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좋은가
어느 것이 옳은가
행 4:1-22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자, 제사장들과 성전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이 일어나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사도들을 결박하고 또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하면 성령이 충만하여 기적이 일어나는 이때에 어떻게 사도들을 대적할 수 있었을까 하겠으나 이러한 사례들을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 빛의 역사와 어둠의 역사
선지자의 예언이 없었던 400년의 침묵을 깨고 등장한 세례요한의 외침소리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눅 3:9).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며 들려온 소리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3:22).
그 때에 주님은 40일 동안 광야로 나가서 금식하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3년 6개월이나 비가 오지 않아 백성들이 기근에 허덕일 때 "불로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 하고, 바알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한 판의 대결을 벌려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 하나님이 참 신이시라는 것을 증거하고 바알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기손 시냇가에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이세벨의 마음은 더 강퍅해져서 엘리야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므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생각하면 빛 앞에서 어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어둠이 왕 노릇하고 있으므로 성령의 역사가 왕성하면 마귀의 역사도 왕성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진리를 싫어하는 자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1-2절).
마땅히 복음을 앞장서서 선포해야 할 지도자들이 진리의 길을 막고 이렇게 박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싫어하는 자들을 살펴보면,
1) 불의에 속한 자들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3:20).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문명의 발상지로 역사에 영향을 끼친 나라들이 허무하게 사라져간 흔적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는 불의와 죄악으로 정신적인 문명이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떨며 범죄하지 말고 진리에 순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비진리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는 불신자를 의미하는 것보다는 어떠한 종류든지 신앙을 가지고는 있지만 영생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여기는 정통의 탈을 쓴 비진리도 있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넘긴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이요, 서기관들이요, 제사장들입니다. 주의 복음을 싫어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그처럼 메시아를 대망하면서 오신 메시아를 죽였을까요? 비진리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있었고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진리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 같은 모순이 있을까요?
그들에게 형식은 있었으나 내용이 없었고, 율법은 있었으나 복음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바로 알았다면 영광의 주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가 아닌, 나사렛 목수의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잘못된 선입관 때문에 소자로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았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1:12).
여러분! 우리는 비진리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3) 마귀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진리의 원수로,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하였습니다.
여러분! 마귀에 접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처음에는 진리를 의심하게 만들고 다음에는 불신하게 합니다. 이로 인해 진리는 비진리로, 마귀의 소리 곧 비진리를 진리로 믿게 합니다.
미국에서 다윗파 사교 집단의 교주 코레쉬의 방화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단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1980년대부터 666 숫자풀이로 지구 종말이 왔다고 떠들던 시한부 종말론 자였습니다. 그동안 부인을 18명이나 거느리고 엽색행각을 벌려왔는데도, 그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은 결국 불타서 죽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일은 아직도 미국에 이러한 단체들이 칠백 개나 있다고 합니다.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20:10)
3. 복음의 권세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6-7절).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8-10절).
얼마나 당당합니까? 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믿는 사람을 박해하고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의 경우와 비교해 보십시오. 한 편은 종교적인 배경을 가졌고 한 편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공문으로는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없으나 성령의 능력은 일으켰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진리를 알지 못해 박해하고 대적하는 원수 무리의 반열에 있지 않고, 믿음과 순종으로 진리를 증언하는 전도자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10:35).
4.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11절).
머릿돌을 버린 자는 누구이며, 버려진 머릿돌을 모퉁이 돌로 삼아 새 집을 지은 분은 누구일까요?
지금부터 4천 년 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 12:!).
이 말씀은 아브라함 개인 구원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땅 위에 천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석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있는 [피사의 사탑]은 어느 때부터 기울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으나 기초가 약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기초가 완벽합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구상의 많은 민족 중에서도 특수한 임무를 부여받은 자들입니다. 인류 역사의 흐름을 보면 다른 민족은 자연 발생한 민족이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에 의해 탄생된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은 바울의 고백대로 모든 인류 앞에 생명의 빚을 진 민족입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과 임무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유대교라는 민족 종교로 전락하여 오늘까지 이방과 선민이라는 구약적인 사고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전능하신 하나님을 편협한 민족 신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초를 잘못 놓았기 때문이요, 집 모퉁이의 머릿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인류 앞에 영생의 소망을 안겨주는 나라가 아닌 진리의 원수로 전락하였습니다.
감사할 일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새 집을 지으셨는데 그 집이 곧 피로 값 주고 세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생명수 강물이 예루살렘에서가 아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흘러 나와 세계 만민의 영혼을 소성하게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12절).
5.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13절).
쌀자루에서 쌀이 나오고 물통에서 물이 나오듯, 전도자들의 입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복음이 있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대적하는 원수들 앞에서 증언하는 그 말씀은 힘이 있었고 담대했습니다.
'담대하게' 이는 스스럼없이, 막히지 아니하고, 더욱 담대히, 모두가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또 유의할 일은 사도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을 잘못 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은 세상 학문이 아니라 주의 복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을 성령이 들어 쓰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손길에 붙잡힌바 되어 진리의 증인되시기 바랍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사도들을 위협하고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외친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께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절).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입니까? 관원들은 백성들로 인하여 그들을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한 후 놓아 주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능력 받아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 되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