는 최고의 꿈이요, 이상 세계입니다. 감사한 일은 진리를 따라 이루어지는 천국은 허상이 아닌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땅에 이루어지는 천국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불신자들이 말하는 유토피아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땅에 이루어진 천국은 어떤 상태일까요? 그곳은 불신과 불만이 없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곳이요, 거룩한 헌신과 축복이 있는 곳입니다. 초대 교회를 보십시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절).
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습니까? 은혜를 힘입은 이 후부터입니다. 외부적인 환경이 좋아져서일까요? 도리어 환란과 박해 중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제 물건을 제 것이라 하는 자가 없었다면 누구의 소유란 말입니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복된 믿음입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때에 많은 무리들 중에는 핍절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경제적인 논리로 본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 하겠으나 신앙의 원리로는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에는 기브츠(협동 농장)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일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이스라엘에서는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 민족의 독특성과 강인함에서 얻어지는 소득일 뿐 초대 교회 생활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기브츠 운동이 협동정신의 소산이라면 초대 교회 생활은 성령 안에서 이룩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은혜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여기에 메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먹어도 주님을 위해서요, 입어도 주님을 위해서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요, 죽어도 주님만을 위해서였으니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믿음뿐이었습니다. 진리 안에서 맛볼 수 있는 구원의 은혜, 이는 받는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비밀의 은혜입니다.
이제 이 영적인 증거와 체험이 있는 사람은 환란과 박해가 닥쳐와도 기뻐할 수 있고 또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 초대 교회로 돌아갑시다. 세월은 변해도 진리는 영원합니다. 과거에 은혜를 받았습니까? 또 다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할 일이 있으므로 우리는 더욱 충만한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세대가 악하므로 주의 능력이 갑절로 임하기를 기도했던 엘리사와 같이 우리들도 능력을 받아 주님 앞에 서는 날 의의 면류관 받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