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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라

주님만 주님만 2014. 9. 27. 10:46



우리를 보라



행3:1-10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베드로와 요한이 제 9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켰는데 이 일 외에도 사도들을 통해서 많은 기사와 표적이 일어났습니다(행2:43).

하나님께서는 일정한 방법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사역하십니다.



1. 정해진 기도 시간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제 3시, 6시, 9시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는 매일 다섯 번 기도하는 회교도들보다는 적을지라도 대단한 정성임이 분명합니다. 사실 기도는 횟수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올리느냐가 중요하고, 또 응답받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다니엘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고, 이로 인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기도는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를 죽이려고 법을 만들었던 원수들이 사자의 밥이 되고 다니엘은 더 존귀한 사람으로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무엘도 자기 백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으리라 하였습니다.

역사적인 인물들은 모두가 기도의 사람이요, 또 위대한 업적은 기도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규칙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심각한 문제라면 더 간절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또 수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 번, 두 번 기도하여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7)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신실한 주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여 응답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메고 온 앉은뱅이

저는 토요일이 되면 사우나에서 아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분은 어린 아들과 함께 하고, 저는 아버님을 모시고 사우나를 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스스로 자립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어릴 때는 철이 없어 못하지요. 또한 성장할 때에는 배운다고 못합니다. 장성하여도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역시 천차만별이지요. 거기다 쉬는 시간,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또 병들고 약해져서 치료를 받는 시간, 그러다 보면 인생은 황혼기에 이르게 되니 과연 베틀의 북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에 좋은 일을 많이 하십시오. 이것만이 내게 있어 가장 값진 업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십시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였으므로 자립하기가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앉은뱅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한 몸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항상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선한 일에 힘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3-4).

날마다 성전에 출입하는 사람을 대하며 구걸하던 이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대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는 도움을 구하는 일에 익숙해졌을 뿐 아니라 멸시와 천대에는 면역성을 지녔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절).

사도와 앉은뱅이는 각기 다른 마음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앉은뱅이의 운명을 측은히 여겼으나 앉은뱅이는 물질적인 동정을 기대했습니다. 그가 앉은뱅이라 하여 구원받는 일이나 병 낫기를 원하는 마음이야 왜 없었겠습니까마는 이미 체념하고 이것이 자기의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달랐습니다. 이 사람에게 옅은 동정을 베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을 전달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이러한 사명감이 있습니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명의식이 있는 자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내게 있어 이러한 능력이 없다 해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각기 받은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떻게 쓰임을 받든지 주의 손길을 대신하여 봉사하면 족할 것입니다.

몸으로 드리는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손길과 발길이 주님의 이름으로 쓰임을 받을 때 성령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모두가 달란트대로 마음을 같이 하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3. 가장 귀한 선물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6-8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일은 마치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 나온 사건과도 비길 만큼 놀라운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주의 종들은 반드시 물질을 초월해야 하겠으나 그렇다고 물질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물질관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2).

이것은 물질에 대한 불필요성을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육체적인 불편에 비해 복음이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4:15-16).

왜 주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칠병이어의 기적을 계속해서 행하지 않은 줄 아십니까?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할지라도 오직 봉사하는 손길을 통해 열매 맺기를 원해서였습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4:17-18).

이러한 은혜가 우리 성도들에게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6절).

전도자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이 있다면 복음이요, 권능이 있다면 역시 복음입니다.

전도자에게 복음이 없다면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하겠으나 문제는 주의 복음이 살아서 역사할 때 이러한 권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누가 베드로와 요한을 그처럼 담대하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이었습니다.

물론 이 때에 은과 금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사도들은 앉은뱅이의 요구대로 물질로 구제한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제와 동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 손길은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4. 하나님께 영광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8절).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일어나게 되었으나 사도들은 자기들의 경건이나 어떠한 능력에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들의 기쁨이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는 그 믿음으로 전도자 바울이 존귀한 사람이 되었다면 베드로와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을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10절).

그 때에 베드로가 청중들을 향하여 외친 말입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

이렇게 어떠한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다 할지라도 자신을 낮추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그 믿음이 보배입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절).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이 진리와 생명의 역사가 우리들을 전도의 도구로 삼아 오늘도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충직한 증인으로 주님의 영광 드러내는 일에 앞장서기를 기원합니다. - 아멘 -